돈 있는 곳에 정책 있다

  • 입력 2023.11.12 18:00
  • 수정 2023.11.12 20:58
  • 기자명 한승호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온 한 아이가 본인 키 만한 현수막 뒤에 서서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스트로보 빛이 반사된 까닭에 아이의 까만 눈동자가 더욱 선명하다. 현수막엔 ‘충청북도 농정예산 삭감 규탄 기자회견’이라고 적혀 있다.

정치인들의 공약 이행과 정책 실현의 진정성을 판단하려면 예산의 반영 여부를 확인하면 된다. 실로 돈이 향하는 곳에 정책이 있다. 김영환 충북도지사의 농업분야 대표 공약은 농민수당 100만원 지급이었다. 농민들은 이 약속을 믿었다. 그러나 올해 농민수당은 60만원이었다.

매년 11월과 12월은 새해 예산을 심의, 확정 짓는 시기라 정책 실현의 의지가 있다면 내년엔 농민수당 관련 예산을 더 확보해야 한다. 그러나 도청이 지난 8월 말에 배포한 ‘충청북도, 2년연속 8조원대 정부예산 확보! 8조원시대 안착’ 제목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농민수당 증액을 위한 예산은 찾아볼 수 없다. 내년도 충북의 농업 관련 예산은 1조1,000억원 정도다.

게다가 올해 충북도 농정국 예산 약 4,300억원 중 1.5%에 불과한 농민단체 지원금까지 내년엔 30%가량 삭감한다고 통보해 농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농민들 사이에서 “김 지사가 농업예산 증액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김기형 전국농민회총연맹 충북도연맹 의장은 “작년 한 해 농업소득이 948만5,000원에 불과하다. 이 돈을 갖고 어떻게 농사를 지어야 할지 자괴감마저 든다”며 “농촌의 상황이 어려울수록 정부와 지자체가 지출을 늘려 농민을 살게 해야 하는데 대책이 없다. 김 지사의 농민수당 100만원 지급 공약도 임기 내 실현하려면 내년도 예산에 일부라도 반영돼야 하지만 답이 없다. 앞과 뒤가 다른 행보다”라고 일갈했다.

다시, 기자회견 현수막 뒤에 서 있는 아이를 본다. 현수막을 입에 문, 순진무구한 표정의 이 아이에게 괜히 미안해지는 하루다.

키워드
#기자수첩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