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동녘, 월동무를 띄워 올리는 성산일출봉농협

[지역농협의 역할을 고민하다⑦] 제주 성산일출봉농협

  • 입력 2023.11.12 18:00
  • 수정 2023.11.12 20:59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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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3월 8일 치른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조합장의 초선·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국 지역 농·축협이 운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본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농·축협 여덟 곳을 격주로 소개함으로써 전국 농·축협 임직원·조합원들이 각자 조합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지난 6일 성산일출봉농협 유통센터에서 수출용 월동무 손질·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 생산량 증가 전망에 따라 평년보다 보름 이상 조기수확한 물량으로, 수급조절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지난 6일 성산일출봉농협 유통센터에서 수출용 월동무 손질·포장 작업이 한창이다. 올해 생산량 증가 전망에 따라 평년보다 보름 이상 조기수확한 물량으로, 수급조절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제주 성산읍에 월동무가 자리잡은 건 불과 20년 전인 2000년대 초반. 유통시장에 대형마트가 등장하면서 ‘세척무’라는 개념이 확산하기 시작한 시기다. 당시 제주 동부는 구좌읍·성산읍·표선면 구분 없이 당근·감자에 편중된 농사를 지으며 고질적 수급불안에 시달렸는데, 성산이 발 빠르게 무에 뛰어든 것이다.

이 작부체계 변화에 중추적 역할을 한 게 성산일출봉농협이다. 제주에 내려온 몇몇 유통상인들의 월동무 농사를 유심히 지켜보던 성산일출봉농협이 이를 대대적으로 육성한 것이다. 성산과 월동무는 이제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이름이 됐고, 성산은 물론 구좌·표선의 당근·감자 농사에도 숨통이 트였다.

20년 전 유통센터장이었던 강석보씨가 조합장을 맡고 있는 성산일출봉농협. 지금도 제주 월동무의 중심축 역할을 수행하는 중이다. 성산에서 재배하는 월동무의 80%가 이곳 농협을 통해 유통되고 있다.

월동무는 기계파종이 용이하고 세척시설을 필요로 하며 면적당 수익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투입비용의 효율 때문에 자연스레 광작화·대농화가 이뤄져 있다. 여러 명의 농민이 영농조합법인 등 그룹을 만들어 합작하는 경우가 많으며 성산일출봉농협 조합원들도 20여개 그룹으로 묶여 있다.

이미 농협의 기계·설비 도움이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지만, 중요한 건 유통이다. 매년 11월 말부터 이듬해 6월까지, 이들 그룹에서 쏟아져나오는 방대한 물량의 월동무에 성산일출봉농협이 매일 출하처를 배정한다. 도매시장·공판장 등 전국의 판로 중 어느 한 곳에 물량이 쏠리지 않도록 컨트롤타워 역할을 함으로써 일시적인 폭락을 방지하는 것이다. 2%의 수수료를 징수하지만, 환급금 0.4%와 이용고배당을 감안하면 사실상 수수료가 거의 없는 셈이다.

그룹이 아닌 개인 단위로 소규모 월동무 농사를 짓는 조합원들도 100여명, 무시 못할 숫자다. 이들 농가엔 수확·세척·출하·판매·정산까지 일괄로 처리해주면서 농협 본연의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지역 전체가 월동무에 특화된 만큼 농협의 종자·농자재 구매나 재배 교육사업이 매우 활발하며 이는 대농·소농 상관없이 모든 조합원이 누릴 수 있는 혜택이다.

최근엔 수출도 제법 활기를 띠고 있다. 미주 한인들을 중심으로 해외 무 수요가 있어 2000년대 중반부터 수출을 시작했는데, 처음 연간 50~100톤이었던 수출 규모가 지금은 1,000~1,500톤으로 늘었다. 제주 전체 월동무 수출량의 25~30%에 해당한다.

특히 미주는 국내와 달리 1.5kg 이내 작은 무의 수요가 높은 특화시장이다. 평시엔 내수용으로 판매하지 못하는 작은 무를 수출해 부가소득을 올릴 수 있고, 올해처럼 생산량 증가가 우려되는 해엔 정상적인 무를 조기수확해 수출함으로써 수급조절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성산일출봉농협 스스로도 수출의 중요성을 절감, 동남아 등지로 수출선을 다변화해 수출량을 연간 5,000톤으로 늘리겠다는 포부를 내비치고 있다.

월동무 적정 재배면적을 유지하는 데에도 주도적이다. 시청·농업기술센터와 함께 키위·유채·비트 3종을 전략품목으로 선정하고, 월동무를 짓다 해당 품목으로 전환하는 포전에 시설보조 또는 재배·수확 지원금을 지급하고 있다. 신규작목 재배를 유도해 월동무 재배면적을 줄여보려는 의도다.

그렇다고 월동무에 들이는 공을 줄이는 건 아니다. 성산 농업을 절대적으로 지탱하는 대표작목은 뭐니뭐니해도 월동무이기 때문이다. 성산일출봉농협 유통센터는 월동무를 비롯해 봄감자·봄메밀·초당옥수수·단호박·당근·감자 등 지역의 거의 모든 농산물을 취급하는데, 최근 월동무만을 전문으로 취급할 제2유통센터 건립을 추진 중이다. ‘해상물류비’라는 패널티 때문에 육지 업체들과의 경쟁이 불투명하긴 하지만, 이곳에서 무 가공사업을 병행하는 방안까지 구상하고 있다.

올해도 제주엔 월동무 수확철이 다가오고 있다. 전 국민의 한철 밥상과 성산 농민들의 경제를 책임지는 월동무. 많은 사람들과 기관들의 노력이 만들어온 성과지만, 20년 전에도 지금도 그 후방을 떠받치는 힘은 상당수가 성산일출봉농협에서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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