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관련기사: 성(性)의 장벽을 허물어라 … 샘골농협엔 남녀 구분이 없다>
여직원들에게 경제파트 근무를 ‘강요’한 이유는.
어떤 사업에 변화를 주려면 제일 먼저 사람의 변화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여성은 신용부, 남성은 경제부로 나눠 고정된 업무만 해왔는데, 사실 경제 쪽에도 여성 특유의 섬세함이 필요한 사업들이 많이 있고 신용 쪽도 공격적인 전략을 펼 때 남성이 유리할 수 있다. 그리고 객관적인 업무역량을 평가해봐도 여성이 남성에 비해 물리적인 힘 말곤 뒤처지는 게 없다.
처음엔 여직원들의 불만도 있었는데 책임자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게 경제사업임을 강조했다. 직원들의 일을 파악하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핵심은 ‘조합원’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농촌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어도 모를 언제 심는지 잘 모르는 직원들이 많은데, 경제사업을 거쳐 보면 조합원들에게 농사 안부 한 마디씩 물으며 소통할 수 있는 지식이 생기지 않나.
남성 임직원들의 불만도 많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 면별 이사 4명 중 1명에 여성할당을 하려 했을 때 이사들이 “차라리 정원을 1명씩 늘려 5명 중 1명으로 하자”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대의원들이 공감해줘 결국 면별 3명 중 1명 할당으로 결정됐고 지금 각 면의 여성이사들이 농협은 물론 지역사회에서 모두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직원들 역시 경제사업장에 여성 책임자가 오면 수매할 때 일손 도움이 덜 된다며 꺼려했는데, 요즘은 여성들이 지게차를 모는 경우도 많고 특히 전산입력이나 재고관리 같은 업무를 빠르게 해주니 업무가 원활하더라. 장부를 꼼꼼하게 관리하고 술, 노래방 등 거래처 로비의 여지가 원천차단되는 등 사고예방 차원에서도 이점이 있다.
어려웠던 점은 없나.
판매사업은 시기가 중요하다. 가령 찹쌀을 사놨는데 값이 떨어질 것 같으면 가마당 1,000~2,000원 정도 손해를 보더라도 빨리 팔아야 한다. 여성 책임자들이 처음 일을 맡으면 이런 걸 과감하게 처리하는 부분이 좀 약하다. 나에게 의견을 물어왔을 때, 책임은 내가 질테니 그분이 직접 판단하도록 주문했다. 그래야 감각이 늘기 때문이다. 특혜가 아니라 원래 이런 손실에 직원 책임을 묻고 징계해선 안 되는 거다. 조합장과 임원들이 뒤에서 책임만 제대로 지어 주면 직원들이 이런 부분은 쉽게 배울 수 있다.
어려움보다도, 미안한 부분은 있었다. 신용업무는 큰 액수의 사업에서 우리가 ‘을’이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 신용본부장이나 과장이 늦게까지 출장을 다니면서 상대 측과 술자리를 하는 게 힘들다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일부에서 여전히 접대를 생각하는 문화가 남아있지 않나. 그럴 땐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성평등을 위해 내부 직장문화에도 신경을 많이 쓸 것 같다.
직원 교육을 많이 한다. 내가 직접 교육을 맡기도 하고 법조계 분들을 초청해 직장 내 갑질·성희롱 실사례를 소개하기도 한다. 실사례가 있으면 훨씬 빨리 와닿는다. 또 나이 어린 여직원한테도 ~씨, ~계장 등으로 불러주도록 언어사용도 주의시키고 있다. 서로 존대받는다는 느낌을 줘야 하기 때문이다.
출산휴가·육아휴직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예전에 분위기상 육아휴직을 못 썼던 직원도 자녀 입학할 때쯤 쓰고 싶다 해서 쓰게 했다. 혜택을 전혀 못 누렸던 간부직원들에겐 절대로 눈치 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출산·육아에 마음을 많이 쓰는 편이다. 남직원에게도 출산휴가를 주고, 같은 급수면 자녀 많은 순으로 승진시키는 원칙도 세우고 있다.
이번 농협중앙회 국정감사에서 중앙회 여성 임원·간부직원 부족이 지적됐다. 중앙회야말로 지역농협들의 성평등 문화를 선도해야 할 입장 아닌지.
농협중앙회 고위직 직원들의 업무가 사업 발전보다 대외관계 형성에 너무 중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상무들이 늘상 국회로 출장을 다니지 않나. 유력자들을 만나고 친밀을 쌓는 데 여성보다 남성이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에 남성에게 자리를 독점시키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예를 들어 ‘K-멜론’을 만들어 성공시킨 안재경씨 같은 분은 중앙회에서 정말 특출한 여직원이었는데 이런 분조차 본부장·상무를 못 달고 퇴직했다. 이런 부분이 중앙회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