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군민의 발’ 버스 노동자는 오늘도 운행에 나선다

  • 입력 2023.10.15 00:00
  • 수정 2023.10.15 18:58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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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서 버스에 승차한 송순규 할머니가 “한 시간에 한 대여도 제시간에 오니 좋다”며 버스 노동자들을 칭찬하고 있다.
지난 9일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서 버스에 승차한 송순규 할머니가 “한 시간에 한 대여도 제시간에 오니 좋다”며 버스 노동자들을 칭찬하고 있다.
송 할머니가 정류장 인근 집 앞 골목에서 하차하고 있다.
송 할머니가 정류장 인근 집 앞 골목에서 하차하고 있다.
김정용 현대운수지회 조직부장이 버스를 운행하는 사이 계기판에 각종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김정용 현대운수지회 조직부장이 버스를 운행하는 사이 계기판에 각종 경고등이 들어와 있다.
김정용 조직부장이 차고지에서 버스를 진단기에 연결해 경고등을 초기화시키고 있다.
김정용 조직부장이 차고지에서 버스를 진단기에 연결해 경고등을 초기화시키고 있다.
한 승객이 버스에 승차하는 가운데 김걸 현대운수지회장이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한 승객이 버스에 승차하는 가운데 김걸 현대운수지회장이 이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김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장이 4회차 운행을 마친 뒤 버스에 기름을 넣고 있다.
김걸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장이 4회차 운행을 마친 뒤 버스에 기름을 넣고 있다.
최천균 현대운수지회 사무장이 승무원 복지회관에 게시된 배차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
최천균 현대운수지회 사무장이 승무원 복지회관에 게시된 배차시간표를 확인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글날이었던 지난 9일 오전 11시, 강원도 양구군 양구읍에서 방산면 방향으로 운행하는 현대운수(주) 버스가 차고지를 나선다. 버스 기사는 김정용(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강원지부 현대운수지회 조직부장)씨. 양구 읍내를 훑듯 여러 정류장을 지그재그로 지나친 버스가 양구중앙시장 인근에 선다. 정류장에 서 있는 승객을 본 김씨가 말한다. “도사리 사시는 어머니네.”

차 문이 열리자 올해 나이 여든다섯, 송순규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 교통카드를 찍으며 기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기사양반, 안녕하슈!” 단말기에 교통카드를 대자 액정에 뜬 요금이 선명하다. 1,600원. 버스 운임은 올해 1월 1일 첫차부터 300원이 올랐다. 버스에 오른 송 할머니가 자리에 앉자 그제야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송 할머니의 목적지는 기사 말마따나 도사리. 휴일을 맞아 집에 찾아온 아들 내외와 함께 읍내에 나와 생고기가 맛있는 푸줏간을 알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란다.

“한 시간에 한 대씩 있는데 그거면 만족해. 불편한 거 없어. 기사님들이 너무 잘해. 배차시간도 잘 지키고 우리한테 친절하고 그러면 됐지. 정류장에서 집이 좀 떨어져 있는데 (내가 타면) 늘 집 앞 골목 쪽에 세워주곤 해. 고맙지. 그래서 읍내에 다녀올 땐 꼭 버스를 타.”

도사리로 이동하는 내내, 송 할머니의 칭찬이 이어진다. 스무 살에 양구에 와 여태껏 살았고 하늘에 먼저 간 며느리 대신 손자를 키우기 위해 하루에도 몇 번씩 버스를 타고 읍내를 오가며 살았는데 그 손자들이 너무 잘 커 대견하다는 인생사도 기사 칭찬에 함께 버무려진다.

송 할머니가 내리고 얼마 후 도고터널을 지나는데 김씨가 계기판을 가리킨다. 정비를 필요로 하는 각종 경고등에 불이 들어와 있다. 터널 안이라 경고등이 더욱 선명하다. 운행 누적거리는 47만8,000km를 웃돌고 있다. 종점에서 5분가량을 쉬고 방산면에서 차고지로 돌아오자마자 김씨는 버스 계기판 아래 케이블에 진단기를 물려 경고등을 초기화시킨다. 다음 운행을 위한 임기응변. 그러나 운행을 시작하면 초기화는 정답이 아니라는 듯, 다시 경고등이 켜진다.

한 명뿐이던 정비사는 자격 논란으로 퇴사해 지금 버스회사엔 정비 인력마저 없다. 김씨는 “승객들의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 운행 중 (계기판에) 경고등이 켜질 때면 늘 불안하다. 왜 안 그렇겠나”라며 “최근에 차량 한 대가 (외부 센터로) 정비에 들어갔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을 아꼈다.

강원도 양구의 유일무이한 농어촌버스 사업자, 현대운수(주)의 버스 노동자는 총 15명이다. 이 중 10명이 매일 10대의 버스를 하루에 여섯 번씩, 노선을 달리하며 운행에 나선다. 양구군민에겐 없어선 안 될 ‘군민의 발’로서 지역과 지역을 씨줄과 날줄 엮듯 촘촘히 잇는 최전선에 이들 버스 노동자가 있다.

사측은 경영상의 이유로 노후화된 버스를 방치하고 폐업을 운운하며 노동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군청은 노동자들의 바람인 시내버스 완전공영제 시행에 막대한 예산 등을 핑계로 미적거리고 있는 현실에서도 묵묵히 차고지를 나서 노선의 종점을 향해 달리는 이들이 있기에 양구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송 할머니 같은 승객들이 제시간에 부담 없이 집을 나설 수 있다.

2차선 국도, 배차시간이 적힌 한적한 정류장에 앉아 다가오는 버스를 보며 손을 흔드는 승객들이 있는 한, 농어촌버스가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양구에선 오늘도, 첫차는 6시 40분, 해안면으로 운행에 나선다.

'양구군민의 발' 현대운수 버스가 2차선 국도를 내달리고 있다.
'양구군민의 발' 현대운수 버스가 2차선 국도를 내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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