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청학농협, 산골 소농들에게 더욱 빛나는 농협의 가치

[지역농협의 역할을 고민하다⑤] 경남 하동 지리산청학농협

  • 입력 2023.10.15 18:00
  • 수정 2023.10.27 16:3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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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3월 8일 치른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조합장의 초선·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국 지역 농·축협이 운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본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농·축협 여덟 곳을 격주로 소개함으로써 전국 농·축협 임직원·조합원들이 각자 조합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지난 10일 지리산청학농협 작업장에서 밤 선별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 이 지역은 밤 수확 막바지 시기며, 사진의 선별작업 물량은 전량 수출한다.
지난 10일 지리산청학농협 작업장에서 밤 선별 작업이 진행 중이다. 현재 이 지역은 밤 수확 막바지 시기며, 사진의 선별작업 물량은 전량 수출한다.

지리산청학농협(조합장 오흥석)은 경남 하동군 횡천면·청암면 전체와 옥종면 일부를 관할하는 농협이다. 관할지역이 3개 면에 걸쳐 있어 제법 넓은 것 같아도, 막상 지도를 보면 사방이 빼곡이 산으로 둘러싸인 작은 마을들의 연속. 인구도 적고 농지도 귀한, 전형적인 산골 지역이다. 당연히 대부분의 조합원들은 영세 소농이다.

파종부터 관리·수확에 이르기까지 농사의 모든 과정이 소농일수록 불리하게 마련이지만 판매와 유통은 더욱 그렇다. 출하하는 물량의 단위가 작아 교섭력이 형성되지 않고 관심갖는 수집상마저 드무니 좋은 가격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소농이 많은 지역이야말로 농협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지역이다.

이 지역의 주 산물은 나물류다. 지리산의 청정 자연환경에서 채취한 취나물·두릅·고사리·들미·누릿대 등 다양한 산나물은 농지가 부족한 산촌에서 농민들의 중요한 소득원이 돼왔다. 양파·마늘처럼 소비가 안정적인 품목도 아니지만, 지리산청학농협은 지역 농민들이 생산한 이 나물들을 전량 유통해주고 있다.

아예 나물류를 지역 특화품목으로 뿌리내리는 데 앞장서온 것도 농협이다. 쌀·보리 위주로 채워져 있던 농지에 1990년대 말부터 하우스를 짓고 지리산 취나물 종자를 갖다 심기 시작했으며, 2001년부턴 종자 지원사업으로 산주들에게 산나물 종자를 반값 제공함으로써 풍부한 임업자원이 유지되도록 했다. 최근엔 고령으로 운신이 힘든 조합원들을 위해 봄철 수확기면 아침 6시부터 농협 순회수집단이 마을 곳곳을 돌며 나물을 수집해오고 있다.

유통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건 ‘산지경매’다. 농협 직원이 경매사, 각지의 상인들이 중도매인 역할을 맡아 농협 유통센터에서 여는 간이경매를 말한다. 남해·통영·사천 등 경남권 농협 일부에서 나타나는 거래방식인데 내륙 쪽에선 지리산청학농협이 선구적 모델로 꼽힌다. 대구·부산 등 영남지역 각지의 상인들에게 쏠쏠한 거래처로 각인돼 있으며, 운송과정과 중간유통 단계를 줄여 농가수취가를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지리산청학농협 작업장에서 선별을 마친 밤을 모아 세척할 준비를 하고 있다.
지리산청학농협 작업장에서 선별을 마친 밤을 모아 세척할 준비를 하고 있다.

물론 나물류가 이 지역 농업의 전부는 아니다. 1~6월 하우스 취나물과 산나물이 끝나갈 때쯤이면 6월 매실철이 돌아오고, 혹서기를 지나면 가을철 밤과 대봉감이 차례로 숙기를 맞는다. 10월 말부터 이듬해 4월 초까지는 딸기의 계절이다.

산골 소농들의 삶의 궤적이 그대로 묻어나는 농사 주기로, 지리산청학농협이 연중 그 뒤를 받치고 있다. 가을 주력 품목인 밤은 철저한 품질 관리로 수출길까지 개척하고 있으며, 판로 개척이 어려워 부득이 도매시장에 기대고 있는 딸기엔 물류비라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새로운 시도도 전개하고 있다. 개울물을 차단하고 순수 지하암반수만 사용하는 ‘청정 미나리’를 2016년부터 전략 육성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리산 천혜의 환경조건을 이용해 일반 물미나리보다 청결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소비자에게 다가가겠다는 계산이다. 올해는 7~9월 휴경기에 처음으로 ‘여름 취나물’을 재배해 성공적인 결과를 도출, 농가소득 증대의 새로운 무기를 찾아냈다.

소위 ‘잘 나가는’ 지역농협 본관 사무실 진열장엔 저마다 휘황찬란한 상패·상장·트로피가 빼곡하게 진열돼 있기 마련이다. 지리산청학농협의 사무실은 이들 농협에 비해 간소하고 빈약하지만, 농협은 수치로 재단할 수 없는 무형의 가치가 더욱 중요한 조직이다. 농업 여건이 열악하고 농민들의 규모가 작은 산골 지역에서 충실하게 농협의 역할을 이행하고 있는 지리산청학농협은, 이곳 조합원들에겐 어떤 ‘스타 농협’보다도 소중하고 빛나는 농협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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