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연임’이 막고 있는 농협법 개정안, 그 내용은?

  • 입력 2023.10.08 18:00
  • 수정 2023.10.12 10:1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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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현재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인「농업협동조합법」개정안(임시 의안번호 DD11285)은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도입과 현직 소급적용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지만, 20개 법안이 합쳐진 대안법안인 만큼 연임제 외 다른 내용들도 대거 포함돼 있다. 연임제 논란에 의해 한 묶음으로 계류돼 있는 이 법안의 굵직한 내용들을 정리해 소개한다.

 

도시농협 농업부문 역할 제고

도시 농·축협이 신용사업 수익 증대에만 골몰하고 농업에 기여하지 않는다는 건 도농 불균형발전의 역사와 함께해온 오랜 비판거리다. 개정안은 ‘도시조합’의 개념을 법으로 정의하고 농업부문에의 역할을 직접 부여하려 한다. 도시농협이 농촌농협의 농산물 판매사업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게 하는가 하면, 신용매출 총이익의 3% 내에서 도농상생사업비를 납부케 한다. 도농상생사업비는 기금으로 조성해 도시농협-농촌농협의 공동사업, 상생협력 활동, 기타 지원사업 등에 사용된다. 기금 운용은 정부·중앙회·조합장·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상생협력위원회가 맡는다.

사실 도시농협 역할 제고는 법 개정과 별개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이 임기 내내 공을 들여온 일이다. 도농상생 기금이나 공동사업이 이미 탄력을 받고 있어 법 개정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법적 근거를 마련해 이 탄력에 안정성을 부여한다는 의의를 갖는다. 또한 도시조합에 연도별 농산물 판매목표액을 정하고 달성케 하는 조항도 들어 있다.


비상임조합장 임기 제한

현행법은 지역농협 상임조합장의 연임을 2회로 제한하는 반면 비상임조합장 연임은 무제한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는 비상임조합장의 장기집권에 따른 조합 사유화, 부정비리 만연의 단초가 되고 있다. 사실상 종신에 가까운 10선·11선 조합장까지 등장하는 실정인데,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기득권을 혁파하는 일이라 20년 가까이 법이 개정되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선 네 명의 의원이 비상임조합장 연임 제한(2회) 법안을 발의했고 이번 개정안에 해당 조항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가장 큰 아쉬움을 남기는 조항이다. 다음 선거부터 바로 4선 출마가 제한되는 게 아니라, 다음 선거 당선자를 일괄 초선으로 간주하는 방식이다. 즉 현 3선 조합장은 6선 집권, 10선 조합장은 13선 집권이 가능하며 2039년이 돼서야 법 개정의 효과가 발생한다. 대표발의 의원 중 하나인 신정훈 의원이 농해수위 의결 당시 “법안의 본 취지와 다르다”고 강하게 반발했지만 끝내 수정되지 않았다. 특히 이 ‘비상임조합장 연임제한 유예적용’ 조항은 ‘중앙회장 연임허용 소급적용’ 조항과 나란히 놓고 봤을 때 완전히 모순된 모습을 보여준다.
 

지난 5월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 법안을 규탄하고 있는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농해수위에선 신정훈·윤준병·윤미향·안병길 의원만이 산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지만, 법사위에선 대다수의 야당 의원이 연임 조항을 집중 지적하는 분위기다. 국회 영상중계 갈무리
지난 5월 11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농협중앙회장 ‘셀프연임’ 법안을 규탄하고 있는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과 지난달 21일 열린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 농해수위에선 신정훈·윤준병·윤미향·안병길 의원만이 산발적으로 반대 의견을 냈지만, 법사위에선 대다수의 야당 의원이 연임 조항을 집중 지적하는 분위기다. 국회 영상중계 갈무리

중앙회 회원조합지원자금 투명화

중앙회장 연임제 반대에 앞장서온 윤미향 의원은 지난 3월 다양한 농협 개혁안을 하나의 법안에 담아 발의했는데, 대표적인 내용이 중앙회 회원조합지원자금 투명화다. 회원조합지원자금은 중앙회가 회원조합에 분배하는 무이자자금으로, 자금 규모와 분배 방식이 모두 베일에 싸여 있다. “임원들 마음대로 나눠주는 게 아니냐”는 의심과 더불어, 일각에선 중앙회가 회원조합을 통제하는 수단 중 하나로 지목되고 있다.

개정안은 이 자금을 양지화하고 운용계획 수립, 심의기구 설치(외부전문가 과반 할당), 운용정보 인터넷 공개 등을 의무화해 투명성을 담보하려 한다. 또한 중앙회 지역농정협력활동, 회원 상호협력, 공동사업개발 등을 위한 운영협의회를 설치(조합장으로 구성)하고 역시 그 회의록을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최근 중앙회가 적극 수용해 연임제 관철을 위한 양보조건으로 활용하고 있다(중앙회장 권력 약화). 하지만 회원조합지원자금은 중앙회장이 가진 다양한 권력수단 중 하나일 뿐이며 그나마도 개정안을 적용해보기 전엔 실효성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 현 상태에선 기준이 없던 중앙회 일부 운영에 최소한의 체계성을 부여했다는 의미 정도를 새길 수 있다.

 

농협 계열사 명칭사용료 인상

농협 이름을 달고 있는 농협금융지주·농협경제지주와 그 계열사들은 중앙회에 일종의 명칭사용료를 납부하고 중앙회는 이를 농업분야에 사용하는데, 연간 5,000억원 규모의 이 돈을 ‘농업지원사업비’라 한다. 계열사들이 수익에 비해 농업지원사업비를 인색하게 납부한다는 건 매년 국정감사에서 되풀이되는 단골 지적사항이다.

매출액(또는 영업수익)의 2.5%로 돼 있는 농업지원사업비 부과율 상한선을 3% 내지 5%로 올리자는 법안이 지난해 말부터 연거푸 발의됐는데, 개정안엔 5%로 최종 수록됐다. 현재 농협이 법정상한선(2.5%)에 한참 못 미치는 1% 수준의 부과율을 운용 중이긴 하지만, 법정상한이 두 배로 커지면 실질부과율 역시 그에 비례해 상향 압박을 받으리라는 게 농협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부과율 상향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을 경우, 적어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의 지적 빈도와 강도가 대폭 증가할 것이 자명하다.
 

지난해 10월 7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농협 본관 인근에서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반대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0월 7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관에서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협중앙회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린 가운데 전국협동조합노동조합 조합원들이 농협 본관 인근에서 농협중앙회장 연임제 반대 현수막을 펼쳐 들고 있다. 한승호 기자

내부통제기준 강화

지난해 전국 지역농협에서 꼬리를 물듯 발생한 대규모 횡령과 성추행·갑질 사태 이후 등장한 이슈다. 현행 법률에 따라 중앙회엔 임직원 직무 수행에 기본적인 절차와 기준을 제시하는 ‘내부통제기준’이 마련돼 있다. 이 내부통제기준이 제대로 작동만 돼도 과도하게 빈번하고 방만한 비위사고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계산이다.

현행법은 중앙회에 내부통제기준을 만들고 그 준수 여부를 점검하는 준법감시인을 두라고만 규정해 놨는데, 개정안은 여기에 내부통제기준 운영실태 점검과 취약부분 개선 의무를 추가했다. 아울러 회원조합 단위에도 내부통제기준과 준법감시인을 두도록 규정을 신설했다. 단, 조합 준법감시인 자격조건은 중앙회보다 느슨해서 조합 상임감사 또는 직원이 맡는 것도 가능하다. 폐쇄성이 큰 조합이라면 개정의 의미가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조합장 직선제 공고화 등

그 밖의 조항으로는 조합장 선출 방식을 조합원 투표로 일원화한 부분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조합이 조합원 투표로 조합장을 선출하고 있지만 현행법엔 투표 대신 대의원회·이사회 선출을 허용하는 조항이 있다. 개정안은 품목조합 이외의 조합은 조합장을 반드시 조합원 투표로 선출하도록 못 박았다.

중앙회 이사엔 농협경제지주 대표 2인과 농협금융지주 대표 1인을 당연직으로 포함시켰다. 농협중앙회장의 권한을 분산시키고 중앙회-지주회사의 유기적 연계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발의자인 윤준병 의원은 이사회 구성원의 과오로 인한 손실 발생 시 중앙회장·이사들이 연대책임을 지도록 설계했는데, 정작 핵심이라 할 만한 이 연대책임 조항은 농해수위의 개정안 정리 과정에서 탈락했다.

윤준병 의원은 중앙회 인사추천위원회(임원 인사 추천)의 후보 공개모집 및 회의록 작성, 인사교류심의회(중앙회 및 지주회사 인사교류 심의) 설치 등 중앙회 인사투명성 제고 법안도 발의했지만 역시 농해수위 단계에서 탈락했다. 윤 의원은 연임 법안과 관련해 국회의원-농협중앙회 간 인사청탁 의혹을 정면으로 제기했던 인물이다. 더불어 윤미향 의원이 발의한 ‘농협중앙회장 조합원직선제’ 조항도 농해수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제의 ‘셀프연임’ 조항,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 모든 내용을 담은 농협법 개정안이 두 달째 법사위에 계류돼 있는 이유는 물론 중앙회장 ‘셀프연임’ 조항 때문이다. 과거 연임제 시절의 비리 악몽이 가시기도 전에, 단임제 도입의 성과를 확인하기도 전에 연임제로 회귀하려는 것부터가 논란거리지만, 심지어 연임제를 현직 회장에게 소급적용하려 한다. 단순히 현직 회장에게 출마권을 부여하는 게 아니라, 이미 숱하게 제기된 농협 조직의 특성상 재선을 보장해주는 것과 진배없는 특혜 법안이다.

이 조항이 존재하는 한 법안엔 논쟁이 끊일 수 없다. 야당 법사위원 대다수가 엄포에 가까운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결사 저지를 외치는 농민·노동·시민단체들도 건재하다. 반대 단체들은 연임제 조항 내지 현직소급 조항 삭제를 요구하고 있으며, 법안에 필수불가결한 개혁 요소가 있는 게 아닌 이상 법안 자체를 폐기하는 것도 용인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열거한 여러 조항들이 주는 순기능보다 중앙회장 ‘셀프연임’이 가져올 도덕적·구조적 퇴행을 훨씬 크게 보고 있다는 뜻이다.

법사위는 국정감사 이후인 11월경 이 법안을 다시 논의할 전망이다. 현재 법사위원들의 요구에 따라 농림축산식품부가 각 반대단체들의 의견을 수렴 중이며 농협중앙회도 법안 통과를 위한 마지막 뒷심을 준비하는 낌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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