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정의 위해 다시 모인 우리, ‘위기를 넘을 힘’ 과시하다

서울 도심서 ‘9.23 기후정의행진’ 성사 … 3만여 ‘기후위기 당사자’ 참가
기후재난에 죽지 않을 권리, 생태학살 중단, 사회 공공성 강화 등 촉구

  • 입력 2023.09.25 03:40
  • 수정 2023.09.25 09:11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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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3만여명의 시민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며 일제히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3만여명의 시민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며 일제히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3만여명의 시민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며 일제히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3만여명의 시민들이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며 일제히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한살림 조합원들이 '기후·식량위기! 식량주권 실현! 생태농업 전환', '친환경농업! 지구와 미래를 위한 선택'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한살림 조합원들이 '기후·식량위기! 식량주권 실현! 생태농업 전환', '친환경농업! 지구와 미래를 위한 선택' 등의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1년 만에 다시 서울 도심 한복판에 모인 3만여 ‘기후위기 당사자’들의 가장 절박한 요구는 기후재난으로 ‘죽지 않을 권리’였다. 폭우로 인해 반지하 방과 지하차도에서 죽어간 사람들, 폭염을 무릅쓰고 일하다가 농촌과 도시의 일터에서 죽어간 사람들, 지구 반대편 리비아의 대홍수로 죽어간 사람들. 한국과 전 세계의 기후재난으로 죽어간 모든 생명을 기억하며, 시민들은 다시금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했다.

지난 23일, 시민사회단체 500여 곳이 참여한 ‘9.23 기후정의행진 조직위원회’ 주최로 서울 세종대로에서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 – 9.23 기후정의행진’이 열렸다. 이날 기후정의행진엔 약 3만여명의 시민이 참가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지난해보다 한층 더 구체화된 대(對)정부 요구안을 제시했다. 9.23 기후정의행진의 5대 요구안은 △기후재난으로 죽지 않고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보장 △핵발전과 화석연료로부터 공공 재생에너지로,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정의로운 전환 실현 △철도 민영화 중단 및 공공교통 확충, 모두의 이동권 보장 △생태계를 파괴하고 기후위기 가속화하는 신공항 건설 및 국립공원 개발사업 중단 △대기업·부유층 등 오염자에게 책임 묻고, 기후위기 최일선 당사자 목소리 듣기 등이다.

‘죽지 않을 권리’ 외쳐야 하는 시대

기후재난 시대에 모두가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와 관련해, 본 대회 발언자 중 한 명인 정미진 중대시민재해 오송참사 진상규명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시민대책위) 활동가(충북녹색당 사무처장)는 지난 7월 15일 폭우로 충북 청주시 오송역 인근 궁평2지하차도가 물에 잠겨 14명의 시민이 죽어간 사실을 다시금 상기시키면서, 충청북도와 청주시가 서로 참사의 책임을 회피했던 점, 국무조정실이 참사 원인 관련 감찰 조사에 나섰지만 최고책임자(김영환 충북도지사)에게 어떠한 책임도 묻지 못했던 점 등을 언급했다.

정미진 활동가는 “당시 새벽부터 내린 홍수경보에도 왜 하천(미호강) 바로 옆 지하차도는 통제되지 않았는지, 제방은 왜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내렸는지, 지방정부는 기후재난을 대비할 의지가 있긴 했는지, 참사 두 달 후인 지금도 진상을 알 수 없다”며 “지하차도를 건너다 죽고, 출근길 산사태로 목숨을 잃고, 리비아 대홍수로 1만3,000여명이 죽고 수만명이 실종됐다. 죽고 다치는 이는 누구며,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중략) 지금의 정치·자본 권력이 우리의 삶에서 기후재난을 대비할 기회와 희망을 어떻게 빼앗고 있는지 목도하고 있다. 진상규명과 최고책임자 처벌만이 재난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직접 언급되진 않았지만, 지난 7월 폭우로 농촌 지역에서도 희생자들이 발생했다. 일례로 경북 예천군에선 폭우로 인한 산사태에 15명의 사망자, 2명의 실종자가 발생했다. 또한, 실종자 수색 과정에서 해병대 채수근 일병(순직 후 상병 추서)이 목숨을 잃었다.

“핵발전, 기후위기 대안 아냐”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일본 정부의 핵오염수 방류 규탄 및 석탄화력발전 중단 촉구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일본 정부의 핵오염수 방류 규탄 및 석탄화력발전 중단 촉구 등의 내용이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에서 열린 9.23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

핵발전을 미래 에너지라고 밀어붙이다 '핵발전소 사고' 및 '핵오염수 발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한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긴커녕, 윤석열정부는 오히려 신재생에너지 대신 핵발전 중심 발전체계의 강화를 추진 중이다. 정부는 또한 일본 정부의 핵오염수 방류에 대해 어떤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있다.

기후정의행진 참가를 위해 일본에서 온 사토 다이스케 반핵아시아포럼 사무국장은 핵오염수 해양투기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사과드린다”고 밝혀 참가자들의 박수를 받았다. 사토 사무국장은 “핵발전은 기후위기 대안이 아니다. 사고 위험과 핵폐기물 문제를 지닌 핵발전소는 차별과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재생에너지 확대를 막는다. 기후위기를 빌미로 이뤄지는 ‘노후 핵발전소 승인 연장’과 ‘신규 핵발전소 건설’ 등에 반대하는 아시아 각국의 탈핵운동에 연대해 달라”고 촉구했다.

핵발전과 화석연료 중심 체제를 변화시켜야 하지만, 그 전환 과정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게 기후정의행진 주체들의 신념이다. 화력발전소와 핵발전소는 문을 닫더라도 그곳에서 일해온 노동자들은 마땅히 생존권을 보장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로운 에너지 전환을 위한 태안화력발전소 노동자모임’의 김영훈씨는 “누구도 희생시키지 않는 정의로운 전환을 위해 싸우자”고 주장했다.

“화석연료를 땔감 삼아 타오르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끄자”

지난 5일, 제1차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을 통해 사실상 ‘4대강 사업 복원’을 추진하려던 정부의 계획에 맞서, 국가물관리기본계획 변경 추진 공청회 단상을 점거한 뒤 연행됐다가 석방된 5인 중 하나인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도 발언에 나섰다.

정규석 사무처장은 “아직 끝나지 않은 4대강 사업으로 여전히 우리는 신음 중이다. 케이블카와 신공항으로 국토는 파헤쳐지고 있다. 언제까지 성장과 개발이 지상과제로 군림해야 하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멈춤’이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우리를 둘러싼 자연 생태계를 되살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규석 사무처장은 이어 “물론 (정부와 자본은) 탄압하고 위협할 거다. 연행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재판장에 우리를 불러낼 수도 있다. 그래도 ‘쫄’ 일이 아니다. 주눅 들 게 아니다”라며 “우리의 뒤는 없다. 지금 이 순간이 마지막이고 보루다. 우리가 돌려세우지 않으면, 변화시키지 않으면 파국 앞에서 역전시킬 가능성은 영영 없다. 우리가 변화와 저항의 최전선을 마지막까지 지키자”고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본 대회 막바지 ‘9.23 기후정의행진 선언문’을 통해 “위험한 핵기술이 기후위기 해법이라는 착각에 빠져 ‘핵폭주’를 계속”하고 “일본 정부의 대변인이 돼 핵오염수 투기를 옹호”하는 윤석열정부를 규탄하면서 “(강원도 삼척) 석탄화력발전소는 여전히 건설 중이고, 화석연료 기업은 폭리를 취한다. 기후위기를 온몸으로 맞고 있는 노동자·농민은 외면당한다. 신공항 건설, 국립공원 개발, 하천정책의 후퇴로 생태계는 무너질 위기다. 에너지·교통·의료·주거 공공성은 위태롭다”고 주장했다.

참가자들은 기후정의 실현을 위해 “화석연료를 땔감 삼아 활활 타오르는 자본주의의 탐욕을 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뒤 다음과 같이 밝혔다.

“올해 9월, 전 세계 60만명이 넘는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행동했다. 우리는 고립되거나 혼자가 아니다. 신림동 반지하 세입자와 태평양 섬나라 원주민, 뙤약볕 아래 농민과 발전 비정규직 노동자, 새만금의 흰발농게와 설악산의 산양은 서로 연결돼 있다. 삼척 석탄발전소 공사를 멈춘 행동과 민영화를 멈춰 세운 철도파업, 금강에 펼쳐진 농성장과 핵발전소로부터 이주를 요구하는 천막, 오송참사의 책임을 묻는 싸움과 이동권을 위해 몸을 던지는 장애인의 투쟁, 이 모든 싸움들은 하나다. 하나로 연결된 우리의 연대가 곧 ‘위기를 넘는 우리의 힘’이다.”

“무기장사 기업, 야구나 잘해라”

지난 23일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던 중 도로에 누워 기후재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형상화한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지난 23일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던 중 도로에 누워 기후재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형상화한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던 중 도로에 누워 기후재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형상화한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던 중 도로에 누워 기후재난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을 형상화한 '다이-인(die-in)'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 거리를 행진 중인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 중 일부가 '자원순환 그린워싱 영풍 OUT(아웃)' 등의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종로 거리를 행진 중인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 중 일부가 '자원순환 그린워싱 영풍 OUT(아웃)' 등의 구호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본 대회를 마친 3만여 시민들은 두 갈래로 나눠 행진을 시작했다. 한쪽 대오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 방면(SK 본사, 주한 일본대사관 등 경유)으로, 또 다른 대오는 용산 대통령 집무실 방면으로 행진했다. 시민들은 행진하며 '불평등이 재난이다, 평등해야 함께 산다!', '탈석탄법 제정하고 삼척석탄발전소 건설 중단하라!', '물·전기·가스는 상품이 아니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기후악당 기업’들에 대한 비판도 행진 과정에서 이어졌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래 유가 폭등에 따른 반사이익을 누리며 여전히 정유산업을 주력사업으로 밀고 있는 SK그룹, 경북 봉화 석포제련소 가동 과정에서 막대한 중금속을 배출해 환경을 오염시킨 영풍그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과정에서 우크라이나 바로 옆 나라 폴란드에 무기를 수출 중인 한화그룹 등이 주된 비판 대상이었다. 참가자들은 한화를 향해선 “무기장사 그만해라”, “한화는 야구나 잘해라” 등의 재치있는 구호를 선보였다.

농민들의 요구 “생태농업 전환 지원, 식량주권 실현”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9.23 기후정의행진 참가자들이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방면으로 행진하고 있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9.23 기후정의행진 정리집회에 참가 중인 시민들.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 앞에서 9.23 기후정의행진 정리집회에 참가 중인 시민들.

한편 이날 농민단체 중에선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양옥희, 전여농), 한살림생산자연합회(회장 박용준), 두레생산자회(회장 이진선) 등이 깃발을 내걸고 참가했다. 이번 기후정의행진의 14대 세부 요구안 중엔 “자본의 농업생산 진출을 막고, 생태농업 전환을 지원하며, 농민생존권 보장과 식량주권을 실현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도 포함됐다.

선언문 낭독자 중 한 명으로 이날 무대에 올랐던 문영미 전여농 식량주권위원장(전남 순천)은 “순천시 월등면은 원래 복숭아 주산지로 해마다 복숭아 축제가 열리는 곳인데, 올해는 (기후위기로 인한 복숭아 수확량 감소로) 축제도 못 하게 됐다. 지역 농민들도 복숭아를 수확한 게 없으니 소득 생길 곳도 없어서, 일용직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향하는 상황”이라고 증언하며 “하루빨리 기후위기를 심화시키고 농민을 소외시키는 현 체제를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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