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에 대응하라, 지역 농업의 미래를 설계하라

[지역농협의 역할을 고민하다④] 전남 영암 낭주농협

  • 입력 2023.09.24 18:00
  • 수정 2023.10.27 16:3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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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3월 8일 치른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조합장의 초선·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국 지역 농·축협이 운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본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농·축협 여덟 곳을 격주로 소개함으로써 전국 농·축협 임직원·조합원들이 각자 조합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재면 낭주농협 조합장(왼쪽)이 조합원 박운산씨의 멜론 하우스에서 박씨와 함께 멜론 잎을 살펴보고 있다.
이재면 낭주농협 조합장(왼쪽)이 조합원 박운산씨의 멜론 하우스에서 박씨와 함께 멜론 잎을 살펴보고 있다.

전남 영암은 전통적으로 수박이 유명한 고장이다. 양분이 풍부한 황토와 해양성 기후는 수박 재배에 최적의 환경을 제공해 왔고 이로 인해 영암수박은 전국적으로 제법 탄탄한 인지도를 구축하고 있다.

그런데 수박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을 두고도 영암엔 요 몇 년 멜론 재배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단지 양적 성장이 아니라 터줏대감인 수박을 위협할 정도로 전국적으로 비상한 주목을 받는 분위기다. 이 도전적인 변화의 중심엔 낭주농협(조합장 이재면)이 있다.

낭주농협이 멜론에 관심 갖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중후반이다. 수박은 지역 특산품이긴 하지만 수확기에 많은 노동력을 일시에 필요로 하는 단점이 있다. 농촌엔 이미 당시부터 노동력 감소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장기적인 인력난에 대비하기 위해선, 여름철에 일괄 수확하는 수박보다 작기를 조절해 노동력을 분산할 수 있는 작목이 필요했다. 더욱이 기후변화가 실체화하면서 수박 재배에 유리한 해양성 기후조차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잘 나타나지 않던 병해가 일상화됐고 농민들은 품질 유지에 점점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했다.

한여름뿐 아니라 언제든 소비가 가능하고 출하시기를 조절할 수 있는 작목, 변화하는 영암의 기후와 환경에 맞는 작목. 영암멜론은 그렇게 등장했다. 처음엔 1개 농가가 독자적으로 시작했지만 농협이 관심을 가지면서 두 농가, 다섯 농가, 열 농가로 계속 늘어났다. 작목반이 만들어질 정도가 되면서, 2010년대 초중반부터 낭주농협은 멜론 사업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낭주농협 멜론 선별장에 농가에서 수집해 온 멜론이 쌓여 있다. 낭주농협은 유통출하반을 외주 없이 직접 운영하며 이들이 농가를 방문해 멜론을 수집한다. 이 지역 멜론은 5월부터 11월까지 고르게 출하된다.
낭주농협 멜론 선별장에 농가에서 수집해 온 멜론이 쌓여 있다. 낭주농협은 유통출하반을 외주 없이 직접 운영하며 이들이 농가를 방문해 멜론을 수집한다. 이 지역 멜론은 5월부터 11월까지 고르게 출하된다.

때마침 좋은 계기가 된 것이 농협중앙회의 ‘K-멜론’ 사업이다. 이 당시 농협중앙회는 전국 농협 멜론의 품질을 상향 평준화하고 통합마케팅하기 위해 K-멜론 브랜드를 만들었고, 낭주농협은 여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멜론 사업의 기틀을 다졌다. 중앙회의 유통·마케팅 역량을 십분 활용하면서 자체적인 품질 관리에 열을 올렸고,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 낭주농협의 멜론은 농협 K-멜론 중에서도 최상급의 품질을 공식 인정받고 있다.

낭주농협은 멜론 생산부터 유통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세심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우선 생산 단계에선 품종을 통일하고 수차례의 재배기술 교육으로 품질 규격화를 꾀한다. 영암군·농협중앙회의 재정을 지원받아 하우스 내 흙 교환, 지역 토착미생물 개발·보급 등 지력 관리에도 각별히 애를 쓴다.

생산된 멜론은 상품성 검사를 통과하기만 하면 농협 자체 유통출하반이 새벽이라도 밭으로 찾아가 선별장으로 날라 온다. 선별장은 농협 임원도, 조합원도 없는 직원들만의 공간이다. 행여라도 주관의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다. 정해진 기준에 따라 칼같이 선별·포장된 멜론은 학교급식·직매장·백화점·대형마트·도매시장 등 거의 모든 판로로 나가게 된다.

비파괴 선별기에 줄지어 들어가고 있는 멜론들.
비파괴 선별기에 줄지어 들어가고 있는 멜론들.

처음엔 지역 도매시장(광주)에 아예 멜론 경매가 열리지 않을 정도로 판매가 어려웠지만, 경매사·중도매인들에게 “마음껏 한번 팔아보라”며 자금을 지원하고 적극적으로 하자 물량을 반품해 주면서 결국 안정적 판로를 뚫어 냈다. 당시 낭주농협이 보여 준 ‘배짱’은 지금까지도 도매시장에서 회자되고 있으며, 지금은 경매보다 한층 돈독한 신뢰관계를 요하는 정가·수의매매까지 제법 활성화돼 있다.

‘수박의 벽’을 넘어 멜론을 안착시킨 낭주농협이지만,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벌써부터 ‘멜론의 벽’을 넘을 고민을 이어가고 있다. 당장의 이야기는 아닐지라도 긴 호흡을 가진 농업의 특성상 준비는 아무리 빨라도 늦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농업기술원 또한 낭주농협과 업무협약을 통해 이 고민을 나누고 있는데, 면단위 농협이 시·군 농업기술센터를 뛰어넘어 도 농업기술원과 머리를 맞대고 있다는 것부터가 이 분야에서 낭주농협의 특출난 위상을 보여준다. 그 특출난 존재감으로 인해, 영암 농업의 미래는 다른 지역들보다 조금은 더 기대를 걸어 봄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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