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웨이

  • 입력 2023.09.17 19:09
  • 기자명 한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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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한승호 기자

논콩 심은 들녘마다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다. 푹푹 찌는 날씨에 ‘논콩 수해피해 전액보상!’ 농민들 이마에 두른 붉은 머리띠는 땀에 젖어 흥건하다. 장맛비에 이은 수해로 황톳물에 완전히 잠겼던 논콩, 침수 피해가 없었다면 논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무성해야 할 콩잎은 오간 데 없이 키만 웃자라 손 한 뼘 크기에 머물러 있다.

두 필지 가득 듬성듬성한 논콩을 바라보니 속이 시꺼멓게 타들어 가는 농민들은 애꿎은 담배만 연신 찾는다. 속이 시끄러운 만큼 들판 여기저기서 담배 연기가 피어오른다. 본디 논에는 벼, 밭에는 콩이건만 쌀이 넘쳐난다고, 쌀이 남아돈다고, 논에 콩 심으라는 정부 정책에 따라 논에 콩 심었더니 사달이 났다. 물구덩이 논에 콩 심은 농민들은 무슨 팔자란 말인가.

여러 대의 트랙터가 두 필지의 논콩을 갈아엎는다. 자라다 만 콩잎이라 트랙터 로터리날이 돌아가기 무섭게 흙 속에 파묻히기 일쑤다. 여리여리한 콩잎이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며 ‘피눈물 머금고 갈아엎는다’는 농민들의 말을 곱씹는다.

‘논콩? NO콩! 콩농사 다 망했다. 정부가 책임져라!’, ‘정부말 듣고 논콩 심었는데 정부가 책임져라!’, ‘국민을 먹여 살리는 것도, 기후위기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것도 모두 국가의 책임이다. 그 책임지라고, 대통령도, 농식품부 장관도 그 자리에 앉혀 놓는 것이다. 도대체 농정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단 말인가?’ 들녘 곳곳에 내건 현수막 속 문구가 농심을 대변한다. 구구절절, 농민들 말이 적확하다.

전북 익산과 정읍, 전남 강진과 보성, 영광, 화순 그리고 충남 예산과 부여. 이곳은 모두 지난달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농민들이 눈물을 머금고 논콩을 갈아엎은 지역이다. 지역은 달라도 논콩을 짓이기는 트랙터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나 살풍경이었다.

농민들의 논콩 갈아엎기 투쟁이 이어지자 정부는 침수피해 농가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여기엔 정부가 장려한 전략작물을 논에 심은 농가에게 수확 여부와 상관없이 전략작물직불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그러나 농민들은 쌀 감산을 목표로 논에 타작물 재배를 권장하는 정책부터 재고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난 시대에 올해와 같은 피해가 내년에도 반복되지 않으리라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내년 예산안에 논 타작물 재배 관련 예산을 더 쓰기로 확정했다. 농민들의 우려에도 정부는 결국 ‘마이웨이’를 선언한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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