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남북협력, 꼼꼼하게 준비하자

  • 입력 2023.09.17 18:00
  • 수정 2023.09.17 18:52
  • 기자명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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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염규현 통일디자인연구소 연구원

 

전 세계가 참으로 힘든 여름을 보냈다. 올해는 더이상 부정할 수 없는 기후위기의 시대를 맞아 모든 국가가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인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소중한 결실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미국 농무부가 지난 8월 말에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올해 북한의 쌀 생산량은 지난해와 비슷한 210만톤으로 추정된다. 우리 농촌진흥청도 비슷한 수치를 예상한 바 있다. 미 농무부는 북한의 1ha당 쌀 생산량이 최근 5년 평균치에 비해 다소 감소했으나, 쌀농사 면적이 조금 늘었고, 6~7월 작물 재배 지역 날씨도 나쁘지 않았다고 분석하고 있다. 국경 폐쇄로 인해 비료, 개량종자, 농기계, 부품, 제초제 등의 물품 반입이 어려워 생산이 늘지 못했다는 점도 명시했다. 주지하다시피 북한은 올해 경제발전 12개 고지 중 첫 번째로 ‘알곡’을 꼽고 식량 증산에 큰 노력을 기울여왔다. 최근에도 연일 가을걷이(추수)와 낟알털기(탈곡)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8월 말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수해 피해 복구현장을 찾아 간부들을 크게 꾸짖어 화제가 된 바 있는데, 이 역시 식량 증산에 대한 북한 당국의 절박성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북한은 한 해 농사가 잘 돼도 매년 100~160만톤 정도의 식량을 추가로 수입해야 한다. 경직된 농업정책과 낙후된 장비, 부족한 비료, 척박한 환경 등으로 인한 결과다. 북한은 그 부족분을 중국 등에서 수입하고, 옥수수 등의 쌀이 아닌 곡물로 대체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3년의 시간 동안 수입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다. 식량 수급의 자체적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했으리라 예상하지만, 우리는 지난 3년 북한의 식량 상황을 여전히 온전히 알 수 없다.

지난 3년간 이어진 남북관계 경색의 장기화도 북한의 식량 상황을 긴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과거 우리 정부는 장기차관 혹은 무상지원의 형태로 북한에 쌀을 보냈다. 여기에 국내 민간단체들도 적지 않은 힘을 보탰다.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비롯한 많은 민간단체들이 북한 농업분야의 개선과 식량 안정화를 위해 다양한 지원, 협력사업을 벌여왔다. 같은 민족이 굶주림에 고통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 ‘인도주의’의 발로였다. 우리 정부와 민간의 지원이 북한 식량 안정화에 크게 기여했음은 북한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비록 당국 차원에서 사의를 표하지는 않았지만, 북한을 찾은 국내 민간단체 일군들에게 늘 감사의 메시지를 전했다.

하지만 벌써 내년이 걱정이다. 정부가 내년 남북협력기금을 대폭 축소했기 때문이다. 6년 만에 남북협력기금 예산 규모를 1조원 미만으로 줄여 편성했다. 남북경협 분야는 약 40%, 인도적 문제 해결 분야는 약 20% 감소했다. 대신 북한인권문제 해결, 탈북민 지원 분야는 대폭 인상했다. 북한의 호응이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지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언제라도 남북관계의 변화가 이뤄질 시 투입할 수 있는 예산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3자 합의 방식의 인도지원 사업도 지원하지 않기로 했다. 이는 ‘하노이 노딜’ 이후 남측의 직접 지원을 북한이 거부하자, 중국의 중개단체가 참여해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이때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남북협력기금 지원 사실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사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북한에 인도적 지원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지원 주체가 한국임을 공개해야 한다.

이러한 조치가 향후 남북협력사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정확히 예상할 수 없다. 하지만 긍정적인 작용을 할 것 같지는 않다. 북한의 특성상 체면을 구겨가며 굳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민은 굶주리는데 체면이 밥 먹여 주냐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만 이뤄지지 않는 것이 바로 남북관계다. 당연히 남북관계는 단순치 않다. 단순함을 넘어선 치열한 고민과 혜안이 필요하다. 뭐든지 화끈하게 밀어붙이려 하는 현 정부가 우려스러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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