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합병의 좋은 예 … 동밀양농협이 제안하는 농협의 미래

[지역농협의 역할을 고민하다③] 경남 밀양 동밀양농협

  • 입력 2023.09.10 18:00
  • 수정 2023.10.27 16:37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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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3월 8일 치른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조합장의 초선·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국 지역 농·축협이 운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본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농·축협 여덟 곳을 격주로 소개함으로써 전국 농·축협 임직원·조합원들이 각자 조합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동밀양농협 농산물유통사업소에서 기간제로 고용된 지역 주민들이 깻잎을 소포장하고 있다. ‘밀양깻잎’은 지리적표시 등록된 지역 특산물이며 동밀양농협이 취급하는 다양한 지역 농산물 중에서도 단연 주력 품목으로 꼽힌다.
동밀양농협 농산물유통사업소에서 기간제로 고용된 지역 주민들이 깻잎을 소포장하고 있다. ‘밀양깻잎’은 지리적표시 등록된 지역 특산물이며 동밀양농협이 취급하는 다양한 지역 농산물 중에서도 단연 주력 품목으로 꼽힌다.

농협은 농민에 의해 지탱되는 조직이다. 농촌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사회적 문제와 별개로 농협의 존속을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 인구 유입이 활발하지 않은 지역일수록 농협은 조합원 수를 늘리고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 인근 농협과의 통폐합을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지역농협 합병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 썩 좋지 않은 이유는 상당수 합병이 단순 경제논리에 따르거나 수동적으로 이뤄지는 데 있다. 밀도 있는 고민이 선행되지 않으니 합병의 목적과 성과는 손쉬운 신용사업 위주로 쏠리게 된다. 경남 밀양 동밀양농협의 합병 사례는, 이같은 일반 인식에서 벗어나 세간의 호평을 불러오며 농협 합병의 우수사례로 꼽히고 있다.

산동농협(합병 1년 전 동밀양농협으로 개명)이 상동농협을 흡수합병한 건 지난해 10월. 농협중앙회의 합병권고 없이, 경영수지가 건실한 두 농협이 스스로 결정한 자율합병이다. 급속히 고령화돼 가는 지역 현실을 감안해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조직을 합병하면 규모가 커지는 건 당연하다. 합병 주체인 산동농협의 관점으로 보면 관할지역이 단장·산외면에서 상동면까지 확장됐고 조합원은 2,300명에서 3,500명으로 불었다. 금융자산(여수신 합계)은 3,000억원에서 5,000억원으로, 경제사업 실적은 800억원에서 1,200억원으로 늘어났다.

금융자산 증가가 조합 경영에 큰 활로가 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지 눈에 보이는 2,000억원의 증가가 전부가 아니라, 이를 운용해 얻을 수 있는 자본이익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합병을 준비하는 대다수 농협의 눈이 신용사업에 쏠리는 게 이 때문이다.

다만, 동밀양농협의 눈은 신용사업보다 경제사업을 조금 더 집중해서 보고 있다. 특히 상대적으로 경제사업 역량이 약했던 상동농협의 조합원들이 산동농협 경제사업 인프라에 합류하면서 동밀양농협의 경제사업은 어느 때보다 활기를 띠고 있다.

2020년 개설한 동밀양농협 농산물유통사업소는 깻잎·대추·엽채·버섯 등 조합원이 생산한 농산물을 매취·수매해 소포장하고 출하하는 업무를 수행한다. 첫해 매출 20억원으로 시작해 올해 50억원 달성이 유력하고 내년엔 80억~100억원 목표를 세우고 있다. 향후 5년 내에 400억~500억원 달성을 논할 정도로 그 성장세가 비약적이다.

음료를 생산하는 가공공장도 분투 중이다. 농협 음료가공은 국산원료 사용으로 민간업체와 가격경쟁이 불가능한 탓에 적자가 필연인 사업이다. 대다수 농협이 공장 문을 닫았지만 동밀양농협은 우리 농민들에게 기여한다는 취지로 운영을 유지하고 있다. 조합원들이 생산한 쌀·보리로 만드는 ‘해담드리 식혜’는 급속공정을 지양하고 전통 제조방식(2일 숙성)을 고집해 시장에서도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동밀양농협 가공공장에서 자체 생산한 국산농산물 음료 제품들이 동밀양농협 하나로마트에 진열돼 있다.
동밀양농협 가공공장에서 자체 생산한 국산농산물 음료 제품들이 동밀양농협 하나로마트에 진열돼 있다.

앞으로의 경제사업은 더욱 희망적이다. 합계 600평 규모의 신규 농자재센터·하나로마트가 오는 20일 가개장, 내달 18일 준공을 앞두고 있어 지역 농업에 크게 기여할 전망이며 지난 7월엔 인력중개센터를 설치해 농업인력난 해소를 위한 고민을 시작했다. 모두 안정적인 조합 합병을 발판 삼아 추진하는 사업들이다.

번외로, 합병 당시 동밀양농협은 농협중앙회로부터 합병지원으로 520억원의 무이자자금을 받은 바 있다. 최근의 고금리 상황에서 이 무이자자금이 주는 실질이익은 20억원 수준. 동밀양농협은 농약 30%, 영양제 10% 할인지원 등으로 이 20억원의 혜택을 전액 조합원들에게 돌려주고 있다. 부실농협끼리 합병을 했다면 부실을 메우는 데 들어갔을 돈이지만, 건실한 농협끼리 합병을 하니 조합원들에게 돌려줄 여력이 있는 것이다. 농약 할인지원 30%, 경제사업 실적 1,000억원 모두 면단위 조합으로선 드문 사례다.

동밀양농협의 합병은 지역 인구감소 문제에 대한 선제적 고민에서 시작해 추진 과정과 합병 이후에 이르기까지 지역 농업·농민을 위한 농협 본연의 기능을 놓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모범적이며 실제로 많은 조합원들이 만족을 드러내고 있다. 조합장과 임원들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조합원 우대’ 정신은 동밀양농협의 향후 행보에도 기대를 품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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