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 사라져가는 텃밭 … 깊어가는 ‘도시 출몰 농부’의 고뇌

  • 입력 2023.09.03 18:00
  • 수정 2023.09.08 11:2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도시에서 농민이 농사짓던 논밭이 사라져가더니, 이젠 시민이 농사지을 텃밭마저 사라질 위기다. 도시민이 최소한의 공동체를 꾸리며 생태농사를 진행해 온 공간인 텃밭. 이곳을 ‘공적 공간’으로서 지키자는 목소리는 강고한 개발 논리 아래 짓눌리고 있다.

광복절 아침, 포크레인에 토종텃밭이 밀리다

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중앙공원 내 호미농장에서 신수오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가 포크레인에 의해 밀려버린 토종텃밭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중앙공원 내 호미농장에서 신수오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가 포크레인에 의해 밀려버린 토종텃밭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중앙공원 내 호미농장의 토종작물이 심겼던 공간. 이 공간은 아파트 공사 준비 과정에서 포크레인에 밀렸다. 땅바닥에 깔려있는 볏짚들이 이곳이 농작물을 재배하던 공간임을 증명한다.
지난달 29일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중앙공원 내 호미농장의 토종작물이 심겼던 공간. 이 공간은 아파트 공사 준비 과정에서 포크레인에 밀렸다. 땅바닥에 깔려있는 볏짚들이 이곳이 농작물을 재배하던 공간임을 증명한다.
호미농장 한 켠에 꽂힌 팻말. '이사 준비 중 - 중요 토종작물 손대지 마세요'라 적힌 글이 눈에 띈다.
호미농장 한 켠에 꽂힌 팻말. '이사 준비 중 - 중요 토종작물 손대지 마세요'라 적힌 글이 눈에 띈다.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중앙공원 내 ‘호미농장’.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대표 신수오)가 2014년부터 운영해 온 이 농장은 생태농사 및 토종씨앗에 관심 있는 광주시민이 모여 함께 농사짓는 장이다. 농사와 함께 생태농업 관련 교육이 항상 진행됐고, 일정을 마친 뒤 참가자들이 함께 밥도 해 먹던, 공동체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호미농장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호미농장이 위치한 중앙공원에 모 건설사가 아파트를 지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2026년 9월경 들어설 아파트 단지 공사를 위해, 벌써 중앙공원 내엔 각종 포크레인과 덤프트럭이 들락날락 중이다.

그러던 중, 호미농장의 도시농부들에게 날벼락이 떨어졌다. ‘빛을 되찾은 날’인 지난달 15일, 호미농장에 심었던 토종작물 상당수가 암흑 속으로 사라졌다. 포크레인이 농장 내 토종작물 및 허브를 심은 공간을 밀어 엎었고, 그 과정에서 작물들이 훼손된 것이다. 땅에 깔린 볏짚들이 이곳이 생태농업을 실천하던 공간임을 증언 중이었다.

그 자리엔 토종씨드림과 전북 순창군 '순창 토종씨앗모임' 구성원들이 “잘 재배하고 증식해 달라”고 부탁한 순창복흥초 토종고추 및 전남 화순 물고구마·순천 섞배기옥수수 등의 작물이 심겨져 있었다. 그나마 쇠파이프 시설을 설치한 농장 안쪽 텃밭은 일단 훼손을 피했지만, 주변부 텃밭 공간은 포크레인에 완전히 밀려버렸다. 농장 입구엔 `토종씨앗이 자라고 있어요’라는 팻말이 표시돼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진 배경으로 ‘민간공원 특례사업’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민간공원 특례사업은「공원녹지법」에 근거해 민간사업자가 공원 면적의 70% 이상을 조성한 뒤 행정당국에 기부채납(개발사업자가 재개발 시 일정 부분의 토지에 공공시설을 설치해 국가·지자체에 무상 제공하는 것)하고, 나머지 30% 부지엔 아파트 등 민간사업자가 원하는 시설을 설치하도록 보장하는 사업이다. 국가·지자체가 도시공원의 실질적 관리 권한을 민간사업자에 떠맡긴 것이고, 민간사업자는 이를 이용해 도시공원 내 녹지를 없애고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다.

호미농장이 들어서고 5년 후인 2019년, 광주시는 중앙공원에 대한 민간공원 특례사업 공고를 냈다. 중앙공원 내 개발사업자가 자체 개발 가능한 ‘나머지’ 부지 내에 호미농장이 존재했기에, 호미농장은 졸지에 ‘불법경작지’가 됐다. 호미농장의 도시농부들도 여길 떠나야 한다는 점은 모르지 않았다. 그러나 그걸 감안해도 이처럼 전격적으로 포크레인이 토종텃밭에 들이닥치리라곤 예상치 못했다는 게 신수오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의 증언이다.

이미 중앙공원 주변엔 “(민간공원 특례)사업 지역 내 일체의 농작물 경작, 폐기물 투기, 물건 적치, 공사시설물 훼손, 공사방해 등의 행위자에 대해 관계 법령에 의거 ‘강력한 법적조치’ 예정”이라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불법경작자’를 신고하면 포상하겠다는 통보도 이어졌다. 광주시 측은 토종작물 훼손 건과 관련해 “민간공원 특례사업 지구 내의 일은 직접 사업을 수행하는 민간사업자의 소관”이라며 책임을 미뤘고, 건설을 추진 중인 민간사업자 측은 “사유지가 아닌 땅에서 진행하는 경작은 불법경작”이라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다.

‘공동체문화’ 꽃피우는 공간, 도시텃밭이 위태롭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살래공동텃밭 내 어린이 교육용 텃밭. 텃밭 앞 표지판에 ‘모두가 빛나는 학교’라고 적혀 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살래공동텃밭 내 어린이 교육용 텃밭. 텃밭 앞 표지판에 ‘모두가 빛나는 학교’라고 적혀 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살래공동텃밭의 전경.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살래공동텃밭의 전경.
지난달 28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살래공동텃밭 내 농작물 재배공간에서 김성원 살래공동텃밭 운영위원장이 설명하고 있다.
지난달 28일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의 살래공동텃밭 내 농작물 재배공간에서 김성원 살래공동텃밭 운영위원장이 설명하고 있다.

한편 경기도 파주시엔 시 당국의 캠핑장 건설 추진으로 인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텃밭이 있다.

파주시 탄현면 살래공동텃밭은 2011년 파주시가 통일동산 부지에 조성한 공공텃밭인 ‘살래텃밭’ 내의 텃밭으로, 생태농업 및 공동체활동에 관심 있는 파주시민들이 모이던 장이다. 파주 도시농부들은 이곳에서 화학비료·농약·제초제 등을 안 쓰고, 비닐멀칭도 안 하고, 삽으로 하는 것 이외의 기계경운도 하지 않는 생태친화적 농사를 실천해 왔다.

살래공동텃밭은 파주시민이 공동체활동을 함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장이다. 김성원 살래공동텃밭 운영위원장은 “도시농업을 체험하러 온 시민이 모여 허브 작목반, 걷기모임, 돌담 쌓기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꾸렸다. 걷기모임엔 암환자들도 참가해, 건강을 위한 걷기 활동뿐 아니라 맨발정원 만들기 작업도 함께했다”며 “공동텃밭 활동에 참가하는 시민들도 이 공간에 애정이 생겨, 자발적으로 벤치 등 정원에 필요한 도구를 기증했다”고 밝혔다.

광주 호미텃밭과 마찬가지로, 살래공동텃밭 역시 ‘개발’ 논리로 인해 사라질지도 모를 상황이다. 파주시는 지난해까지 살래텃밭 자리에 반려동물 테마파크를 설치하려다가 파주시민들의 반발로 철회하더니, 올해는 다시금 이 자리에 캠핑장을 설치하려 한다. 파주시는 최근 ‘캠핑클러스터’ 조성 사업 등을 통한 ‘캠핑산업’ 육성에 몰두 중이다.

이에 살래공동텃밭을 지키려는 파주시민들은 캠핑장 설치를 막고 살래공동텃밭을 보전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임과 함께, 파주시엔 공청회 개최를 요구하고 있다.

김성원 위원장은 “공공텃밭은 농사짓는 공간만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다양한 문화를 꽃피우는 공공장소다”라며 “파주시는 살래텃밭 폐쇄와 캠핑장 건립 여부를 놓고 시민공청회를 개최해, 이 문제를 시민과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아울러 파주시는 현재 시 차원의 도시농업 정책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살래텃밭의 존치이나, 그게 어렵다면 캠핑장 부지 내에 도시농업 공간을 함께 조성하거나, 대토를 마련해 살래공동텃밭을 이전하는 등의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도시농업 공간의 공유지화, 우리에겐 사치인가

김성원 위원장은 도시농업 공간을 ‘공유지’로 바라보며 정책을 추진하는 유럽 각국의 사례를 소개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독일 수도 베를린에선 최근 ‘커뮤니티 가든 프로그램’을 통해, 도시 내 자발적 경작이 이뤄지는 커뮤니티 가든(공동체정원)을 늘리고자 토지를 추가 확보하는 중이다. 최근 베를린에서 유명한 공공텃밭이 없어진 데 따른 시민 저항이 있었고, 이로 인해 조례 제정 등을 통해 도시농업을 위한 공유지를 추가 확보하려는 분위기가 있다. 공공텃밭을 ‘개발이 유보된 곳에 임시로 조성한 곳’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시민의 복지와 삶을 위한 필수 공공장소로서 다시 바라봐야 한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의 일환인 프로젝트팀 ‘도시 안 개구리’의 전시. 이 전시는 '도시 출몰 농부'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생태농업을 실천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의 일환인 프로젝트팀 ‘도시 안 개구리’의 전시. 이 전시는 '도시 출몰 농부'들이 도시에서 어떻게 생태농업을 실천하는지를 보여주는 전시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의 일환인 프로젝트팀 ‘도시 안 개구리’의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 한 쪽 벽엔 호미농장을 지켜온 신수오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가 토종씨앗 713종의 이름을 쓴 나무판들이 걸려 있었다.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의 일환인 프로젝트팀 ‘도시 안 개구리’의 전시가 이뤄지는 공간 한 쪽 벽엔 호미농장을 지켜온 신수오 광주전남귀농운동본부 대표가 토종씨앗 713종의 이름을 쓴 나무판들이 걸려 있었다.

호미농장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불행 중 다행이랄까. 호미농장에서 자라던 토종작물들의 ‘기록’은 남았다. 제10회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전 <생태미술프로젝트> 전시의 일환으로 프로젝트팀 ‘도시 안 개구리’가 생태농업의 가치를 알리는 전시를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진행 중인데, 포크레인에 밀리기 1~2개월 전 호미농장의 풍경을 담은 영상이 전시실에서 상영되고 있었다. 전시실 한쪽 벽엔 신수오 대표가 나무판에 쓴 토종씨앗 711종의 이름이 쓰여 있었고, 그 옆의 TV에선 광주토종학교(그 수업이 이뤄진 곳이 호미농장이다) 출신 학생들이 토종씨앗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는 영상이 재생되는 중이었다.

전시실 입구 쪽 큰 화면엔 광주 무등산 다랑논에서 생태농사를 실천 중인 김영대 맑똥작은정미소 대표의 인터뷰가 재생되고 있었다. 김영대 대표는 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도시 출몰 농부’라는 자조적 표현으로 불렀다. 어느 순간 도시에서 농사짓는 사람은 “도시에 출몰한 멧돼지마냥” 굉장히 낯선 존재가 됐음을 뜻하는 표현이었다. 개발논리로 인해 점차 작게나마 농사지을 공간마저 변두리로 밀려날 상황인 이 땅 농부들의 상황을 그보다 더 정확히 표현하는 단어가 있을까.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