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 입력 2023.09.03 18:00
  • 수정 2023.09.03 19:37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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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둘러봐도 골치 아프고 한숨 나오는 기사들만 가득하다. 그러다 눈이 번쩍하는 기사를 만났다. 최신이거나 단독, 심층기사여서가 아니었다. 그 기사로 무뎌진 마음의 회로가 켜지고 용기를 새로이 얻어서다. 사연은 이렇다. 7월 9일 자로 5년을 꽉 채운 기자 생활. 제대로 하고 싶었던 것만큼 헤맸던 시간으로 일은 좀 익숙해졌지만, 마음은 이상하게 점점 쪼그라들고 있었다.

이때 취재차 제주에서 만난 한 농민은 기자의 질문에 “인터뷰가 탐탁지 않다. 이미 지면에 수십 번도 더 깔렸다. 그런데도 깡그리 무시하고 가잖나?” 제주 제2공항 문제로 집과 농장을 모두 잃을 처지에 놓인 채 8년의 세월을 견뎌온 그 앞에서 말문이 막혀버렸다. 어떻게든 대화의 끈을 이어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다행히 취재는 잘 마쳤지만, 기자로서의 자괴감과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나는 어떻게 써왔고 앞으로 어떻게 써야 할까? 대체 기사가 무슨 소용이 될까? 다시 쓰고, 반복해 쓰는 기사가 많은 나로선 이 일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해야만 했다. 방전된 배터리엔 전원을 빨리 꽂아야 하듯. 전원공급은 의외로 한 주간지에서 이뤄졌다. <시사IN> 831호에 실린 김연수 작가 인터뷰 기사(임지영 기자)였다. ‘등단한 지 30년, 20권이 넘는 책을 낸’ 김연수 작가는 ‘2020년에야 소설가 정체성이 생겼다고’라는 기자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했다. “세상이 바뀌기 직전, 말이 먼저 나온다. ‘차별 철폐하라’는 말이 있은 다음에 차별이 철폐되듯이. 어떻게 생각하면 ‘말만 계속한다고 무슨 변화가 있겠어, 똑같이 나빠질 거야’ 싶지만 그렇더라도 말을 다루는 사람들은 계속 그 말을 해야 한다. 소설가는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는 말하기’를 하는 사람이다. ‘삶이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멋지다! 일단 충전됐다. 구겨졌던 마음이 조금은 펴졌다. ‘이후의 세계를 상정’하며 ‘계속 그 말을 해야 하는’ 역할을 늘 기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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