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농협 조합장은 지역 투쟁의 ‘선봉장’

[지역농협의 역할을 고민하다②] 경북 경주 양남농협

  • 입력 2023.08.27 18:00
  • 수정 2023.10.27 16:38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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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3월 8일 치른 전국 동시조합장선거는 조합장의 초선·재선 여부와 관계없이 전국 지역 농·축협이 운영을 재정비하는 기점이 되고 있다. 본지는 각각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농·축협 여덟 곳을 격주로 소개함으로써 전국 농·축협 임직원·조합원들이 각자 조합의 역할을 고민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자 한다.


권위의식에 젖어 있는 대다수의 농협 조합장들은 집회나 투쟁 일선에 나서기를 꺼린다. 농협의 근간인 ‘농업’의 명운이 걸린 투쟁 현장에서조차 농협 조합장을 찾아보기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농민운동을 넘어 지역운동 영역까지, 심지어 참여를 넘어 주도를 하고 있는 조합장이 있다. 경북 경주 양남농협 백민석 조합장. 세상엔 이런 조합장도 있다.

백 조합장은 1990년대 경주 양남면에 귀농한 이래 열성적으로 농민운동에 투신해왔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2010년대부터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월성원전의 안전성에 의문을 던지는 지역 투쟁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일선 활동가 출신이 농협 조합장에 당선된 사례가 아주 드물진 않지만, 백 조합장은 조합장 당선 후에도 지역 주민대책위원회 공동대표를 맡아 투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점이 뚜렷하다.

양남면엔 이미 중저준위 핵폐기물 처리시설이 설치돼 있어 현행법상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시설을 둘 수 없다. 하지만 법령의 미비를 틈타 고준위 핵폐기물이 이곳에 임시 형태로 지속 보관되고 있으며 그 관리체계는 주민들을 안심시키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월성원전은 원전 일부가 구형인 중수로 구조라 핵폐기물 발생이 많고, 지역 내 삼중수소 검출이 심각한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

수차례의 지역주민 궐기대회와 천막농성, 산업통상자원부 앞 단식투쟁, 산자부 장관의 현장 방문과 대책 약속, 그리고 법률제정 추진. 주민발전협의회장 시절부터 지금까지 백 조합장이 이끌어오고 있는 투쟁과 성과들이다. 박희순 양남면발전협의회장은 “지역 주민들이 원전으로 생활이나 농사에 지장을 많이 받으면서도 연로한 탓에 정부나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을 상대로 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조합장이 이런 농민들 아픔을 잘 달래며 대변해주고 있다”며 “어려운 환경에서 투쟁이 힘을 낼 수 있는 건 이런 무게감 있는 인물이 가운데에 서 있어 주기 때문”이라고 치하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해변에서 바라본 월성원전. 원전으로부터 주민들의 건강과 생활을 담보하기 위한 투쟁의 최일선에 서 있는 이는 ‘농협 조합장’이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 나아해변에서 바라본 월성원전. 원전으로부터 주민들의 건강과 생활을 담보하기 위한 투쟁의 최일선에 서 있는 이는 ‘농협 조합장’이다.

조합장 신분으로 일선 투쟁에 나선다는 게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가장 단적인 예가 2020년 한수원 월성원자력본부 내 양남농협 지점 퇴출이다. 당시 투쟁을 대표하는 백 조합장에 반감을 가진 한수원 일각에서 양남농협 불매운동이 일었고, 결국 지점 사무실 임대차 계약이 만료되자 퇴출되기에 이른 것이다. 금융점포뿐 아니라 각종 물품계약과 마트·주유소사업 등 사업 전반에 걸친 타격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니 농협 내부도 조용할 수만은 없었다. “조합장의 외부활동이 조합에 피해를 끼친다”는 이유로 일부 임원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으며, 한수원 본사와 농협중앙회의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농협중앙회에서도 우려를 비쳤다는 후문이다.

그럼에도 백 조합장은 지난 3월 조합장 선거에서 62.8%의 압도적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한수원발 악재에도 불구하고 취임 전 대비 경제사업 물량 86%, 예수금 16%, 대출금 20%, 자산 19%의 성장을 이끌어내며 내부 잡음을 불식시킨 것이다. 활동가 특유의 ‘애정’과 ‘희생정신’으로 헌신적인 경제사업, 진취적인 신용사업을 이끈 게 주효했다는 평가다. 덧붙여 특유의 친화력으로 도시농협들과의 관계를 구축한 탓에 판매사업 연계나 지원자금 유치도 활발하게 이뤄졌고 이것이 한층 조합 운영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

양남농협은 울산 북구와 인접한 탓에 상대적으로 젊은 관외조합원이 전체의 20%에 달한다. 대부분의 농촌농협이 성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양남농협은 농촌의 작은 농협이면서도 확실한 성장 여력을 갖고 있는 셈이다. 신규 유입 조합원들의 정체성과 조합 이용률을 확보하고, 그들과 어우러져 ‘지역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백 조합장은 지역운동가의 마음으로 그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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