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분노 바이러스와 정치, 그리고 언론

  • 입력 2023.08.20 18:00
  • 수정 2023.08.20 18:24
  • 기자명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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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인정하자. 정말 힘든 여름을 보냈다. 아니, 보내고 있다. 인간의 욕망과 무절제가 만들어낸 자연의 분노 앞에 전 세계가 휘청거렸다. 더 이상 기후위기가 아니다. 기후재난이다. ‘앞으로 몇 년 남았다’가 아닌 이미 다가온 미래다. 에어컨 없이 견딜 수 없는 지금은, 결국 그 에어컨으로부터 시작됐다.

여기에 우린 더 치명적인 상처를 입고 있다. 분노 바이러스의 확산이다. 나에 대한 원한이 아닌 이 세상에 대한, 도무지 참을 수 없고 특정할 수 없는 분노로 인해 누구라도 길을 걷다 죽을 수 있는, 그런 시대를 맞았다. 광기가 일상화돼버렸다. 장갑차 따위가 막을 수 없다.

어쩌다 우린 이렇게 됐을까.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없어도 함께 나누던 우리가 도대체 왜 이렇게 무참해졌을까. 다양한 답을 말할 수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은 이렇다. 우린 적대와 분노에 그 누구보다 익숙해진 민족이기 때문이다.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흘렀다. 유사 이래 같은 민족끼리 70년의 세월 동안 이토록 적대하고 증오한 사례가 있었던가. 끔찍한 전쟁을 치르고도 모자라 여전히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언사와 위험천만한 행동을 지겹게도 반복해 온 민족이 있었던가.

70년 동안 서로를 불변의 절대악으로 만들어 증오해 온 남과 북은 지금도 변함없어 보인다.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물론 아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좌절했고 스스로 무너졌다. 평화에 대한 희망 고문이 무한 반복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또 다른 분노와 체념으로 이어졌다.

지금 우리 사회는 누군가를 저주하고 무너뜨리기 위해 혈안이 된 것처럼 보인다. 당장 나에게 해를 입히지 않았음에도,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가차 없이 공격의 대상이 되어버린다. 그 불씨를 만들어내는 이들이 있다. 바로 언론과 정치다. 분노를 부채질하고 적대를 재생산한다. 이제 더 이상 북한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로가 서로를 향해 불신하도록, 적대하도록 부추긴다.

유튜브 없인 기사가 안 나온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수의 사례가 다수의 이야기로 포장된다. 소수의 행동으로 다수의 생존이 위협받는다. 하지만 언론은 책임지지 않는다. 정확한 사실 확인도 중요하지 않다. 유튜버가 동영상으로 이미 보여주지 않았나.

매일매일 거리를 도배하는 것은, 상대 정당에 대한 비방이 담긴 현수막뿐이다. 어떻게 국민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설명이 아닌, 그저 상대에 대한 저주로 일관한다. 우리 아니면 적이라는 논리는 여기에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결국 먹고 살기 힘들어도 조금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내가 힘든 만큼 이웃도 그만큼 버티며 살아가고 있음을 알려면, 뻔뻔하고 파렴치한 정치인들이 선거 때만 우리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려면, 헛되고 거짓된, 편향되고 무지한 기사를 더 이상 읽고 싶지 않다면 조금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다. 따지고 지적하고 요구해야 한다.

그것이 적어도 지금 필자에겐 북한의 올해 농업 생산성 달성 여부나, 각종 통계를 들먹이며 어설프게 북한 농업을 전망하는 것보다 백배는 중요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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