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무이 선택지 된 ‘배추’ … 현장선 재배면적 폭증 우려

충북·경북 등 수해지역 콩·양배추 대체작물로 배추 재배의향 늘어
김장철 가격 폭락 우려되나 선택지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이식
김장배추 주산지 전남, ‘밀·보리’ 전환 등 선제적 대책 마련 촉구

  • 입력 2023.08.18 09:00
  • 수정 2023.08.20 18:24
  • 기자명 장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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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농민 김제덕씨가 이식을 앞둔 배추 모종을 살피고 있다.
지난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농민 김제덕씨가 이식을 앞둔 배추 모종을 살피고 있다.

폭우·장마 등 이상기후의 여파로 최근 충청북도와 경상북도 일원에선 밭 이모작 후작으로 콩·양배추가 아닌 배추가 식재되고 있다. 아울러 수해를 입은 논콩 재배단지 등에서도 배추 재배가 고려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사실상 지금 시기에 심을 수 있는 작물이 ‘배추’밖에 없기 때문인데, 농민들은 모종을 이식하면서도 김장배추 출하기인 올가을 재배면적 증가로 인한 가격 폭락이 우려된다며 난색을 표했다.

지난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쌍이리 일원의 밭에서 배추 모종을 이식하던 농민 정규천(86)씨는 “감자 수확 후 매년 기계로 콩을 심어 왔는데 올해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도저히 기계를 넣을 수 없다 보니 차선책으로 배추 모종을 키워 이식하게 됐다. 기계가 있기 때문에 콩을 심으면 인력을 안 사도 되는데 여건이 안 돼 배추를 심다 보니 인건비에 배추 모종값은 모종값대로 나가고, 준비한 콩 종자는 콩 종자대로 못 쓰게 됐다”고 탄식했다. 이날 정씨는 배추 이식을 위해 외국인 노동자 9명을 고용했다.

아울러 정씨는 “심을 수 있는 게 배추밖에 없어 심긴 하지만, 이것도 팔려야 파는 거지 솔직히 수확할 때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농사가 도박이 됐다”라며 “배추 말고 다른 걸 심어보려 해도 보리는 이모작 하기에 작기가 맞질 않고 밀 같은 것도 단가가 안 맞아 판매가 어렵다 보니 주변에서도 쉽게 배추를 심고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요 몇 년보다 후작으로 배추를 많이 심는 추세다”라고 전했다.

인근에서 감자 수확 후 양배추를 세 번이나 이식했다는 농민 김제덕(74)씨 역시 해당 밭에 다시금 배추 모종 이식을 준비 중이다. 폭염으로 양배추 생육이 불량해 제대로 된 수확을 기대할 수 없어서다. 오는 23일경 모종을 밭에 이식할 예정이라는 김씨는 “한낮 비닐 속 흙에 손을 대면 뜨겁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폭염이 그렇게 심하니 양배추든 뭐든 살아날 재간이 없는 거다”라며 “양배추 모종을 세 번이나 이식했는데도 가망이 없다. 대신 심을 수 있는 게 배추밖에 없어 급하게 모종을 했는데, 지금쯤 포전을 둘러보고 계약을 할 산지 유통인이 단 한 명도 보이질 않는다. 제대로 판매나 할 수 있을지 심으면서도 걱정이 되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씨는 “모르는 사람들은 그까짓 땅을 놀리면 되지, 다른 사람 다 심어서 가격도 안 나올 배추를 굳이 왜 심냐는 소리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농비(생산비)가 너무 올라 이모작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이윤이 나지 않는 구조다”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김씨는 “전체 농민의 90%가 소농이고, 이처럼 이모작 중 한 작기 농사를 망치면 그 여파를 2~3년 떠안고 있다. 정부에선 청년농민, 스마트팜, 대농 위주의 정책만 펼치고 있는데, 스마트팜을 지을 수 있는 환경도 제한적이고 스마트팜을 짓기 위해 수십억원의 빚을 감당할 농민도 현재 농촌엔 없다”라며 “제대로 된 수급 정책을 마련해 농민이 가격 걱정 없이 농사지을 수 있게 해줬으면 한다. 지금처럼 같은 작물을 심은 다른 지역의 누군가의 농사가 재해 등으로 고꾸라져 내 작물이 제값을 받게 되는 구조가 지속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한편 전국배추생산자협회에서는 현재 배추 파종 상황을 예의주시하며 재배면적 폭증에 대비한 선제적 대책 마련을 논의 중이다. 이무진 배추협회 정책위원장은 “폭우·폭염으로 때를 놓친 밭에 현재 들어갈 수 있는 작목이 배추·무 정도로 매우 한정적이다. 특히 배추 재배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돼 선제적 대책 마련이 그 어느 때보다 시급하다. 배추는 특히 가격 폭등락이 심한 작목 중 하나기 때문에 미리 대응하지 않으면 그야말로 답이 없다”라며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이러한 상황을 파악 중인지는 모르겠으나, 김장배추 주산지인 전남에선 충북·경북 등 식재 면적 증가를 고려해 자발적인 재배면적 감축을 고려 중이다”라고 전했다.

덧붙여 이 정책위원장은 “도와 수급회의 자리를 마련해 배추 대신 밀·보리·유채·메밀 등 다른 품목에 피해가 가지 않게 저장 가능한 지정작물을 설정하고 해당 작물을 심게끔 유도해 가을배추 출하기 가격 폭락을 막자는 논의를 진행했다. 하지만 문제는 정부가 이에 응할 것이냐는 것이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수급 선진화 방안에서 생산자·자조금·지자체의 선제적 역할을 강조한 것처럼 현장 농민들의 판단과 자체적 수급조절 노력에 정부가 책임을 가지면 좋겠다”라며 “모종이야 버린다 쳐도 퇴비 뿌리고 비닐 치기 전인 8월 25일 이전까지 대책이 확정·발표돼야 조금이라도 손실을 줄일 수 있다. 정부의 빠른 판단을 촉구한다. 아울러 배추 작목의 가격안정제 사업 규모 역시 35%가량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농림축산식품부는 구체적인 재배면적 데이터 없이 선제적 대책 마련을 논의하기엔 다소 섣부르단 입장이다. 원예산업과 관계자는 지난 16일 “선제적 조치 필요성에 대한 생산자-지자체 간 논의 상황은 전해 들었다. 일부 배추를 재배하지 않던 포전에서 배추를 식재 중이란 상황에 대해서도 파악하고 있으나 정확한 관측 데이터가 나와야 실제 재배면적 증가 여부와 그에 필요한 대책도 논의할 수 있다”며 “농촌경제연구원의 지난 8월 관측에 따르면 가을배추 재배의향은 지난해 대비 7.5%, 평년 대비 4.4% 감소한 것으로 파악된다. 가을배추는 전체 배추 생산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평년 대비 4.4% 감소한 수치라도 면적 상으로는 굉장히 많은 양이다”라고 답했다. 이어 “농민들의 주장처럼 재배면적이 소폭 늘어났다 하더라도 가을 태풍 등에 의한 생산단수 저하 및 그로 인한 수급 문제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9월 관측이 이달 말쯤 발표되고 그보다 먼저 농경연을 통해 재배의향 윤곽을 파악할 수 있는 만큼 재배면적 증가가 우려될 경우 주산지협의체 등을 통해 향후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지난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쌍이리에서 배추 모종 이식 작업이 진행 중이다.
지난 16일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쌍이리에서 배추 모종 이식 작업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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