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듣기 거북한 말, 대한민국

  • 입력 2023.07.16 18:00
  • 수정 2023.07.16 18:37
  • 기자명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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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연일 무더운 수준을 넘어서는 폭염이 이어지다, 이제는 호우를 넘어서는 폭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해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전년 기록을 갈아치우며, 기후위기가 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땅을 일구고 결실을 얻는 농부에게 더욱 가혹한 지금이다. 필자는 극심한 가뭄이나, 반대로 큰 물난리가 날 때마다 우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살고있는 이들을 떠올린다. 가뭄이나 홍수에 대한 대비책이 우리보다 부족할 수밖에 없는 북한의 주민들이다.

2013년으로 기억된다. 북한이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양수기 지원 논의를 위해 개성을 방문했다. 개성공단을 지나 시내에 접어들기 전, 개울가에 길게 늘어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한 줄로 길게 줄을 서 무언가를 열심히 나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개울의 물을 퍼 날라 논에 대는 작업이었다. 페트병을 반으로 잘라 작은 바가지를 만들어, 물을 떠 옆 사람에게 전달하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러 사정으로 인해 양수기 지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뉴스를 통해 우리는 북한 내각총리 등 고위 간부가 비교적 자주 농업부문 현지시찰을 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김정은 위원장도 농촌부문 현지시찰을 비교적 부지런히 다닌다. 그런 뉴스를 볼 때면, 올해 농사 상황이 그리 좋지 않은 것인가 걱정되기도 하고 때로는 올해 그나마 풍년을 기대하기에 이를 더욱 독려하기 위함인가 추측해보기도 한다. 어찌 됐든 매년 반복되는 “올해의 알곡생산목표를 기어이 점령하여야 한다”라는 구호가 부디 이뤄지길 바라본다.

지난 2021년 12월말 김정은 정권은 기존 북한 유일의 농촌강령이었던 ‘사회주의 농촌테제’(1964년 선포)를 대신하는 ‘새시대 사회주의농촌건설강령’을 채택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사회는 시장화 진전에 따라 빈부격차의 확대, 즉 평양과 비평양, 북중접경지역과 내륙지역, 도농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농민들, 특히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한 농민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한 북한 정권이 이를 잠재우기 위한 새로운 농촌정책의 필요성을 느꼈다는 것이다. 이른바 새 시대 농촌강령의 특징은 농민의 ‘지식형 근로자화’, 과학기술 중심의 농업생산성 향상, 지방과 도시 경제의 균형적·동시적 발전 등이다.

하지만 복잡하고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 역시 사실이다. 아무리 현지시찰을 많이 해도, 아무리 시대에 맞는 농촌정책이나 강령을 채택한다 하더라도, 근본적인 농업개혁조치와 이를 뒷받침할 대규모 재정 투입이 없으면 결실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의 비인도적인 제재 역시 완화돼야 한다. 대북제재가 원칙적으로는 인도적 식량 지원을 금지하고 있지 않지만, 식품 생산을 위한 장비와 비품 수입이 어렵다면, 그것을 과연 인도주의적 제재라 할 수 있을까? 여기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기후위기에 대처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처럼 쉽지 않은 시기에, 참으로 듣기 거북한 말이 북한에서 들려왔다. 김여정 조선로동당 부부장이 미 정찰기의 북한 경제수역 상공 침범에 대한 입장을 담은 담화를 발표하며 우리를 ‘대한민국’이라 칭한 것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우리를 비난하더라도 남조선 당국 등의 표현을 했지, 대한민국이라고 지칭한 적이 없었다. 일부 우리 측 학자들이 주장해왔던 것처럼 이제 각자 ‘투 코리아’로 살자는 의미일까? 더이상 남북은 ‘민족적 특수관계’가 아니라 ‘일반적 국가 관계’라는 것인가? 2019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상대를 증오와 적대로 일관해온 남북 모두 이제는 다시 스스로를 성찰해봤으면 한다.

정전 70년을 맞는 지금,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지긋지긋한 분단의 굴레를 기어이 다시 후손들에게 물려주려 하는 것인지. 염치라도 있다면,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가만히 가슴을 얹고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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