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북녘은] 단절의 시대를 살아가는 법

  • 입력 2023.06.18 18:00
  • 수정 2023.06.19 06:36
  • 기자명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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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염규현 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부국장

 

자유, 공정, 상식. 현 정부 출범 이후 자주 강조되는 것들이다. 마치 현 정부 출범 이전에는 그런 것들이 없었거나, 매우 부족했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한다. 물론 정권의 교체 시기마다 전임 정부의 실정을 부각해 현 정부를 더 돋보이게 하려는 노력은 늘 있었다. 현 정부의 성과를 더욱 빛나게 하려면 비교 대상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과연 그것이 정당한 평가를 기반으로 이뤄지는 것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다. 비교하고 비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으면 된다. 현 정부 역시 임기 종료 후 어떠한 형식으로든 공과를 평가받게 될 것이다. 부디 현 정부가 그리 강조하는 것처럼 상식적이고 공정하게 평가가 이뤄지길 바라본다.

분단과 전쟁 이후 남과 북은 치열한 경쟁을 펼치며 서로 자신이 한반도의 유일하고 정당한 국가임을 강조해왔다. 상대를 비난하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저주하고 증오했다. 이는 남북의 권력 집단이 자신의 권력을 합리화하고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했다. 경제는 물론이고, 외교무대에서도 상대를 따돌리고 더 많은 국가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처절히 노력했다. 지금 돌아보면 유치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일들도 참 많았다. 애초부터 상대를 공존의 대상으로 인정하기보다는 멸절의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 경제적으로 남북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해 보인다. 코로나19 정국 이후 세계 경제가 그렇듯 우리 경제 역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에 비할 바는 아니다. 북한은 가장 기본적인 인민의 ‘먹는 문제’조차 오랫동안 버거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규모 아사자가 속출하던 1990년대 중반과 비교할 것은 아니지만, 현재도 북한은 식량 문제에 늘 ‘긴장하고’ 있다.

과거 남북이 교류하고 협력했던 시기가 과연 있었는지 싶을 만큼 현재 남북 간 긴장과 대립은 장기간, 또한 매우 심각하게 이어지고 있다. 심각하다는 표현은 남북의 군사적 충돌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는 생각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 고도화에 맞서 우리 역시 핵을 개발해야 한다는 무서운 이야기들이 심심치 않게 들리기도 한다. 비록 미국 등의 반대(사실상 불허)로 자체 핵개발론은 수면 아래로 들어갔지만, 남북 간 우발적인 충돌이 발생한다면 언제라도 다시 불거져 나올 것이다. 남북 간 긴장의 장기화에는 다양한 원인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중 너무 아쉽고 또한 우려스러운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단절의 지속, 그리고 혐오를 넘어 무관심으로 가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그것이다. 삶이 팍팍할수록 우리는 당연히 주변을 살피기보다 나와 내 가족, 우리 편의 생각만을 하게 된다. 배려와 협력, 공존과 조화보다는 배척과 혐오, 증오와 이기주의가 만연하게 된다. ‘우리’의 범위가 갈수록 좁아지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이어지게 된다. 상대의 아픔과 어려움을 살피기보다는 우선 내가 살고 봐야 한다는 생각이 합리적으로 들리게 된다. 과거 필자는 민간 통일운동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남과 북이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과제들이 적지 않지만, 적어도 서로를 알아가고 도와가며 공존의 길을 찾아가자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같은 민족으로서 서로 도울 수 있는 것을 찾아 함께 힘쓰고 나누는 시간은 그 자체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연습이자 과정이었다. 갈수록 민간 통일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젊은 세대를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힘들고 외로운 길이기 때문이다. 이들을 격려보다는 의심의 눈으로 쳐다보는 이들이 부쩍 늘고 있다. 단절의 시대에 만남과 소통의 일꾼들이 사라지고 있다. 남북의 화해와 협력을 위해 헌신하는 이들이 사라지는 순간, 과연 이 땅에 무슨 일들이 벌어질까. 남북은 너무 오랫동안 만나지 못하고 있다. 더이상 단절이 길어지면 안 된다. 통일운동에 헌신하고 있는 활동가들이 이 땅에서 영영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는 다시 만나야 한다. 공존의 반대편에는 공멸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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