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여기가 여간 들이 넓어? 농림부 장관부터 농지를 해제하면 안 됐어. 우리보다 앞서 (산업단지 개발을) 겪은 사람들이 ‘정말 억울하다. 절대 쫓겨나지 말라’고 당부하더라고. 동네 단출하고 앞뜰 넓고 뒷산 든든하고 모두 한 가족 같은 우리 마을 사람들을 그냥 이대로 살게 해줬으면 좋겠어!”
2021년 11월 1일부터 시작한 진천테크노폴리스산업단지 반대 군청 앞 농성에 매일같이 참여했던 김상만 노인회장의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현실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결국, 마을 주민들은 짐을 싸기 시작했고 정든 집을 떠났거나 떠날 예정이다. 이미 흔적도 없이 부서져 내린 집은 덩그러니 터만 남아 여기가 한때 집이 있던 곳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유주영 이장은 “오는 18일 즈음이면 모든 주민들이 마을을 떠나게 될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충북 진천군 이월면 사당마을. 산업단지 예정부지에 속해 마을과 농지가 통째로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농지 위 산단 개발 반대’와 ‘마을공동체 사수’ 등을 외치며 3년 동안 군청 앞 농성을 줄기차게 펼쳐왔던 주민들은 마을에서 쫓겨나는 매정한 현실 앞에 아파하면서도 또 다른 삶으로 나아가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난 6일 찾아간 진천 사당마을의 풍경은 예전의 고즈넉했던 모습을 대부분 잃어버린 채 황량하기만 했다. 마을 뒷산은 시뻘건 흙더미로 변했고 굴삭기는 곳곳에서 흙을 퍼 올렸다. 덤프트럭이 오갈 정도로 평탄할 길이 생겼고 마을 한쪽 들녘부터 뒷산에서 나온 흙으로 준설을 하기 시작됐다. 마을 앞 논밭 또한 곳곳을 파헤쳐 더이상 농지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였다.
마을 주민들은 인근의 덕산읍과 청주시로 흩어질 예정이다. 유주영 이장은 “어제도 한 집이 나갔고, 내일도 한 집 이사가 예정돼 있다. 마을이 사라지기 전, 주민들이 이렇게 함께 모이는 건 거의 마지막일 듯 싶다”고 아쉬워했다.
사라져가는 마을을, 떠나는 주민들을 기록하기 위한 기자의 요청에 흔쾌히 응한 주민들은 이날 마을회관 앞에 모여 모처럼 함께 웃으며 사진을 촬영했다. 그리고 우리 마을을 지키며 오래도록 가족의 평온한 안식처가 되어준 집 앞에서도 다정하게 포즈를 취했다. 모든 풍경이 좋았건만 김상만·강창성씨 부부의 자택 대문 앞에 붙인 ‘입춘대길 건양다경’의 글귀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하여 바라건대, 진천 사당마을 주민들 모두 상실의 아픔을 딛고 새로운 터전에서도 부디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