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농어업법, 이대로 두면 농민 때려잡는 방망이일 뿐

  • 입력 2023.06.08 20:10
  • 수정 2023.06.08 20:1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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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친환경농어업 육성 및 유기식품 등의 관리·지원에 관한 법률(친환경농어업법)을 이대로 두면 그저 ‘친환경농민 때려잡는 방망이’일 뿐이라는 인식하에, 농민·도시민·학자들이 친환경농어업법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위한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국회토론회’가 신정훈·윤미향·윤재갑·이원택 의원 및 농정전환실천네트워크 주최, 환경농업단체연합회·전국먹거리연대 주관으로 열렸다. 이날 참가자들은 친환경농어업법의 근본적 허점을 지적하면서, 친환경농어업법이 더는 현장 친환경농민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개선할 방안을 논의했다.

상위법은 합성농약 ‘고의적 미사용’ 규정, 하위 시행규칙은 상위 규정 왜곡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국회토론회’에 참석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현행 친환경농어업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열린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국회토론회’에 참석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현행 친환경농어업법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고 있다.

토론회에선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가 친환경인증제 개선을 위한 법령 구조 개편방안을 제시해 이목을 끌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가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의 친환경농산물 인증제 내용 ‘개선’을 언급한 바 있다. 내용인즉슨 친환경인증기관 재량으로 인증 재심사 여부를 결정하던 것을, 농민이 비의도적 오염을 증명할 자료를 제출할 시 인증기관이 반드시 재심사하도록 고친다는 내용이다. 하승수 대표는 이에 대해 “당연히 해야 할 재심사 절차가 이뤄지게 하는 것에 불과하다. 불합리한 현행 친환경인증제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방안은 없다”고 쓴소리했다.

친환경농산물 인증취소 건수는 2020년 1,473건, 2021년 2,067건, 2022년 2,299건으로 계속 늘어났으며, 2022년 인증취소 건수 중 ‘농약사용기준 위반’ 건수는 1,978건으로 86% 이상이었다. 하 대표는 “‘농약사용기준 위반’ 건수엔 농약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경우뿐 아니라 농민에게 귀책사유가 없는데도 인근에서의 비산, 토양·물 오염으로 인해 농약이 검출된 경우도 포함된다”고 언급했다. 인증취소 건수의 증가에 반비례하게 친환경인증 농가 수는 2018년 5만7,261호에서 2022년 5만722호로 줄었다.

그렇다면 하 대표가 바라본 현행 친환경인증제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첫째, 상위법률인 친환경농어업법의 개념 정의와 충돌하는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의 내용이다. 친환경농어업법 제2조 제1항에선 친환경농업을 “합성비료·화학비료·항생제 및 항균제 등 화학자재를 사용하지 않거나 사용을 최소화한” 농업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대로라면 친환경농업은 ‘합성농약 무(無)사용’ 농업이다.

그러나 현행 친환경인증제 내용, 정확히는 친환경농어업법 시행규칙 별표 4 <유기식품 등의 생산, 제조·가공 또는 취급에 필요한 인증기준> 제2호 라 목 내 “합성농약 성분은 검출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는 친환경농산물에 대한 친환경농어업법의 개념 정의인 ‘합성농약 무사용’을 ‘합성농약 불검출’로 왜곡시킨다는 게 하 대표의 지적이다.

달리 말해, 상위법은 합성농약을 “고의적으로 사용하지 말라”고 규정하건만 하위 시행규칙은 “고의적으로 사용했든 안 했든, 합성농약 성분 자체도 검출돼선 안 된다”고 ‘상부의 명령’을 왜곡해버리는 셈이며, 왜곡된 법체계 하에서 고의적으로 농약 사용을 안 한 농민도 피해를 당하는 것이다.

둘째, 국회가 만든 상위법에서 친환경인증 기준·원칙을 정하지 않고, 하위법령인 시행규칙에 인증요건 관련 기준을 과도하게 위임함으로써 위 같은 시행규칙의 개념 정의 왜곡이 이뤄진다. 지금처럼 시행규칙으로 농민들이 피해를 보는 상황에선 상위법이 친환경인증 관련 기준·원칙을 규정해야 한다는 게 하 대표의 주장이다.

셋째, 인증취소 처분사유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농민에게 전가한다. 하 대표는 “국민에게 불이익이 되는 행정처분 시 처분 사유에 대한 입증 책임을 행정 측이 지는 것이 원칙임에도, 현재는 친환경농민이 비의도적 요인으로 합성농약이 검출됐음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처분 사유에 대한 입증 책임을 농민에게 전가시키는 것이다. 입증 책임의 전가가 상위법이 아닌 하위법령인 시행규칙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어 “만약 기업 측에 이런 식으로 ‘입증 책임’을 떠민다면 기업들은 ‘불합리한 규제’라며 규제 완화하라고 민원 제기할 거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 문제를 내가 입증하라는 것 아닌가. 농민들로선 실로 불합리한 처분을 당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넷째, 사인(私人)인 친환경인증기관에 강력한 행정처분권을 부여한다. 현행 친환경농산물 인증 관련 법 규정은 행정법 영역에 속하며 그와 관련된 분쟁도 행정심판·행정소송 절차를 따르건만, 인증뿐 아니라 인증취소라는 행정처분 권한까지 친환경인증기관이 갖게 하는 게 맞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하 대표는 “인증업무는 인증기관에 위탁한다 해도, 행정처분 영역에 속하는 인증취소는 행정기관이 행사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상위법’ 친환경농어업법 안 고치면 문제 해결 불가

그렇다면 개선과제는 무엇일까. 하 대표는 더는 시행규칙 개선 수준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하며, 단기적으론 △시행규칙에서 친환경인증의 개념이 ‘합성농약 무검출’이 아님을 명확히 할 것 △친환경인증 취소 요건에서 ‘단순한 합성농약 검출’은 제외 △인증취소 주체 정비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증취소 주체 정비의 경우, 친환경농어업법 제24조를 개정해 사인(私人)인 인증기관은 인증취소를 하지 못하게 고치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인증취소 행정처분 주체가 돼야 한다는 내용이다.

하 대표는 중장기적으론 △친환경농어업법에서 ‘친환경농업 육성 내용’과 ‘인증 등 식품관리에 관한 내용’ 분리 △인증기준 관련 원칙을 법률 수준에서 일정수준 구체화하고 인증기준도 국제기준에 맞춰 합리화 △친환경인증기관 관리하는 농식품 전문 인정기구 설립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잔류농약 검사 중심 체계, 무고한 농민 피해 늘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지난 8일 국회 의원회관 제8간담회실에서 ‘친환경농어업법 개정 국회토론회’가 열렸다.

국제식품규격위원회(코덱스)는 유기농업(친환경농업)에 대해 “유기농업은 합성 비료·농약 사용을 피하기 위해 외부 투입물 사용을 최소화한다. 환경이 전반적으로 오염된 현실이므로 유기농업 방법을 사용했다 해서 (합성 비료·농약) 잔류물이 완전히 제거된 제품이 생산되는 건 아니다”라고 규정한다. 유기농업을 실천하려는 농민의 의지가 ‘불가항력적 농약 검출’로 인해 평가절하돼선 안 된다는 뜻이다.

케이트 퍼비스 국제유기심사원협회 이사는 이와 관련해 “DDT 등 장기간 잔류한 화학물질은 수십 년 전 사용이 금지됐으나 오늘날 농사짓는 토양과 환경에 여전히 잔류한다. 최근에도 비펜트린 등 장기 잔류 화학물질이 환경에 점점 더 많이 잔류한다”며 “유기농민은 우리 모르게 확산되는 환경오염에 대항하는 ‘최전선 방어막’을 구축하는 주체”라고 강조했다.

다만 퍼비스 이사는 어떤 국제 유기농인증제도건 심사과정에서 기만행위가 의심될 시 시료를 채취해 무작위로 검사는 한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미국 농무부 유기농업 인증 프로그램에선 연간 인증 생산자의 5%를, 유럽연합(EU)에선 위험수준 판별방법을 적용해 최대 10%를 검사하는 반면, 한국은 거의 100%의 생산자를 검사한다는 점을 같이 강조했다. 퍼비스 이사는 “실험실에서의 잔류농약 검사에 너무 의존하면 전체 농사과정을 살피지 못하며, 무고한 생산자에게 부당한 처벌이 가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제주도 서귀포 친환경농민 김영란씨는 농사지으며 치지도 않았던 농약이 농지에서 검출돼 인증취소를 당한 경험, 억울함에 제대로 농사도 지을 수 없었던 경험, 온전히 혼자서 결백을 밝히고자 온갖 기관을 누볐던 경험을 이야기했다.

김씨는 “무고한 농민을 범법자로 몰면서 농민이 다시는 친환경농사를 짓고 싶지 않게 만드는데 어떻게 친환경농업이 육성되겠나”라며 친환경농어업법은 반드시 개정돼야 함을 현장 농민의 관점에서 역설했다.

김지영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상임위원은 산황산 골프장 증설 문제 및 소각장 등 유해환경시설 건설 시도 문제로 인해 위협받는 경기도 고양시 친환경농민들의 사례를 언급했다. 김 상임위원은 “공장이나 유해환경시설이 들어올 시 친환경농민의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며 “관할 지자체에서 농민을 위해 주변을 청정하게 해줄 것인지, 토지 용도에 맞게 주변을 재편성할 것인지에 대해 지원업무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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