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 비정규직 노동자 탄압 ‘시끌’

전문직 차별·부당해고 문제

해고자들 소송 계기로 부각

  • 입력 2023.05.28 18:00
  • 수정 2023.05.29 07:04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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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농협중앙회(회장 이성희)가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문제로 시끄럽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한 종류인 ‘전문직’ 직원들이 사측의 계약종료(해고) 조치에 소송 등 정식 대응으로 맞서면서 전체 전문직 직원들의 불만이 결집하는 모습이다.

NH농협은행 카드부문 전문직이었던 A씨는 지난해 사측의 계약종료 제안을 거부하다 지난 1월부로 충격적인 좌천 인사를 감당해야 했다(관련기사: 그 농협 비정규직은 왜 부하직원 밑으로 좌천됐나). A씨는 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인사발령’ 구제 절차를 진행하던 중 지난 2월 결국 계약종료 통보를 받았고, 이후 다시 ‘부당해고’ 구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비록 A씨의 나이가 농협중앙회 정규직 명예퇴직 연령인 만 56세였지만, 대다수 전문직들은 입사 당시 ‘60세 정년’을 약속받았다고 주장한다. 특별성과급·명절휴가비·피복비 등의 지급단가가 정규직의 반토막에 불과하고 건강검진·재해보상 등에서도 차별을 받는 등 입사 후 예상치 못한 차별을 겪었음에도 ‘60세 정년’이라는 혜택 때문에 이 불평등을 감내해왔다는 입장이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본관 건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농협중앙회 본관 건물.

농협중앙회가 전문직에 ‘56세 정년’을 하나둘 요구하기 시작한 건 3~4년 전부터다. 사실상 정규직과 똑같은 업무를 하는 전문직이 혜택 없이 차별만 받는 처지가 돼버린 것이다. A씨는 “다른 회사들은 입사 시 복리후생·인사제도에 대해 자료를 주며 네 시간 동안 교육을 하는데, 농협은 문서도 없이 다 구두로 설명한 뒤 나중에 말을 바꿔버린다. 게다가 농협은 매년 인사이동이 있어 새로 부임한 담당자가 전임자 탓만 하니 누구랑 얘길 풀어야 할지도 애매하다”고 호소했다.

정년과 관계없이 해고를 당한 경우도 있다. 역시 본지가 지난 보도에서 언급한 바, 농협카드 지방영업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9년차 전문직 B씨(만 48세)는 지난해 계약갱신일 6일 전에 ‘계약갱신 불가’ 통지를 받았다. 이 역시 ‘60세 정년’ 약속이 깨진 것이며 1년 전에도, 하다못해 한 달 전에라도 B씨가 대비할 수 있는 여지가 전혀 없었다. B씨는 곧바로 사측을 상대로 해고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단지 A씨와 B씨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카드부문에서만 두 건의 분쟁이 발생했지만 싸움의 성격은 농협중앙회와 계열사 전체 전문직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으며 그간 쌓여온 전문직들의 불만도 다방면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에 2021년 창립한 농협 전문직들의 조직 ‘NH농협전문직협의회’가 이 두 사람에게 소요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농협 전문직 C씨는 “최근 노동청 근로감독에서 일부 전문직 직원의 조기출근을 문제삼자 중앙회 인사총무부가 전문직들에게 ‘사용자의 지시가 있었던 게 아니다’라는 각서를 받으려 시도했다.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 이처럼 강압적으로 무마하려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동료 전문직 D씨는 “다른 회사는 간부 직원이 일을 잘해 성과를 내면 오래 근무할 수 있지만, 농협은 2년마다 무조건 인사이동이 있고 중앙회장한테 잘 보여 ‘라인’을 타야 영전할 수 있으니 회장만 바라보며 일을 한다”며 과잉충성 및 수직적 조직문화에서 문제의 원인을 찾았다.

이 같은 사내 불화는 농협의 대외경쟁력에도 마이너스 요인이 될 가능성이 있다. 전문직은 외부에서 경력을 쌓다가 업무 전문성을 인정받아 소위 ‘헤드헌팅’으로 입사하는 경우가 많다. 카드부문의 경우 경쟁사들은 전문직을 2~3년 내 정규직으로 자동전환하거나 아예 처음부터 정규직으로 채용하는데, 농협중앙회는 전문직 지위를 유지시키며 그 과정에서 계속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NH농협전문지협의회 설문조사 결과, ‘지인이 농협 전문직 입사를 검토할 때 적극 권유할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긍정 응답을 한 회원은 8.4%뿐이었다. 농협 비정규직 중에서도 가장 좋은 대우를 받는 전문직의 현실이다.

 


정년 보장한다더니 … 하루아침에 ‘뒤통수’

[인터뷰] 농협카드 해고 전문직 노동자

정년을 약속받았다가 계약갱신일 6일 전에 ‘계약갱신 불가’ 통보를 받은 48세 농협카드 지방영업소 소장 B씨의 사례는 농협중앙회가 비정규직 노동자를 어떻게 대우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느닷없는 해고 후 1년을 지내고 있는 B씨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해고 통보를 받던 상황은 어땠나.
계약갱신일이 (지난해) 5월 26일인데 20일날 연락이 왔다. 내 생일날이었다. 계약서가 올 때가 지났지만 갱신이 안되리라곤 생각지도 않았다. 그런데 점심때 바로 지나서 사무실에서 ‘유선으로’ 담당 팀장의 통보를 받았다.

해고 사유에 이견이 있는 걸로 안다.
실적이 문제라는데, 전국 각 지역 영업소마다 목표실적이 동일하게 부여돼 있다. 그런 와중에 우리 지역은 농협의 점유율이 높아 신규 실적을 크게 내기가 어렵다. 사측은 ‘문제가 있으면 사전에 시스템 개선을 요구했어야지’라는데 얘길 해도 들어준 적이 없다. 더욱이 그동안 이 실적평가는 성과급을 주기 위한 기준이었지 계약연장 기준이었던 적은 없다.

사전 경고는 없었나.
전혀 없었다. 다른 회사들은 직원을 해고하고 싶거나 영업소를 없애고 싶어도 최소 6개월 전에 불러다가 MOU를 맺든 설명을 하든 한다. 그래야 무슨 노력을 하든 문제를 제기하든 이직을 준비하든 대응을 할 것 아닌가. 그런 게 전혀 없었고 해고 이후에도 지금까지 아무 연락이 없다. 타사에 다니다 농협으로 옮겨올 당시 연봉 감소까지 감수한 이유가 ‘농협은 정년까지 다닐 수 있다’는 거였는데, 내가 게으름을 피웠다거나 회사에 피해를 준 일도 없는데 이렇게 됐다.

자녀들도 아직 어릴 텐데.
올해 각각 고등학교, 중학교에 진학했다. 마냥 손 놓고 있을 수 없어 최근 배관 관련 일을 개업했다. 농협카드 9년 포함 총 22년 동안 카드 영업소장만 했으니 낯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수익이 들쑥날쑥하고 날씨나 경제상황에 영향받고 그런 게 불안하다. 그래도 좀 자리를 잡고 익숙해지면 괜찮지 않을까 긍정적인 마인드로 부딪혀보고 있다.

소송이 진행 중이다. 농협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가.
애증이 많다. 남아 계신 설계사분들한테서 아직도 안부 전화가 온다. 내 마지막 보금자리라 생각하고 그분들과 애정을 품고 일했던 곳인데 난도질을 당했다. 최근 농협이 전문직들의 성과를 전산입력하고 그걸 근거로 바로 인사조치 등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며 같은 전문직들끼리도 경쟁하게 하고 있다. 그런 기류의 첫 케이스로 내가 걸린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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