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농협 비정규직은 왜 부하직원 밑으로 좌천됐나

농협은행, 계약종료 반발한 비정규직 노동자에 비인간적 보복 인사

예고 없는 해고·좌천, 각종 복리후생 차별까지 … 낙후된 조직문화

  • 입력 2023.01.15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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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NH농협은행 카드부문에서 국장급으로 근무 중이던 A씨는 지난 1일 인사이동에서 일반 기획역으로 좌천됐다. A씨가 ‘모시게’ 된 팀장은 과거 A씨가 팀장으로 근무할 당시 A씨 팀의 과장급 부하직원이었다. A씨는 과연 무슨 잘못를 저질렀길래 경영진으로부터 이처럼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게 됐을까.

은행 업무 중에서도 카드부문은 특히 경험과 노하우가 요구되는 분야로, 동종업계 경력자를 전문직으로 채용하는 경우가 많다. A씨 또한 타 카드사 출신으로 2011년 농협카드에 전문직으로 채용돼 지난 10년여 농협카드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한 인물이다.

그런데 이들 전문직은 비정규직 신분이다. 타 카드사나 농협 내 다른 계열사에선 전문직이 수년 내에 정규직 지위를 얻는 경우가 많지만, 농협카드는 그렇지 못하다. 2021년 말 기준 농협카드 임직원 443명 중 정규직은 192명, 비정규직은 251명이고 비정규직 중 76명이 전문직이다.

갈등은 지난해 A씨가 회사로부터 계약종료(2022년까지) 제안을 받으면서 불거졌다. 비록 A씨의 나이가 농협 정규직 명예퇴직 연령인 만 56세였지만, 퇴직금 등의 명목으로 약 4억원을 챙겨 나가는 정규직과 달리 비정규직은 이렇다 할 퇴직 보상이 없다. 게다가 A씨는 농협 전문직 입사 당시 60세 정년을 보장받는 것으로 인지했다는 입장이다.

A씨가 반발하자 사측은 계약기간을 올해 2월 20일까지로 연장하고 ‘계약종료 후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합의서 서명을 요구했다. A씨는 이에 응하지 않고 농협전문직협의회와 함께 대응 중이며, 이번 좌천인사는 이 과정에서 발생한 것이다.

A씨에게만 닥친 문제는 아니다. 같은 농협카드 전문직 B씨 또한 지난 1일 불명확한 사유로 팀장에서 차장으로 좌천됐는데, 다른 곳도 아닌 자기가 이끌던 팀의 팀원으로 발령이 나 사정 끝에 타 부서 차장급으로 이동, 간신히 치욕를 덜었다. 지난해 5월엔 농협카드 지방영업소 소장 C씨가 계약갱신일 6일 전에 사전 예고나 설명도 없이 계약종료 통보를 받아 현재 해고 무효소송 중이다.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농협의 부당한 인식과 처우를 엿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농협의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은 국정감사 등을 통해 몇 차례 지적된 바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농협카드만의 문제도 아니고 전문직만의 문제도 아니다. 명절휴가비 등의 차등지급은 지난해 국감에서 자세히 밝혀진 얘기이거니와, 자녀학자금(미지급)·건강검진(혈액검사 등에 한함)·재해보상(입원치료에 한함) 등에서도 차별을 받는다. 정규직 노동자들로부터 당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갑질·성희롱 등 피해사례가 회사 내외에 공공연히 흘러나와도 개선은커녕 조직 내에서 은폐·무마되는 경향이 강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임금인상률과 호봉급이 안정적으로 반영되는 정규직과 달리 급여인상 자체도 불안정하다. 임금협상에 따라 충분한 폭으로 인상되는 경우도 있지만, 동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특별상여금의 경우 표면적으론 정규직·비정규직의 지급률이 똑같아도 비정규직엔 금액한도 규정이 있어 결과적으로 두 배 가까운 차이가 난다.

최근 농민들의 고통을 등진 농협 임직원들의 ‘돈잔치’ 행태가 문제시되고 있지만, 비정규직 차별은 또 다른 문제다. 비정규직 차별은 사회 모두가 공감하며 청산하고자 하는 노동분야의 중대 과제인데 농협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는 데도, 처우를 개선하는 데도 눈에 띄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지역농협에서 꼬리를 무는 비리·횡령·성범죄·노동탄압 등의 근본 원인이 낙후된 조직문화에 있음을 본지를 비롯한 유수의 매체들이 수도 없이 지적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이들 지역농협의 시대착오적 인식을 계도하고 관리해야 할 위치에 있지만, 중앙회 조직에서조차 비슷한 수준의 내부 잡음이 끊이지 않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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