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사회적 죽음과 애도의 책임

  • 입력 2023.05.14 18:00
  • 수정 2023.05.15 06:36
  • 기자명 김수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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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김수나 기자]

지난 4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120여개 시민·사회·종교 단체가 공동 주최한 어느 기자회견장. 통상적, 합법적 노조활동에도 올 초부터 이어진 윤석열정권의 노조 탄압으로 공동강요, 공갈·협박, 갈취 혐의자가 돼 구속된 양회동 노동자(민주노총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의 분신 사망 투쟁을 애도하고 규탄하는 자리였다.

고성능 확성기를 매달고 기자회견 내내 “민주노총 해체”, “일하기 싫으면 꺼져” 같은 비난을 내뿜은 차량부터, 때마침 진행된 보도블록 공사 노동자들의 항의로 이날 애도와 규탄은 절박함을 더했다. 합법적으로 신고한 기자회견임에도 곁에 있던 여러 명의 경찰 누구도 이 방해를 막아주지 않았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겪은 고난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절정은 기자회견장 주변을 내내 맴돌던 한 중년여성의 패악으로 마무리됐다. “혼자 불 질러서 죽은 걸 왜 대통령이 사과하느냐”부터 “수녀x이 기도나 하지 왜 왔느냐, 죽어 버려라” 등 차마 다 옮기지 못할 그의 악다구니와 욕설은 인간에 대한 예의를 의심하게 했다. 누구도 납득할 수 없는 분노의 아수라장이었다. 무엇이 한 인간을 길바닥에서 그토록 패악하게 만들었는가. 증오에 가득한 그 분노의 뿌리는 무엇인가. 그날따라 끓어오른 아스팔트의 열기까지 더해 숨이 막히고 입안이 바짝 말랐다.

양회동 노동자의 죽음은 분명한 사회적 타살이다. 그는 죽을 이유가 하나도 없었다. 그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지 않았다. 좀 더 노동하기 좋은 세상을 만들려는 신념과 자존심 하나로 노조활동을 해온 건설노조 조합원들을 협박과 갈취를 일삼는 파렴치범으로 몰아간 윤석열정권이 그 죽음의 이유다. 불과 서너 달 만에 900여명이 넘는 조합원들을 수사하고, 15명에 이르는 조합원의 구속을 강행한 납득할 수 없는 수사권 남용, 그 국가폭력 앞에서 그의 죽음이 선택이 될 수는 없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하나뿐인 생명마저 앗아가게 한 정권은 이들에 대한 충분한 애도를 보장하고, 그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탄압과 비난, 조롱, 책임 전가는 또 한 번의 타살이다. 세월호, 스텔라데이지호, 10.29참사와 반복되는 산재로 인한 숱한 죽음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건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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