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PEF 가담으로 위태로워지는 식량주권·국가안보

농식품부, 수입 통로 다변화 통한 ‘식량안보’ 강화만 골몰
IPEF 적극 가담에 대(對)중국·러시아 관계는 악화 우려

  • 입력 2023.05.01 00: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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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해 7월 8일 전국민중행동이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 앞에서 진행한 IPEF 공청회 대응 기자회견 중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지난해 7월 8일 전국민중행동이 서울 코엑스 컨퍼런스룸 앞에서 진행한 IPEF 공청회 대응 기자회견 중 하원오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이 "우리나라의 최대 교역국가가 중국인데, 미국의 뜻에 따라 중국을 배제하고, 러시아를 배제하는 식의 선택은 우리의 국익에 맞지 않다. IPEF 가담은 한국의 고립을 자초하는 선택이므로 절대 안 된다"고 발언하고 있다.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농업분야 내용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달 18일 서울 명동 이비스 앰배서더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주최로 열린 제1차 농업통상전략 전문가 포럼에서 공유된 데 따르면, 지난 3월 13~19일 인도네시아에서 진행된 IPEF 제2차 공식협상 이후 미국은 IPEF 회원국 간 공급망 중단 대응조치를 조정할 수 있는 정책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제조업체가 세계 경제 속에서 경쟁하는 데 필요한 제품, 원재료 및 투입재에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민간 부문 간 협력을 확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급망 관련 논의내용을 식량 분야에 적용해 살펴보면, IPEF 가담국들이 공급망의 위기로 인한 식량위기를 겪지 않도록 관련 정책 협의체계를 만들겠다는 이야기로 풀이된다. 여기서 ‘공급망 위기’의 예시론 현재진행형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각국의 밀 수급이 어려워짐에 따라 국제 밀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을 들 수 있다.

공급망 위기를 해소하고 IPEF 가담국들의 ‘식량안보’를 강화하기 위해 주요 농산물 수출제한·금지 조치의 규제 관련 논의도 점차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지난달 18일 포럼에선 일본과 호주가 2014년 체결한 ‘경제파트너십 협정’ 사례가 거론됐다. 양국은 이 협정에서 식품 수출제한과 관련해 △식량안보에 끼칠 부정적 영향을 고려해 (수출) 금지·제한을 필요한 정도로 제한 △금지·제한 조치 전에 상대국에 사유와 성격, (금지·제한) 예상 기간을 서면으로 통지 △상대국에게 협의할 합리적 기회 제공 등을 규정했다. IPEF에도 이와 유사한 ‘수출 금지 규제’ 관련 내용이 담길 가능성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IPEF 가담국들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국가 간 협의 플랫폼 구축, 항만·공항 등의 병목현상(공급 정체 현상) 해소를 위한 시설 투자·정비 등도 논의 중이다. 이미 지난해 9월 IPEF 장관선언문을 통해 IPEF 가담국들은 공급망 복원력 강화를 위한 수급 다변화, 인프라 확충, 기술협력 및 원활한 운송 연결 유지, 공급망 병목 관련 해결방안 마련 등을 약속한 바 있다.

한편 이날 포럼에선 IPEF에서의 위생·동식물 검역(SPS) 규제완화의 경우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및 북미자유무역협정(USMCA)과 유사한 수준의 요구가 있으리란 분석이 제기됐다.

일례로 미국이 멕시코·캐나다와 체결한 USMCA의 경우 SPS 운용 과정에서 ‘과학적 근거’를 강조한다. 수입을 제한하려면 수입국이 그에 합당한 과학적 근거를 수출국에 내세워야만 한다는 뜻으로, 수입국 입장에서 불리한 내용이다. USMCA에선 SPS를 비관세장벽으로 활용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제한하고, SPS 조치의 무역촉진 효과를 강화하는 방향을 추구했다. 미국은 그 과정에서 캐나다의 원유 공급관리프로그램, 곡물등급제 및 종자등록제도로 인한 간접적 시장보호조치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한국농촌경제연구원 현안분석 제71호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 타결과 농업부문 시사점>, 2020년).

IPEF에도 이러한 비관세장벽 완화 내용이 포함된다면, 한국 등 각국의 SPS 및 유전자조작물(GMO) 규제로 자국 농산물을 원하는 만큼 팔지 못해 불만이 가득한 미국 대농 및 정치권, 무역대표부(USTR)의 ‘숙원’이 성취되는 셈이다.

농식품부는 지난달 18일 포럼에서 향후 IPEF 협상 대응 방향으로 △주요 식량에 대한 수출제한 규제로 공급망을 확보해 식량안보 강화 △국산 농산물 수출과 관련된 비관세장벽 완화를 통해 국산 농산물 수출 기회 확대 △정당한 검역주권 확보 △농업환경과 농산물 시장 및 국민 먹거리 안전을 감안한 신중 대응 등을 거론했다. 농식품부가 말하는 ‘식량안보’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가담한 공급망을 통해 수입한 농산물로 확보한 식량안보’를 의미하며, 우리나라의 자체적인 식량주권 강화와는 괴리된 개념이다.

한국이 IPEF에 가담할 경우 발생하는 또 하나의 문제점은, IPEF의 확고부동한 ‘중국·러시아 배제’ 성격으로 인한 한중관계, 한러관계의 추가적 악화다.

가뜩이나 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지원 가능성’을 시사해 러시아와의 관계가 악화됐고, 연이어 중국-대만의 군사적 긴장에 대해서도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이라는 발언을 해 중국과의 관계도 악화됐다. 여기에 더해 IPEF 가담을 통해 무역 및 공급망 형성 측면에서도 탈중국·탈러시아화를 추진한다면 해당 국가들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치·군사적 갈등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반면 지난달 26일(현지시간)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의 공고화 및 IPEF가 높은 수준의 성과를 내도록 지원을 제공하자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확약했다. IPEF 4차 협상을 부산에서 금년 중에 개최하겠다고 밝힌 건 덤이었다.

한 농민단체 관계자는 IPEF 논의 상황과 관련해 “정부는 이제 CPTPP보다 IPEF에 방점을 찍고 추진하는 양상”이라며 “정부는 이 땅에서의 식량자급률을 어떻게 확보할지에 대한 고민은 방기한 채 IPEF를 통한 ‘수입 통로 다변화’에만 집중하고 있다. 향후 농민운동 진영 차원에서도 IPEF에 더욱 촉각을 곤두세워야겠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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