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농촌 성평등 강의를 준비하며

  • 입력 2023.04.30 18:00
  • 기자명 임은주(경기 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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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주(경기 여주)
임은주(경기 여주)

아름다운 봄날들이 계속됩니다. 꽃도 예쁘고 새도 지저귀는 봄날, 할 일도 참 많습니다. 쭉쭉 올라오는 참나물, 취나물 뽑고 다듬고 풋마늘 솎기를 합니다. 온 힘을 주어 뽑으면 뽑히기도 하지만 끊어지는 게 더 많은 풋마늘 뽑기를 계속하다 보니 해가 저뭅니다. 뽑은 풋마늘을 집으로 가져와 다듬고 씻고 썰어 장아찌를 담그고 나니 온몸이 으슬으슬 춥고 아파옵니다.

지금 자면 참 좋겠다, 하는 바람과는 다르게 허겁지겁 노트북을 켜고 온라인 회의 주소 줄을 찾아 접속을 합니다. 매달 진행되는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 자조모임이 온라인으로 열립니다. 모두들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듯 빠듯한 시간들을 보내고 한 달 만에 모였습니다. 농촌에서 성평등 교육을 진행하려고 도시에서 활동하는 강사를 초청했는데 강의내용과 농촌의 현실에는 간극이 컸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농사를 짓고 살거나 농촌을 많이 경험한 사람들을 훈련시켜 농촌 현실에 맞는 강의를 할 수 있는 강사를 만들어보고자, 농림축산식품부는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을 통해 여러 차례의 교육과 토론, 시험과 시연을 거쳐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들을 위촉했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강사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를 하는 것, 그것도 가부장제의 찌꺼기들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농촌에서 성평등을 강의해야한다는 것은 많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시연이나 사례, 정보 공유를 하는 등 도움과 용기를 주고받고자 모임을 만들어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여성이장님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연을 한 후 평가를 주고받은 뒤, 각자 농촌특화형 성평등 전문강사로서의 활동과 고민이나 토론거리를 내오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2020년 12월 기준, 행정안전부의 자치분권과의 자료에 따르면 도시에 있는 동의 통장 5만9,773명 가운데 여성 통장은 4만4,752명으로 74.9%의 비중입니다. 농촌 읍, 면의 이장은 3만7,510명 가운데 3,510명이 여성으로 9.357%의 비중을 차지합니다. 눈 씻고 찾아보기 힘든 농촌 여성이장. 그러나 마을이나 지역의 행사가 있으면 여성들은 며칠 전부터 장보고 김치 담그고 반찬 만들고 국 끓이고 밥 하고 전 부치고 상 차리고 설거지를 합니다. 그런 날 대부분의 여성들은 손님이나 남성들이 떠난 밥상을 대충 치우고 밥을 먹거나 부엌에 서서 밥을 먹습니다. 뒤치다꺼리는 다 하는데 막상 회의에서는 1가구 1표라는 이유로 의결권이 없습니다.

농협으로 시선을 돌리면 33%의 여성조합원들이 조합의 교육이나 행사에 동원되어 많은 활동과 봉사를 하지만 여성대의원은 20%를 넘지 못하고 여성이사는 11%, 여성감사는 1.4%, 여성조합장은 0.7%뿐입니다. 올해는 4년 전보다 여성조합장 당선자가 3명 늘어 13명이 되었습니다. 1.166%인 여성조합장. 조합장 선거를 한 번 할 때마다 여성조합장의 숫자가 한 자리씩 늘어나는 지금의 추세라면 여성조합장 10%는 40년이 지나도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한참 잘못되었다고 느끼지만 묵묵히 살아가는 주위 사람들을 보며 나만 모가 났나보다 하는 자괴감으로 스스로 입 다물라 강요하며 재미없게 살아왔습니다. 내가 신나고 뿌듯하게 일하고 이 일과 삶터를 젊은 사람들이 물려받고 더 재미있게 살아야 할 텐데 나도 재미없고 젊은 사람들도 받으려 하지 않으며 묵묵한 사람들은 늙고 아파 농촌은 비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농업•농촌•농민 문제의 원인들은 고질적이고 복합적입니다. 그 가운데 성차별도 굵고 깊은 원인이며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지속가능한 농촌사회는 이뤄질 수 없습니다. 재미지게 일하지는 못하더라도 억울하게 일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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