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폭 줄어들 산란계 사육수수, 농가소득·자급률 어쩌나

주요국 동물복지 정책, ‘비동물복지 계란’ 수입 불러

  • 입력 2023.04.16 18:00
  • 수정 2023.04.16 19:53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산란계의 적정사육면적 상향(마리당 0.05㎡에서 0.075㎡) 시 농가 별로 사육수수가 대폭 줄어 농가소득 및 자급률도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농가들로부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일 한 산란계농가의 직립식 사육시설에 암탉들이 모여 있다. 적정사육면적이 상향되면 이 중 3마리 정도는 빼야 한다. 한승호 기자
산란계의 적정사육면적 상향(마리당 0.05㎡에서 0.075㎡) 시 농가 별로 사육수수가 대폭 줄어 농가소득 및 자급률도 크게 하락할 것으로 예상돼 농가들로부터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10일 한 산란계농가의 직립식 사육시설에 암탉들이 모여 있다. 적정사육면적이 상향되면 이 중 3마리 정도는 빼야 한다. 한승호 기자

 

2017년 계란 유통업계를 강타한 ‘살충제 계란’ 사건을 계기로 정부는 이듬해 산란계 산업에 새로운 규제를 적용했다. 축산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산란계의 적정사육면적을 마리당 0.05㎡에서 0.075㎡로 상향 조정하고, 기존 사육 농가에게 2025년 8월 31일까지 유예기간을 부여한 것이다.

농가별로 케이지의 규격이 통일돼 있지 않아 정확한 계산은 어렵지만, 현재 케이지당 8마리의 산란계를 사육하는 농장의 예로 들어 이 기준을 적용하면 케이지당 5마리밖에 넣을 수 없게 된다. 산란업계를 통틀어 케이지당 평균 3마리가 줄어든다고 가정할 경우, 추가적 투자가 없다면 사육수수는 기존 케이지 총수용량 대비 35% 이상 줄어들 것이 불가피하다.

같은 공간에서 생산량이 줄어드니 실질생산비는 급증하게 되는데, 사료값 등 생산물가 상승 탓에 이미 제반비용이 급격히 오른 상황에서 업계 전체가 이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문제가 생긴다. 신규투자 유도를 위해 정부가 제공하는 시설현대화사업의 융자지원이 있지만, 케이지 사육 자체를 금지하는 세계적 추세와 더불어 정부가 최근에도 1,500만개의 계란 비축물량을 생산비 아래로 방출한 상황 등을 고려하면 소규모 농가에게는 더더욱 설득력이 없는 대안이다.

현재 신규 축사 건립이 사실상 어렵고, 폐업 농가가 발생할 확률도 생각하면 생산량은 그 이상 줄어들 수도 있다는 게 현장의 평가다. 이만형 길샘축산 대표(경기 광주)는 “축산물 중에 자급률이 99.9%인 품목은 계란 밖에 없다. 정부가 산업을 보호해서가 아니라, 생산자들이 지금껏 원가 절감을 위해 피나는 경쟁과 노력을 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며 “사육규모로 인한 효율성 역시 생산비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인데, 지금 상황에서 10만수가 안되는 규모의 농가가 6만수밖에 키우지 못한다면 폐업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대표는 “지금 물가와 식량 확보 문제 때문에 전 세계가 난리인데 스스로 원가 상승 요인을 만들어서 소비자에게 직접적 피해를 가게 하는 것도 문제고, 특히 산란계는 시설이 중요해 전후방산업의 비중이 큰데 산업 자체의 축소도 불가피한 만큼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가격이 뛰니 괜찮지 않나?”

생산량이 줄어들면 가격이 높아지니 어찌 됐든 농가 경영은 괜찮을 거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그러나 고병원성 AI 파동을 통해 이미 여러 번 가격 급등락을 겪어본 생산자들의 입장은 다르다. 물가에 민감한 정부가 결국 수입 등을 통해 공급량·가격을 맞출 경우, 실질생산비가 폭증한 상태로 가격이 원점 회복되면 버틸 수가 없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전염병 여파로 인한 일시적 마릿수 감소와 달리 사실상 사육수수 자체를 감축하게 될 이번 규제 아래에선 생산자가 공급을 늘릴 ‘대응’을 할 수 없다.

고병원성 AI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지난 2021년의 통계상 평균 계란 소비자가격은 특란 10개 기준 2,317원으로 전년 대비 약 29%나 상승했고, 개인이 실제 마주하는 가격은 이보다도 훨씬 비쌌다. 그해 연간 생산량은 68만5,000톤으로, 전해 대비 불과 5%의 생산량 감소로 인한 결과가 그러했다. 고병원성 AI의 대규모 확산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보고 있는 유럽과 미국, 일본 등도 올해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가장 크게 와닿는 대형마트에서의 ‘한 판’ 가격은 통계와 달리 연말이 다가와서야 ‘그나마 내려왔다는 가격’이 7,000원을 넘었고, 앞서 상반기에는 8,000~9,000원대의 가격표를 달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농가들이 연일 추가로 산란계를 입식하고, 정부는 정부대로 10개월간 2만4,000여톤을 수입한 끝에야 계란 한판의 가격은 결국 7,000원 아래로 내려왔다.

이처럼 단기적으로는 당장 부족해질 공급량 탓에 가격이 폭등하겠지만, 생산자들은 식재료 가운데서도 ‘물가 민감 품목’인 계란의 가격이 절대 ‘적정 수준’을 초과한 채 오래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동물복지 계란의 소비가 점진적으로 증가하고 있다지만, 계란을 바라보는 소비자 대부분은 현재 수준의 가격을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본다. 이 때문에 물가정책을 펴는 정부 역시 ‘한판에 7,000원 아래’를 어떻게든 유지하겠다는 기조를 수시로 강조해온 것이 사실이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에서 가족들과 함께 케이지 형태의 사육을 하는 손후진 대한산란계협회 경북도지회장은 사육면적 규제로 인해 마리당 실질생산비가 현저히 높아지는 상황에서 정부가 기존과 같은 물가정책을 펼 경우 절대 농가소득을 보전할 수 없을 거라 이야기한다.

손씨는 “2017년 고병원성 AI 파동으로 사육수수가 30% 줄었을 때 산지 가격이 한 알에 200원 넘게 뛰었었다. 서울에서 만원을 주고 한 판을 사던 시절을 떠올려보라. 짜장면, 비빔밥, 라면 등 식당의 모든 메뉴에서 계란이 빠져버린다”라며 “생산자들은 적정한 마진과 함께 생산비를 채우는 선의 가격을 원하지 폭등을 원하지 않는다. 결국 수요가 급감하든 수입을 하든 가격을 되돌려놓게 될 것이고, 특히 가공용 계란 수요는 수입 액란으로 채워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동물복지 위해 비동물복지 제품이 수입되는 모순

국내 농가들이 잃을 생산량이 결국 수입으로 채워질 거란 농가들의 걱정은 기우가 아니다.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 문제를 떠나 국경 바깥에서 선례가 이미 생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식품업계의 마케팅 전략과 동물보호단체들의 입김에 떠밀려 급진적인 형태로 동물복지를 추구한 국가들은 계란 수급을 위해 이미 자급률을 포기하면서까지 수입에 나서고 있는데, 같은 기준에서 생산된 계란만을 수입하는 것도 아니기에 형평성 문제까지 낳고 있다. 선진국들의 경우 우리와 달리 대개 사육면적의 규제를 넘어 케이지 사육 자체를 완전히 금지하는 형태로 나아가고 있지만, 경과만 놓고 보자면 사육면적의 조정만으로도 최대 30%가 줄어들지 모를 우리의 경우와 크게 다르지 않다.

프랑스는 2010년대를 전후해 이미 산란계 동물복지가 보편화한 유럽에서도 케이지 사육의 포기가 가장 늦었다. 2017년 프랑스계란협회(CNPO)는 케이지 사육의 포기를 위해 5억유로의 투자가 필요하며, 이 중 20%를 유통업체들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유통·식품업체들이 2025년까지 동물복지 계란만을 취급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데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다. 5년이 지난 현재 프랑스의 케이지 사육 비중은 30% 아래까지 낮아졌는데, 최근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케이지 사육이 금지될 기미가 보이자 CNPO는 이 이상의 규제가 진행될 경우 영농 자체가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현상유지’를 외치고 있다.

유럽연합식품안전청(EFSA)은 지난 2월 육계와 산란계의 케이지 사육을 금지하고 횃대와 산란장을 보유한 사육공간으로 대체할 것을 권고했다. 올 하반기 무렵 EU 집행위원회에 제안될 이 권고안에 따르면 가금류 생산자들의 케이지 사육은 완전히 금지되며, 농장에 따라선 같은 면적에서 최대 70%의 사육수수가 줄어들 수 있다.

유럽연합 단위의 농민단체 연합인 Copa-Cogeca, 가금류생산단체인 AVEC 등은 “유럽의 생산자들이 이렇게 높은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제3국에 어떻게 맞설 수 있나. 브라질·태국·우크라이나로부터의 수입은 이미 증가 추세에 있다”라며 “이러한 극단적인 제안이 수락되면 경쟁력을 잃은 농촌의 중소규모 생산자들은 문을 닫아야만 하며, 수입이 증가하는 동시에 소비자가격도 크게 인상될 것”이라고 극렬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지난 2023년 2월 유럽식품안전청은 케이지 사육의 원천 금지를 포함하는 권고안을 발표했다. EFSA 제공

가장 극단적이자 현재 진행 중인 사례로는 뉴질랜드 시장이 있다. 지난 2012년 케이지 사육금지 법안을 통과시킨 뉴질랜드 정부는 10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했고, 그 시한의 끝인 2022년이 되자 85%가 넘었던 케이지 사육의 비중은 10%까지 줄어들었다. 유예기한이 반환점을 돌던 2017년 무렵 주요 식품유통기업들이 ‘방목 계란’만을 유통하겠다고 선언한 통에 농가들은 또다시 대혼란을 겪었다. 사육방법의 전환에 있어 중소규모 농장의 경우에도 우리 돈 10억원이 넘는 비용이 필요했고, 이에 부담을 느끼거나 의사가 있음에도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전환’을 선택하지 못한 농가들이 사육을 포기하면서 업계는 현재 일일 국내수요 280만개 대비 30만~40만개나 모자란 양을 생산하고 있다.

이에 가격이 치솟은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는 가정에서 암탉을 기르려는 수요가 생겨났다. 뉴질랜드의 경제지 ‘스터프’는 생산자들의 입을 빌려 이번 사태를 조명하며, 주요 식품기업들이 생산자 압박에 일조했음에도 계란 부족 현상에 대한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비판했다. 또 “달걀 부족은 농민들이 어리석고 게을러서 생긴 일이 아니다”라며, 앞서 비슷한 규제가 적용된 양돈업의 선례를 들어 “그럼에도 소비자들은 국내 산업의 축소를 인지할 수 없다. 동물복지의 기준이 훨씬 낮은 나라에서 생산된 고기의 수입을 늘려 물가를 지켰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