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란계 사육면적 확대’, 과연 동물복지적일까

  • 입력 2023.04.16 18:00
  • 수정 2023.04.16 19:52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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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오는 2025년 8월 산란계 적정사육면적 상향(마리당 0.05㎡에서 0.075㎡) 시행을 앞두고 사육수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농가들의 고민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지난 10일 한 산란계농가의 직립식 사육시설에 닭들이 빼곡하다. 한승호 기자
오는 2025년 8월 산란계 적정사육면적 상향(마리당 0.05㎡에서 0.075㎡) 시행을 앞두고 사육수수를 줄일 수밖에 없는 농가들의 고민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져 가고 있다. 지난 10일 한 산란계농가의 직립식 사육시설에 닭들이 빼곡하다. 한승호 기자

 

전 세계적으로 농장동물의 복지체계 확립이 강조되면서 우리나라 축산업계도 변화의 움직임을 시작하고 있다. 특히 밀집도의 측면에서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산란계 사육은 그만큼 동물복지형 농장도 많이 탄생했다.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따르면 현재 국가 인증을 획득한 428개의 동물복지축산농장 중 절반이 넘는 228개의 농장이 산란계 농장이다.

그러나 현재 4,500만개에 달하는 국내 계란 일일 소비량을 지탱하고 있는 건 여전히 배터리 케이지에서 키우는 산란계들이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 탓에 규모화·시설화된 농가의 직립식 우리 사육을 통해 계란 수요를 채워왔다.

동물복지 확립 및 전염병 확산 측면에서 큰 단점이 존재하며 소수의 농가가 대량생산하는 물량을 수급하는 산업 특성상 유통과정에도 고질적인 문제들이 산재하고 있으나, 높은 생산 효율성이라는 큰 장점을 앞세워 국내산 계란은 축산물 가운데선 유일하게 100%에 가까운 자급률을 자랑하고 있다.

식량주권에 대한 계란의 이같이 큰 기여도 곧 옛일이 될지 모른다. 지난 2018년 정부가 축산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설정한 ‘산란계의 적정사육면적 150% 증가’ 조치가 오는 2025년 8월부터 시행된다. 시장에서 선호하는 특란 이상의 계란을 생산하기 위해선 최소 6개월령 이상의 닭들이 필요하니, 실질적으로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산란계 농장들은 최소 35% 이상의 사육수수를 단번에 잃을 처지다. 같은 면적에서 그만큼이나 적은 양을 키워야 하니 실질적인 생산비가 대폭 오를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더욱 큰 불안요소는 농가소득이다. 공급이 줄어든 만큼 가격이 높아진다면야 걱정할 필요가 없겠지만, 농가들은 그 높은 가격이 시장에서 자리잡을 수 없단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동물복지 축산물의 입지가 올라가고 있다지만, 소비자 대부분은 계란 한 판에 7,000원에 이르는 가격조차 여전히 부담스러워한다. 농민들 사정 아랑곳하지 않는 ‘물가잡기’가 곧바로 따라올 것도 이제는 뻔히 예상한다.

농가들은 당장 올해만 해도 계란가격이 생산비를 보전하기 어려운 판국에 손해를 보면서까지 스페인산 계란을 수입하며 ‘예행연습’을 하고, 터무니없는 가격에 계란 비축물량을 풀어버리는 정부를 지켜본 참이다. 규제 이행을 위한 어떠한 지원도 예고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그 빈자리를 자연스레 수입산이 채울 것이란 예상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 확신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탄소발자국 생성까지 무릅쓰고 들여올 수입산을 전량 ‘동물복지 계란’으로 취급할 것도 아니라면, 또한 기존 농가들의 사육방식 전환을 유도할 지원도 없다면, 사육면적의 단순 규제가 과연 산란계의 동물복지를 한발 더 전진시킬 수 있을까? 기껏 지켜온 생산기반과 자급률을 흔들고, 소비자의 피해와 혼란도 감수하며 여전히 우리에서 알을 낳게 할 이 조치는 아무리 따져봐도 효용성을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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