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67] 쌀 농민을 위하여?

  • 입력 2023.04.09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어린아이를 학대하는 부모나 양육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이 ‘너를 위하여’라고 한다. 심하게 학대하고서도 둘러대기로는 ‘아이를 바르게 키우기 위함’이라고 말한다는 얘기다.

일본 제국주의자들과 친일 매국노들도 조선을 침탈해 주권을 빼앗아 놓고선 조선이 무능하고 부패해 국가로서의 비전이 없으니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 ‘조선을 위하여’ 옳은 것이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강자들의 주장과 논리에는 본인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인가를 숨기고 있다. 그러면서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논리 중의 하나가 ‘이게 다 너희를 위하여 그러는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본색이 드러나게 돼 있다.

지난주 대통령과 집권 여당, 그리고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끝내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하고 말았다. 표면적인 이유는 ‘쌀 농민을 위하여’다.

물론 그 양곡관리법이 우리의 쌀을 비롯한 양곡 문제를 일거에 다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오히려 한참 부족한 법안이라서 근본적인 양곡 정책을 다시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예컨데 쌀 가격은 근본적으로 시장기능에 맡기면서도 적정한 정부개입을 통해 폭등이나 폭락을 방지하고, 그 대신 지난 정부 때 폐기했던 쌀 농가의 소득 안정장치를 어떤 형태로든 다시 마련해야 하며, 밀·콩·사료작물 등 타 작물(곡물)로의 전환 정책을 심도있게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하고, 대북지원 등 소비대책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무엇보다 식량안보·식량주권, 다원적 기능과 같은 쌀 농업의 공익적 기능과 본질적 가치 등을 국가는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된다. 쌀에 예산이 많이 드니 쌀 예산을 줄여  타 품목에 사용해야 한다거나, 가격을 떨어뜨려야 생산면적을 줄일 것이라는 주장 등에는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대통령을 비롯한 농식품부 장관은 양곡관리법에 포퓰리즘 법안, 쌀 강제 매수법, 악법, 혈세 낭비법과 같은 거친 표현을 마구 쓰며 사실상 폐기해버렸다. 농식품부 장관은 8년 후인 2030년에 1조4,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되는 법안이라고도 했는데 왜 정확하지도 않은 8년 후의 얘기를 지금 그토록 강조하고 있는지 의아할 뿐이다.

특히 40개 농민단체가 양곡관리법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대체 어떤 단체인지 밝히기를 바라며, 거부권 행사의 결정적 빌미를 제공한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예측모형에 대한 한계도 검증해야 한다. 쌀 농업의 비경제적 가치 즉, 다원적 기능과 식량안보·주권, 비교역적 기능과 같은 공익적 가치는 모형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계량모형의 결과는 어디까지나 참고자료일 뿐, 현실을 다 반영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오히려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 ‘쌀 농가와 농민을 위한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아이를 죽일 만큼 학대한 부모와, 조선을 삼킨 이토히로부미를 떠올리게 한다. 그토록 ‘쌀 농민을 위하여’를 외치는 그들의 본색은 무엇인가. 쌀 농업과 농민, 식량안보와 식량주권, 농업의 비교역적 기능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닌가. 아마도 그들의 본색은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