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안에 수정안까지, ‘누더기’ 된 양곡관리법

국회의장, 쌀시장격리조건 “9% 초과생산·15% 하락”까지 내걸어

전농 “농민에게 실질적 도움 주자는 의지 없어 … 전면 개정해야”

23일 국회 본회의서 법 통과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 ‘유력’

  • 입력 2023.03.19 08:47
  • 수정 2023.03.19 08:51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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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쌀 자동시장격리를 핵심으로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누더기 상태가 됐다. 정부와 여당, 대통령까지 법 개정을 ‘반대’하자 김진표 국회의장이 자동시장격리 요건을 변경하며 중재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재안은 쌀 가격 안정이라는 취지가 왜곡돼 농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굳은 표정의 한 농민이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이 적힌 선전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전국농민대회에서 굳은 표정의 한 농민이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이 적힌 선전물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한승호 기자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오는 23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와 국민의힘은 여전히 ‘자동시장격리’는 절대 수용 불가 입장을 밝히고 있어 난항이 예상된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안’을 수차례 권고했으며, 진전이 전혀 없자 2차에 걸쳐 쌀 자동시장격리 조건을 대폭 완화하는 중재안을 직접 내놨다. 더불어민주당 측 양곡관리법 개정안의 쌀 자동시장격리 조건은 쌀 초과생산량이 3%거나 쌀값이 5% 떨어지는 경우였다. 국회의장의 1차 중재안은 이 폭을 2배(6%, 10%)로 늘렸다. 민주당은 이를 다시 수정해 쌀 초과생산량이 3~5%거나 쌀값이 5~8%까지 떨어지는 경우로 조율해 중재안을 받았고, 정부·여당은 요지부동이다. 국회의장은 2차 중재안을 제시하며 이번에는 수치를 3배로 늘렸다. 쌀 자동시장격리 조건을 초과생산량이 9%거나 가격이 15%까지 떨어지는 경우로 기준을 대폭 완화한 것이다. 여기에 ‘3~9% 초과생산 또는 5~15% 가격하락 시 국회가 정부에 매입을 권고할 수 있다’는 내용까지 추가했다.

현장에선 국회의장이 제시한 중재안들이 ‘쌀값 안정에 무용지물’이라고 질타가 쏟아지고 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하원오, 전농)은 지난 15일 국회의장 중재안을 일컬어 ‘누더기 양곡관리법’이라며 ‘중재안을 집어치우고 전면 개정하라’고 강하게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전농은 “이미 농민들은 (국회의장의) 첫 번째 중재안도 반대했다. 민주당이 상정한 개정안이 애초 농민들의 요구가 다 반영되지 않았던 불안정한 내용이었는데 그보다도 후퇴한 내용의 중재안은 통과되더라도 의미가 없다”고 반박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1년산 쌀 초과생산량이 약 7.5%였는데 그 결과 쌀값이 45년만에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농산물은 1%만 초과생산되도 가격이 폭락하는 특성이 고스란히 반영된 결과다. 이를 중재안처럼 9%나 초과생산돼야 비로소 자동시장격리 발동요건으로 삼는다는 건 어처구니없을 뿐 아니라 지난해보다 더 큰 쌀값 폭락 재앙을 초래할 뿐이라는 것이다.

전농은 “국회의장도 민주당도 농민들에게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법을 개정하겠다는 의지보다 정쟁을 이기겠다는 오기가 더 큰 것이며, 어떤 내용이든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피해 통과시켜놓고 생색이나 내겠다는 욕심이 더 큰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생산비가 보장되는 쌀 최저가격제를 포함한 양곡관리법 전면개정에 나서겠다”고 선포했다.

민주당 내에서도 국회의장의 2차 중재안은 수용하지 않겠다는 의사가 분명한 상황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국회의장의 1차 중재안은 수정안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2차 중재안을 수용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여론이다”면서 “23일 본회의에는 1차 수정안(3~5% 초과, 5~8% 폭락)이 상정되고, 의원수로 따져보면 통과되리라 예측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설령 국회의장이 제시한 1차 중재안의 수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1호 법안’ 행사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또 한 번 격랑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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