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지정의(農地正義)를 위한 농지정보통합이용시스템이 필요하다

  • 입력 2023.03.19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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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지난해 대표적인 소멸 위험 지자체로 알려진 지역에서 열린 큰 행사에 참여하던 중 대중교통을 이용해 본 적이 있다. 몇 년 사이 인근 시·군을 오가는 시외버스 노선이 거의 없어져 서울과 지역 대도시를 오가는 버스가 몇 대 있는 정도였다. 이용자는 노인이나 학생 몇 명이 고작이었다. 지방소멸의 실상을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었다.

대개 지방소멸의 원인을 저출산-고령화라고 한다. 맞다. 하지만 그 내용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이면에는 결국 농지문제가 있다. 농지소멸-농민소멸-농촌소멸-농업소멸-지방소멸은 ‘3농’문제-환경문제-도시문제-식량주권문제-국민생존문제로 순환된다. 농지는 연간 1만5,000ha씩 전용되며, 경작지는 실질적으로 소멸되고 있다.

현실에서 농지문제는 ‘농지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데서 시작된다. 물가상승을 반영한 것도 있지만 도시 부동산 투기의 여파라고 보는 게 현실적이다. 특히, 농사짓기 좋은 지역의 문전옥답은 도시의 땅값 못지않게 비싸다. 반대로 격오지의 비교적 싼 농지에는 농사지으며 살겠다는 사람이 별로 없다. 농촌별장과 펜션, 오토캠핑장 등에 농지를 내주고 있을 뿐이다. 농지를 소유한 농민, 상속받은 후계자의 입장에서 기회비용을 계산해 보더라도 농사지을 의욕이 안 생길 것이다. 하물며 농지 구매, 농지임차의 기회비용과 그에 따른 소득을 계산해야 하는 신규 농민은 농사짓는 것이 비합리적이라는 계산을 할 것이다. 설령 농사를 짓는다 해도 고비용 영농비와 인건비, 시장의 불확실성을 생각해 보면 역시 답이 없다. 그래서 농사 안 짓고 자산(유산)으로 보유만 한다. 임차농이 많아지는 이유다.

농지의 정의(農地定義)는「농지법」에 잘 정의돼 있다. 농지는 실제로 농사짓는 토지를 말한다. 농지의 기본이념은 국민에게 식량을 공급하고 국토환경을 보전하는 데 필요한 기반이므로 투기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익적 가치가 큰 토지가 농지라는 것이다.

그리고 농지정의(農地正義)란 쉽게 말해 관련 법제의 제정 정신과 규정을 잘 지키자는 것이다. 즉, 헌법 정신인 경자유전(경자농용)의 원칙 및 소작금지, 농지법 상의 농지의 기본이념, 농지임대차관리법 상의 계약 등이 구현되고, 시장원리의 한계를 보완하자는 것이다. 농지를 적정비용으로 소유·경영하거나 중장기 임차가 보장돼 실제 경작 농민이 직업인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지속하고, 식량주권과 ‘3농’의 공익적 가치를 보전하자는 것이다. 농지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이용하려는 것과 투기의 대상으로 여기는 기류의 경계에서 농지정의는 농지의 기본이념을 지키는 보루다.

우리는 농지가 부족한 나라다. 목초지도 없다. 탄소중립을 실천하기 위한 소규모 경축순환농업을 하려는 농가도 농경지가 필요하다. 정부 돈으로 청년농민 3만명을 스마트팜 기업농으로 육성해 정착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험도 부족한 청년농민들을 빚쟁이나 소작농으로 전락하게 해서는 안 된다. 농지를 잘 가꿔 농사지을 만하면 땅을 돌려줘야 하는 임농탈경을 겪게 하면 지금의 농지소멸·지방소멸 속도를 제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농지정의를 어떻게 바로 세울 것인가? 농지소유와 경영, 임대차를 규정하는 법과 제도가 엄존하는데도 농지투기가 만연하고, 공직자가 이 법제를 위반하면 엄한 지탄을 받는 데도 멈추지 않는 것은 농지정의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다. 농촌이 출생지인 위정자, 농지를 보유한 위정자, 농지문제를 논하는 위정자는 많아도 손에 흙 묻히며 농사짓는 위정자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국민들의 표상이 될 만한 위정자가 없다.

현실적으로 농지전수조사와 이를 바탕으로 하는 농지정보통합이용시스템의 활용은 대안적인 정책수단이 될 수 있다. 농지보전정책은 많은 예산을 투입하지 않아도 식량주권 수호나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 효과적이다. 농지전수조사 주체와 조직·예산, 조사방법, 조사결과 활용방안 등을 마련해야 한다. 서류상 주인이 있음에도 나무만 심겨있는 이상한 농지, 한 필지가 작게 쪼개져 주인이 여럿인 이상한 농지 등이 아직도 많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농지투기를 계기로 지난 2021년 8월 17일 개정된 농지법이 지난해 5월 시행됐다. 지난해 연말엔 농지이용실태 의무조사가 완료됐다. 올해는 자료 분석과 청문 절차 등을 거쳐 2024년 1월에 그 결과를 보고한다고 한다.

정부는 지난해 농지조사의 경험을 재평가한 후, 농지정보통합이용플랫폼을 제대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이왕 만드는 김에 단순 농지공간관리시스템에서 나아가 이용과 보전, 농지의 공익적 가치 실현 등에도 다면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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