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엉터리 선거

  • 입력 2023.02.19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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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농협에 협동조합 정체성이 부재한 근본 원인으로 ‘조합원 주체의식 부족’을 꼽는 이들이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얘기다. 조합원 스스로가 자기 농협을 협동조합이 아닌 금융기관·관공서 격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의원들조차 회의에서 거수기 역할만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직원을 성추행하거나 노골적으로 자기 이익을 챙긴 조합장이 버젓이 조합장실로 출퇴근하는 경우도 있다.

농협 조합원은 왜 ‘조합원답지’ 못할까. 관제농협이라는 태생적 한계도 물론 큰 요인이지만, 21세기 현 시점에서 더 중요한 요인은 조합장 선거제다. 위탁선거법은 조합장 후보자들의 입을 막고 유권자들의 귀를 막아 서로가 서로를 모르게 만든다. 후보자 혼자서 2주 동안 명함과 문자를 돌리는 게 선거운동의 전부다. 선거 과열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후보자의 ‘알릴 권리’와 유권자의 ‘알 권리’를 심각하게 제한하고 있다.

정보가 차단되니 정책은 실종되고 선거는 얼렁뚱땅 지나가는 이벤트가 된다. 법과 제도가 조합원들에게 ‘조합에 대한 관심을 끊으라’고 강요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거에서부터 관심이 떨어지니 자질 미달의 후보가 조합장에 당선되고, 조합장이 조합을 엉망으로 운영해도 감시·탄핵할 동력이 부재한 것이다.

이번 선거를 포함해 최근 세 차례의 동시조합장선거는 후보자가 아닌 외부 단체들이 선거의 질을 담보했다. 농협에 대해 최소한 견지해야 할 의식수준을 공약안에 담아 후보자들에게 서약을 요구하는 운동이다. 미약하나마 유권자들에게 하나의 지표를 마련해줄 수 있는 활동이다. 보다 많은 단체가 이같은 운동을 전개한다면 조합장선거는 좀더 ‘정상’에 다가갈 수 있다.

물론 100개 단체가 100개의 운동을 전개한다 한들 조합장선거는 온전히 정상이 될 수 없다. 선거의 내실성 및 후보자·유권자 권리 보장은 민간의 노력이 아니라 법·제도가 마땅히 보장해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3월 8일, 또다시 엉터리로 치러질 조합장선거지만 부디 유권자들의 ‘치열한’ 관심을 부탁드리며, 선거 이후 21대 국회 임기가 끝나기 전엔 선거제 개선이 반드시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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