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원의 농사일기 163] 그래도 봄이 오면

  • 입력 2023.02.12 18:00
  • 기자명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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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

 

지난해 11월 중순부터 이달 초까지 약 두 달 반 동안은 그야말로 나에게 농한기였다. 작은 과수원에서는 이 기간 동안 별로 할 일이 없다. 그저 가끔 둘러 보기만 하면 된다. 바람이 세게 분 다음 날이라든지 눈이 엄청 많이 온 다음 날에는 무슨 일 없는지 살펴보곤 한다. 특히 나무가 부러지지는 않았는지, 농막은 괜찮은지, 철망이 넘어지지는 않았는지, 멧돼지나 고라니가 들어오지는 않았는지 두루두루 살피기 위함이다.

이제 지난주부터 동계 전정을 시작으로 금년도 작은 유기농 사과 농사 8년차가 시작됐다. 앙상했던 가지에 물이 오르고, 연푸른 잎사귀 사이로 연분홍 사과 꽃 향이 온 과수원을 덮을 4월이 기대되기도 한다. 여름 내내 어린 사과를 키워내기 위해 애쓰다 보면 어느새 탐스런 사과가 익어가는 10월이 될 것이다.

올해에는 꼭 유기농 사과를 적은 물량이라도 생산해 판매하는 것을 올 한 해 농사의 목표로 정했다. 유기농 사과 생산이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알고 있지만 그 일부라도 소비자에게 자랑스럽게 판매해야 농사 일이 완성된다.

기후위기 시대에 나름 환경·생태 친화적 농사를 짓는다는 자부심도 좋지만 역시 농민은 생산물을 소비자와 나눠야 그 행위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귀농 3년차 때 미니사과 알프스 오토메 200kg(약 200만원)을 판매해 본 것이 전부인 어느덧 8년차 유기 농사꾼이 수익성은 차치하더라도 금년엔 꼭 유기농 사과를 일단 생산이라도 해 조금이라도 판매해 보리라 다짐한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다른 해와는 달리 조금 설렌다. 그런데 과연 수익을 얼마나 얻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면 설레임은 잠시고 걱정이 앞선다. 모든 자재값이 다 올랐기 때문이다. 나야 농사 규모가 워낙 작으니 올라봐야 별것 없다. 인건비나 농약·화학비료, 농기계 비용 등은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현장 농민들이 겪는 걱정·근심은 심각하다. 쌀을 비롯한 대부분의 농산물 판매 가격은 급락하고 있고, 농자재, 인건비, 에너지비용 등 안 오른 것이 없다.

지난해에는 쌀 가격이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폭락했고 한우, 마늘, 고추, 사과, 딸기, 배추 등 대부분의 농산물 가격도 하락했다. 거기에다가 물가안정이라는 명목으로 쇠고기, 닭고기, 돼지고기 할당 관세를 0%로 하거나 마늘, 양파, 고추 등의 할당과세율도 떨어뜨려 수입량을 늘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국산 농축산물 가격하락에 영향을 안 미칠 수가 없게 돼 있다.

인건비는 최근 2~3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올랐고, 지난해 대비 사료가격도 약 20% 올랐으며, 농사용 면세유는 약 40%, 등유가격은 약 50% 올랐다. 농사용 전기, 농약, 화학비료, 퇴비, 비닐 등 모든 농자재 가격이 무섭게 올랐다.

그래도 봄이 오면 농민들은 또 한 해 농사를 시작한다. 지난해 가격이 폭락하고 수익이 나지 않았다고 해서 경제학자들처럼 당장 농사를 줄이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농심이다. 생산을 잘 해낼 수 있을지, 가격은 어떻게 될지, 수익은 얼마나 남게 될지, 아무것도 확실한 것을 모른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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