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태백산 사과를 저탄소 유기농으로 특화해 보자

  • 입력 2023.02.05 18:00
  • 기자명 최덕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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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덕천 상지대 교수
최덕천 상지대 교수

 

기후위기를 가장 구체적으로 체감하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해안지역 주민이나, 오랫동안 농사를 지어온 농민, 폭염이나 폭우를 직접 대하며 사는 도시민일까? 어쩌면 태백산맥 주변 지역에서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지어 온 농민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보통 표고 600~1,200m 주변에 형성되는 고랭지는 봄이 짧고 냉해가 자주 발생한다. 여름에도 서늘해서 봄배추 재배가 가능하지만 수년 전부터는 고랭지 배추 재배가 잘 안 되고 있다.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기후온난화 때문이다. 재배가 되긴 하지만 각종 병해와 폭염, 가뭄, 장마 등에 시달려 농사가 정상으로 안 된다. 그 때문에 농가에선 봄배추를 저장했다가 여름에 출하를 한다.

15년 전쯤 지구온난화 이야기가 공론화되던 시절, 필자는 태백의 친환경농업인교육 시간에 “머지않아 태백산과 소백산 주변에서만 겨울다운 겨울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상청이 장기예보를 했다”고 전한 바 있다. 이날 강의가 끝나고 나오는 길에 한 친환경 농민으로부터 “에이, 교수님 아까 그 말씀 농담이시죠?”라는 말을 들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그런데 그 강의를 들었던 분 중 한 분이 배추에서 사과로 작목을 전환한 뒤 약 3년 전쯤 유기농 인증을 받게 된 것이다.

태백에서는 2006년부터 사과 시범재배가 시작돼 최근에는 약 3,700여 농가가 사과 농사를 짓고 있다. 사과 재배 최적 기온이 8~11℃인데, 고랭지 태백지역의 연평균 기온이 9℃이므로 재배적지가 된 것이다. 이 지역 사과는 일교차가 크고 산간지역이어서인지 과육이 단단해서 식감도 좋고 당도도 매우 높다.

이제 앞으로 15년 뒤의 한반도와 태백산맥 주변의 농업지도는 어떻게 바뀌게 될까? 지금 태백산맥 주변인 정선군에도 320여 사과 농가가 있다. 영월, 평창, 양구를 비롯해 더 위쪽인 최북단 접경지 고성에서도 2016년부터 사과 재배가 시작돼 지금은 30여 농가나 존재한다.

그렇다면 중장기적으로 태백산맥 사과의 특화 전략은 무엇일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 태백산맥 주변의 청정한 자연환경과 고랭지 사과를 반추하며 그 이미지를 특화하여 홍보하는 것이다. 타지역의 관행 사과 농사는 고투입농법의 상징처럼 각인돼 있다. 때문에 태백에서는 그 부정적 이미지를 새로운 기회요인으로 역전시키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농가소득 증대를 위해 규모의 경제성 논리를 채용할 수 있지만, 농가 단위에서는 다른 한 트랙으로 소규모-저투입-저비용-저탄소-고부가가치라는 대안적 영농기조 하에 ‘다양성의 경제성’을 추구하는 전략도 있어야 한다. 이것이 기후위기 시대에 농업 한계지역에서 경종농업과 축산농업 나아가 임업이 상생할 수 있는 최전방전략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생태적 순환’에 기반한 대안농법을 특화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인 방법은 ‘저탄소농축산물인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나아가 경축순환농업, 소규모 친환경·유기농축산업을 전환·육성하고 한발 더 나아가서는 가까운 지역 내에서 유기농업과 환경친화형 축산·유기축산농가들이 협업해 농림축산부산물을 사료와 퇴비로 순환하는 것이다. 지역의 소규모 사과 농가들이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면 좋은 모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이때 지자체나 공공 중간지원조직이 이 협동네트워크를 협력·지원해 주면 좋겠다.

태백은 한강의 발원지이자 서울 상수원의 최상류 지역이다. 따라서 태백산 주변 고랭지의 고투입농업이 한강수계의 점오염원이라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상존해 있다. 하지만 반대로 생태적 순환농업을 정착해 나가면 오히려 한강 상수원을 살리는,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농업으로서 다양한 사회적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셋째, 태백산맥 고랭지의 대체 작목으로 사과 중심으로 각광을 받고 있지만, 이제 특화작목도 분산하는 ‘투트랙 전략’도 필요하다. 과거에 키위, 아로니아 등 베리류를 비롯해, 최근 샤인머스캣이라는 ‘씨 없는 포도’의 역설이 재현되지 않도록 중장기 전략을 세워야 한다. 저탄소 순환농업으로 생산한 고품질 농축산물은 ‘고향사랑기부제’의 사례품 등으로 지역 특화시장을 형성할 수 있다. 이를 확산하기 위해 다양한 유통채널을 개발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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