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고통 등진 농협 ‘돈잔치’ 눈살

농협중앙회 직원들 3,000억원대 성과급 잔치에 이어

지역농협도 임원 급여인상 및 직원 성과급 지급 논란

농민은 벼랑 끝인데 … 주인 외면한 ‘그들만의 경영’

  • 입력 2023.01.08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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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최근 농협중앙회(회장 이성희)의 ‘임금 3% 인상’, ‘성과급 400%+200만원’ 등 소위 ‘직원 돈잔치’ 행태가 공개된 가운데, 지역농협에서도 속속 같은 잡음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농민들은 어느 때보다 팍팍한 여건을 헤쳐나가고 있는데, 협동조합인 농협이 이를 외면한 채 제 주머니 채우기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충남 예산 삽교농협(조합장 김종래)은 지난 2020~2021년 무렵 이장단과의 불화와 대의원 부당해임 의혹 등으로 한 차례 홍역을 치렀던 조합이다. 2년여가 흐른 지금 삽교농협 본점 앞에선 이대열 삽교읍이장협의회장의 1인 피켓시위가 다시 진행 중인데, 이번엔 과거의 문제들이 아니라 삽교농협 임원들의 ‘돈잔치’를 비판하는 내용이다.

삽교농협은 지난해 2월 대의원회에 조합장 월급 인상(600만→659만원)안을 상정, 논란 끝에 근소한 차이로 의결한 바 있다. 이어 지난해 11월 대의원회엔 상임이사 월급 인상(500만→569만원) 및 이·감사 회의수당 인상(30만→40만원)안을 상정해 역시 관철시켰다.

지난해는 농업생산비 폭등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데다 농산물 가격도 불안해 정작 조합의 주인인 농민들의 고통이 짙게 드리운 해였다. 회의 당시 이대열 회장 등 몇몇 대의원이 임금 인상의 부당함을 지적했음에도 인상안은 그대로 통과돼버렸고, 이에 회의 이튿날인 11월 30일부터 지금까지 이 회장은 매일 아침 목에 피켓을 걸고 농협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이대열 삽교읍이장협의회장이 지난 3일 충남 예산 삽교농협 본점 앞에서 농협 임원 ‘돈잔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삽교농협 대의원회에서 임원 임금인상안이 의결된 이후, 지금껏 코로나19 자가격리 기간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이대열 삽교읍이장협의회장이 지난 3일 충남 예산 삽교농협 본점 앞에서 농협 임원 ‘돈잔치’의 부당성을 지적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29일 삽교농협 대의원회에서 임원 임금인상안이 의결된 이후, 지금껏 코로나19 자가격리 기간을 제외하고 매일 아침 1인 시위를 진행 중이다.

전남 순천에서도 비슷한 잡음이 발생하고 있다. 순천시엔 순천농협·순천원협·순천광양축협 등 3개 농협이 있는데, 최근 순천시농민회(회장 윤일권)가 이 조합들의 직원 성과급 현황을 파악해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순천시농민회에 따르면 최근 순천광양축협은 200%, 순천원협은 250%의 직원 성과급 지급을 결정했다. 순천농협의 경우엔 지난해 9월 100%의 성과급을 지급한 뒤 최근 다시 9억원의 성과급 예산을 배정했는데, 결과적으로 관내 다른 조합들과 금액을 맞춰 합계 20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할 것으로 예상된다. 순천시농민회는 지역사회 내에서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기자회견과 성명 등 본격적인 규탄 활동을 준비하고 있다.

윤일권 순천시농민회장은 “농협 조합원들은 역대 최대 폭으로 폭락한 쌀값에, 축협 조합원들은 끝없이 치솟는 사료값에, 원협 조합원들은 몇 배나 뛰어버린 기름값과 농산물 ‘똥값’에 죽을 맛인데 농민을 대변해야 할 농협이 농민을 내팽개치고 자기 잇속만 챙기고 있어 착잡하고 자괴감이 든다. 지역 농민들 모두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전했다.

삽교농협과 순천 3개 농협의 지난해 3분기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4개 농협 모두 전년대비 사업실적이 순증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내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확실히 임직원들의 ‘돈잔치’는 방만한 면이 있다.

4개 농협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경향은 대출금리 폭등에 기댄 ‘신용사업 성장(대출평잔 기준, 전년대비 7~12%)’과, 농자재값 폭등에 기인한 ‘구매사업 성장(22~27%)’이다. 즉, 조합의 주인인 농민에게 이자를 받고 물건을 팔아 올린 수익이 ‘성과급’에서 얘기하는 ‘성과’의 실체인 것이다. 반면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팔아 주는 ‘판매사업’은 순천농협을 제외한 3개 농협이 전년대비 실적 감소를 기록했다.

농협의 구매·판매사업도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한 만큼 이 둘의 실적을 직접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다. 하지만 농협의 정체성이나 농민조합원의 이익에 비춰 가장 중요한 사업이 판매사업인 만큼, 적어도 판매사업이 마이너스인 상황에선 임직원이 돈잔치를 벌일 명분은 없으며 오히려 조합원에게 수익을 환원하는 것이 이치에 맞다.

지역에서 공식적으로 논란이 불거진 게 이 두 지역일 뿐, 돈잔치는 전국 수많은 농협에서 벌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어느 조합이든 신용사업과 구매사업은 큰 폭의 성장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방만한 돈잔치의 부당성을 지적해내기 위해선 농협에 대한 조합원들의 주인의식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요구된다.

삽교농협 1인 시위 중인 이대열 회장은 “심각한 문제임에도 이에 대한 대응이 겨우 1인 시위에 그치고 있는 건 지역사회 전체의 문제라 본다. 농민들이 가뜩이나 농협에 무관심한 데다 후계인력 없이 점점 고령화돼 농협을 감시하고 목소리를 낼 사람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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