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농업결산] 기후위기와 잘못된 해결책에 맞서 ‘기후정의’를 실천하다

  • 입력 2022.12.25 18:00
  • 수정 2022.12.25 18:2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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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 9월 24일 서울 중구 남대문과 시청을 잇는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복궁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도로에 누워 기후재난과 불평등 속에서 죽어가는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다이-인(die-in)’ 시위를 펼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지난 9월 24일 서울 중구 남대문과 시청을 잇는 세종대로 일대에서 열린 ‘기후재난, 이대로 살 수 없다 924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시민들이 경복궁 방향으로 행진하던 중 도로에 누워 기후재난과 불평등 속에서 죽어가는 민중의 모습을 형상화한 ‘다이-인(die-in)’ 시위를 펼치고 있다. 한승호 기자

‘마의 5%’가 무너졌다. 올해 초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의 ‘2021년도 유기식품 등 인증통계’에 따르면, 2020년 전체 생산면적의 5.2%를 담당했던 친환경농산물 생산면적이 지난해 4.9%로 줄어들었다. 지난해 국내 친환경농산물 인증 농가 수는 5만5,354호로 2020년 5만9,249호에 비해 약 6.6% 감소했으며, 친환경농산물 인증면적 또한 지난해 7만5,435ha로 2020년 8만1,827ha 대비 7.8%나 줄었다.

친환경인증 기반 농업만이 친환경농업의 전부라 할 순 없지만, 이상의 통계는 제5차 친환경농업 육성 5개년계획(2021~2025) 가동에도 불구하고 국내 친환경농업 전반의 상황이 어렵다는 걸 보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친환경농민들은 올해도 온몸으로 기후위기에, 친환경농업을 외면하는 농정당국에 맞섰다. 2022년 친환경농업계 전반을 되짚어본다.

 

잘못된 해결책

잘못된 해결책. 국제 농민운동 연대체인 비아캄페시나가 자주 사용하는 이 표현은 기술 중심주의적이고 농민의 현실과는 괴리된 해결책이 기후위기 해결책이란 명목으로 등장하는 상황을 지적하고자 쓰는 표현이다. 비아캄페시나 등 세계 농민운동진영이 주로 거론하는 농업분야의 잘못된 해결책은 △기후스마트농업 △기술 중심주의적 농업분야 기후위기 대응책 △탄소중립 관점에 지나치게 치우친 농업분야 해법 등이다.

놀랍게도 대한민국 농정은 이상의 ‘잘못된 해결책’들을 주된 기후위기 대응 농정방안으로 삼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장관 정황근, 농식품부)의 기조 자체가 그렇다.

농식품부는 지난 20일 조직개편을 통해 농업혁신정책실 식품산업정책관 산하의 푸드테크정책과 및 같은 정책실 농식품혁신정책관 산하의 스마트농업정책과·첨단기자재종자과·빅데이터전략팀을 새로 설치했다. 농식품혁신정책관 산하엔 친환경농업과가 속하는데, 사실상 친환경농업과가 최신기술 중심 부서에 포위된 형국이라 친환경농업 정책에서 스마트팜 등 기술 중심주의적 경향이 짙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한편 저탄소농업, 탄소중립 등의 단어에 포획된 농정 관료들은 현장 농민의 관점과 동떨어진 정책들을 내놓았다. 상시 담수 방식인 기존 논농사가 메탄을 발생시키기에 논농사 시 중간물떼기를 권장하는 ‘저탄소 벼 논물관리기술 시범사업’이 대표적이다. 이는 “하나만 알고 둘 이상은 모르는 사업”이라는 전문가들의 혹평이 빗발쳤다. 메탄을 줄이는 중간물떼기 방식 농사가 오히려 아산화질소라는 또 다른 온실가스를 대량으로 배출시킨다는 점, 중간물떼기로 인해 논생물이 말라죽어 농지 생물다양성 측면에서 악영향을 미친다는 점 등을 간과했기 때문이다.

한편 현장 농민들이 토종씨앗 재배를 통해 이 땅의 씨앗을 농민의 힘으로 지키려는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그린바이오산업 육성’에만 혈안이 돼 있다. 농식품부는 그린바이오산업의 일환으로 GMO 관련 기술의 일종인 유전자가위 기술을 통한 종자산업 육성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는데, 산업통상자원부(장관 이창양)는 △신규 유전자변형생물체에 대한 위해성심사 면제 △유전자변형생물체 개발·실험 관련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을 담은「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GMO법)」개정안을 지난해에 이어 올해 다시 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농식품부는 그린바이오산업 관련 조직(식품산업정책관 산하 그린바이오산업팀)까지 만들며 법 개정 뒤를 준비하는 양상을 보인다.

정부의 GMO 규제완화 기조에 대해 농민·도시민은 힘을 합쳐 대응했다. 지난 5월 21일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수천명의 도시민·농민이 ‘몬산토·바이엘 GMO반대 시민행진’을 진행하며 GMO법 반대 목소리를 함께 냈다.

 

기후위기 속 농민들의 대안 모색

올해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 중 하나는 ‘기후정의’였다. 기후위기 극복을 위한 온 사회의 전환 과정이 ‘정의로운 전환’이어야 하며, 전환 과정에선 소농 등 현장 주체의 목소리가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 기후정의의 핵심기조다.

지난 9월 24일 서울 한복판에서 열린 ‘9.24 기후정의행진’엔 약 3만5,000여명의 시민이 모여, 기후위기의 대안은 탄소중립도, 녹색성장도 아닌 ‘기후정의 실현’이라고 외쳤다. 각지의 농민들도 ‘기후폭탄’, 즉 폭우와 가뭄 등 온갖 기상이변으로 피해를 입은 농산물을 행진 현장에 갖고 와, 농민은 기후위기 당사자일 뿐 아니라 문제 해결의 주체라고 강조했다.

농업 분야 기후정의의 과제 중 핵심은 농촌에서 농사지으며 농촌공동체와 전통적 농사방식을 지키는 소농의 권리 보장이다. 보장해야 할 권리 중엔 소농이 실천하고 싶은 대안을 마음껏 실천하는 권리가 포함되는데, 이러한 권리가 제대로 보장될수록 소농의 다양한 실천도 늘어나며, 이 실천이 태산처럼 쌓인다면 기후위기 극복의 실마리가 만들어진다는 게 현장 농민들의 입장이다.

올해 농민들은 현장에서 다양한 대안을 모색했다. 대표적으로 각지에서 토종씨앗을 키워내는 사례를 들 수 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의 여성농민들은 주 작목 농사로도 바쁜 와중에 토종씨앗 채종포에서 토종작물을 재배했다. 단일 품종의 대량생산을 부추기는 농정으로 인해 기후위기 속에서 온갖 병해충에 작물이 도미노처럼 무너지는 상황, GMO 규제완화로 종자기업에 의해 씨앗 독점이 이뤄지는 상황에 맞서며 식량주권 및 농민의 종자권, 생물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국가가 권장하는 고비용·저효율의 ‘저탄소농법’ 대신 땅에서 스스로 대안을 찾아보려는 농민들의 노력도 돋보였다. 일례로 전남 곡성군농민회는 올해 지역 농민조직 중 최초로 ‘탄소농사위원회’를 만들며 무경운 벼농사를 위한 현장 실천연구를 한층 강화했다. 경북 상주를 비롯한 각지 여성농민들의 농생태학 실천도 이어졌다.

농민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른 지역 농민들과 직접 연결고리를 만들기도 했다. 결과 중심(잔류농약 검출 중심) 친환경인증제 하에서 ‘비의도적 농약 혼입’으로 인한 인증취소 피해를 입은 농민들이 “친환경인증제의 과정 중심 인증제로의 전환은 농민 인권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친환경인증제도를혁신하는사람들’이란 조직을 결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먹거리기본권, 올해도 안녕하지 못했다

한편 정권교체 뒤 먹거리기본권 영역의 불안정성이 심각해졌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8월 31일 발표한 2023년도 예산안에서 임산부 친환경농식품 지원사업 예산 158억원, 초등돌봄교실 과일간식 지원사업 예산 72억원 등 총 230억원의 먹거리기본권 관련 예산을 전액 삭감해 농민·먹거리운동 단체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농민과 도시민은 지난 5월 ‘GMO 규제완화’를 막기 위해 뭉친 데 이어, 지난 11월 16일 전국농민대회 사전마당으로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친환경농업 생산자-소비자 결의대회’에서도 먹거리예산 삭감을 막기 위해 함께 목소리를 냈다.

광역지자체, 특히 수도 서울시부터 먹거리기본권 문제를 소홀히 하기 시작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지난 3월 비(非)유전자조작식품(Non-GMO)의 학교급식 공급을 위해 분담하기로 한 예산 26억원(전체 Non-GMO 학교급식 예산의 30%)을 서울시가 미편성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초엔 오히려 서울시교육청이 Non-GMO 급식 예산 마련에 비협조적이었고 서울시(당시는 서울시장직이 공석 상태)가 예산을 편성하려 한 것과 달리, 오세훈 서울시장 재취임 뒤인 올해는 반대로 서울시교육청이 적극적인 반면 서울시가 비협조적인 태도로 전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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