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농업결산] 고환율·고물가·고금리 ‘3고’ 시대, 기댈 곳 없던 농민들

  • 입력 2022.12.25 18:00
  • 수정 2022.12.25 18:19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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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 원재정 기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농식품 물가동향 현장 점검에 나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함께 삼겹살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농가소득보다 물가안정에 방점을 찍은 정 장관의 행보는 이후에도 농민들의 입길에 올랐다. 한승호 기자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지난 5월 30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농식품 물가동향 현장 점검에 나서 이성희 농협중앙회장과 함께 삼겹살 시세를 확인하고 있다. 농가소득보다 물가안정에 방점을 찍은 정 장관의 행보는 이후에도 농민들의 입길에 올랐다. 한승호 기자

 

지난해 12월 28일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2021년산 쌀 20만톤을 내년(2022년) 1월 시장에서 격리하고 7만톤은 시장상황 등을 고려해 추후 매입할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2021년산 쌀값 폭락 문제에 ‘선제적 시장격리’를 요구했던 농민들의 목소리가 겨우 연내 당정 협의로 공식화 된 것이다. 그로부터 1년, 쌀정책은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

지지부진 쌀 시장격리 …쌀대책 묘수가 된 ‘가루쌀’

쌀 시장격리 문제는 1년 내내 농민들 속을 태웠다. 현장 농민들은 ‘골든타임’을 놓친 실책을 만회하려면 매입방식 및 매입가격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으나 정부는 ‘최저가 입찰(역공매)’ 방식을 적용해 가격안정엔 무용지물이었다. 2월 8일 입찰에는 20만톤 목표 중 27%나 유찰되는 결과가 생겨, 오죽하면 정부가 나서서 쌀값 인하를 유도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6월에서야 27만톤 시장격리 절차가 마무리됐으나 실익은 없었고, 가격안정 효과도 얻지 못했다. 결국, 변동직불제를 폐지하면서 정부는 그 보완책으로 ‘(자동)시장격리’를 약속했고 농민단체들은 ‘자동시장격리’로 믿었다가 낭패를 당한 셈이다.

농림축산식품부 한 국장은 “문재인정부가 그러면 안 된다”는 말을 할 정도로 자동시장격리제를 임의로 시행한 부분의 잘못에 공감했다.

문재인정부 출범과 동시에 수확기 시장격리를 발표해 단숨에 쌀값을 회복시켰던 ‘성과’는 정권 후반부 쌀값 폭락 문제에 속수무책인 채 마무리됐다.

5월 출범한 윤석열정부의 쌀정책 역시 큰 변화는 없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과제 중 ‘식량주권 확보’는 우량농지 보전과 기초곡물(콩·밀) 비축확대, 자급률 확대 등을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주식인 ‘쌀’ 문제와 식량주권 문제를 연결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통계청 산지쌀값(20kg 기준) 월평균가는 △5월 4만6,797원 △6월 4만5,537원 △7월 4만4,395원 △8월 4만2,484원 등 하락추세를 유지했다.

5월 취임한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쌀 가격안정과 수급대책의 묘수로 ‘가루쌀’을 제시했다. 물에 불리지 않고 바로 가루로 만드는 쌀을 심어 밥쌀 생산량을 줄이고 수입 밀가루 시장도 대체한다는 1석2조 효과를 선전했다. 가루쌀 품종을 확대 공급하고, 밥쌀 대신 가루쌀을 심는 농가에 지원을 강화할 뿐 아니라 ‘전략작물직불금’이라는 지원정책도 마련했다.

당장 내년에 가루쌀 전문 생산단지 39개소가 조성된다. 2026년까지 200개소 육성이 목표다. 현장은 관심도 높지만 그만큼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농식품부 계획대로 가루쌀 재배면적이 증가하면 그에 걸맞는 소비대책도 마련될 수 있느냐 하는 의구심이다. 또 수입밀가루를 대체한다고 ‘국산 밀 자급률’ 확대에 공을 들여온 정책과 가루쌀 정책은 상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지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회 농해수위, 야당이 돌아왔다

윤석열정부의 농정이 고물가·고환율·고금리, 3고 시대에 힘겹게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에게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하반기 위원이 교체됐다.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야당으로 위치가 바뀌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나섰다.

신정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행 ‘쌀 시장격리제’의 농민 기만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생산량이 많거나 가격이 떨어지는 ‘조건’이어도 현행 법은 ‘시장격리를 할 수 있다’는 정부 선택의 문제가 지난 1년 내내 시중쌀값을 정상화 시키지 못한 원인이라는 것에 공감했기 때문에, 의무조항으로 변경한 것이다. 소비량 감소에 대처하기 위한 탄력적 쌀 생산을 도모하기 위해 ‘논 타작물재배’도 병행토록 개정안에 담았다. 현재 국회 농해수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 에서 60일 이상 처리가 지연돼 본회의 상정 결정을 다시 농해수위가 해야 할 상황이다.

완전한 쌀 수급대책법안이라고 할 수 없지만, 현실적 대안이라는 점에서 현장 여론도 힘을 실었다. 더불어민주당은 ‘22대 민생입법과제’ 중 하나로 양곡관리법(쌀값정상화법이라 명명) 개정안 본회의 처리에 힘을 쏟고 있다. 모처럼 국회 내에 쌀문제·농업문제 논의가 풍성해졌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도 야당은 ‘실력’을 발휘했다. 농민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했으며, 농해수위 국감 참고인으로 현장에서 벼 수확을 마친 농민이 참석하고, 슬그머니 수입쌀을 컵밥 재료로 사용한 식품대기업 부사장을 증인으로 불렀다.

이원택·위성곤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농협중앙회의 금융사업 수익배분 문제를 지적하며, 경제사업 확대 강화를 촉구했다. 같은 당 서삼석 의원은 쌀값 폭락과 농업경영비 폭등 상황에 물가안정을 챙긴 농협중앙회를 비판하는가 하면 안호영 의원도 ‘역대 최고 수익에도 농협이 농가 환원에 인색하다’고 꼬집었다.

윤미향 무소속 의원의 농해수위 활동도 돋보인다. 농해수위 유일한 여성의원으로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했다는 평가다. 농식품부의 정책실패를 논리적으로 비판하고 농협 비정규직 노동자 문제를 의제화 한 것 등이 의미가 크다.

여당에 농업전문가가 없다는 게 야당이 가산점을 얻는 기회였는데, 최근 야당 내 불협화음이 번지고 있다. 바로 농협중앙회장 연임제를 담은 농협법 개정에 대한 입장차로, 법안소위 위원장인 김승남 의원의 연임제 처리 독주에 불만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오는 28일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농협중앙회장 연임법안 처리가 어떤 결과를 낼지 전국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윤석열정부 농정인사, 다시 이명박·박근혜시대로

문재인정부에선 ‘농민운동가’ 등 민간에게 역할을 맡겼다면 윤석열정부는 관료 중심으로 회귀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대통령실 농해수비서관의 인사가 마무리되면서 관료체제가 한층 공고해졌기 때문이다.

정황근 장관은 박근혜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농축산식품비서관(2013.3~2016.8)을 지냈고, 농촌진흥청장(2016.8~2017.7)을 역임했다. 농촌진흥청장 퇴임 후 일선에선 모습을 드러내지 않다가 국가농림기상센터 이사장을 2019년부터 맡아왔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캠프에서 활약했고, 취임 초기 ‘물가안정’에 촉각을 곤두세운 윤석열정부의 기조에 따라 농촌현장보다 밀가루와 식용유 생산기업들을 방문해 애로사항을 청취하는가 하면,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농산물 가격 점검 소비촉구에 적극성을 띄었다. 지난 8월 정황근 장관의 대통령 첫 업무보고 역시 농정현안 대신 물가관리였다는 것부터 논란이 됐다.

농식품부장관 정책보좌관은 탁명구씨로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 시절 정운천 장관 보좌관을 지냈다가 15년만에 다시 임명됐다.

대통령실 농해수비서관은 지난 5월 농식품부 김정희 국장이 발령을 받았고, 지난 11월 박범수 차관보로 교체됐다. 박범수 농해수비서관은 박근혜정부 청와대에서 농축산식품비서관실 행정관으로 일했다. 농해수비서관 뿐 아니라 행정관도 농식품부 공무원이 맡았다.

최근 가장 논란이 된 건 농정개혁을 목표로 문재인정부에서 신설된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위원장 인사다. 농민운동가였던 정현찬 농특위원장이 퇴임한 이후 지난 11월 이명박정부 농식품부장관을 역임한 장태평 전 장관(2008.8~2010.8)이 농특위원장에 취임했다. 현장 중심의 농정개혁으로 출발했던 농특위가 정권이 바뀌면서 농정협력 기구, 제2의 농식품부로 전환되는 것 아니냐 우려하는 이유다.

새 정부는 출범했으나 관료와 구시대 인사들이 탑승한 채 윤석열정부가 움직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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