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농업결산] 전 축종 구분없이 생산비와의 대혈투

  • 입력 2022.12.24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지난 8월 11일 서울역 앞 도로에서 열린 ‘수입축산물 무관세 철회 및 사료값 대책 촉구! 축산 생존권 사수 총궐기대회’에서 축산단체 대표들이 ‘사료값 무관세’가 적힌 얼음을 깨는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축산농민 7,000여명은 주요 수입축산물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한 윤석열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한승호 기자
지난 8월 11일 서울역 앞 도로에서 열린 ‘수입축산물 무관세 철회 및 사료값 대책 촉구! 축산 생존권 사수 총궐기대회’에서 축산단체 대표들이 ‘사료값 무관세’가 적힌 얼음을 깨는 상징의식을 펼치고 있다. 이날 전국에서 모인 축산농민 7,000여명은 주요 수입축산물에 대해 할당관세를 적용한 윤석열정부를 강하게 성토했다. 한승호 기자

 

‘이보다 더 오를 수 있을까.’ 2022년은 축산 농가에겐 축종을 가리지 않고 악몽과도 같은 한 해였다. 사료값 폭등세가 절정에 달했던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정책들 또한 악재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해 축산농가들의 고군분투 가운데 일부나마 지면을 통해 기록하며 송년하고자 한다.

 

사료값 폭등에 무관세까지 덮친 2022년

올해 들어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자 정부는 이를 관리하고자 각 분야에서 다양한 정책을 시행했다. 먹거리의 경우 꺼내든 카드가 바로 ‘자발적·전면적 추가개방’이었다. 그간 수급 불안 현상이 일어나는 특정 품목에 한해 ‘할당관세(무관세)’를 적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나, 축산물 전반에 걸친 할당 관세 적용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었다. 6월 초 돼지고기 5만톤에 먼저 적용된 할당관세 조치는 한 달 뒤 소고기·닭고기·분유 등 사실상 전 축종으로 번졌다.

문제는 소비자물가뿐만 아니라 생산자물가도 함께 오른 상태였다는 점이다. 올해 축산농가들은 역대 최악의 사료값 폭등세에 2년째 시달리고 있었다. 원료의 태반을 수입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는 배합사료는 코로나19 펜데믹과 이상기후 등의 영향으로 2021년과 2022년을 거치는 동안 ‘브레이크 없는’ 가격 상승을 지속했다.

할당관세 확대 적용이 발표됐던 2022년 7월에는 양축용 배합사료 평균가격이 kg당 667원을 기록해, 481원이었던 지난 2020년 말 대비 무려 38%나 오른 상태였다. 이 같은 악재 속에서 정부가 물가안정을 명목으로 자발적 추가수입마저 추진하자 서울 도심에서는 보기 드문 ‘축산농가 총궐기’까지 일어났다.

일단 ‘급한 불’을 끄고자 축산농가들은 합심으로 사료구매자금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하는 데 주력했다. 그 결과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는 지난 5월 30일 추가경정예산을 통한 총 1조5,000억원의 사료구매자금 지원책을 밝히고 농가의 이자 부담도 1%로 낮췄다고 발표했다. 총궐기가 임박했던 8월 들어서는 상환 만기를 2년에서 5년(3년 거치·2년 분할상환)으로 늘리기도 했다.

정부가 농가 의견을 일정 부분 수용한 데다 최근 사료값 하락세도 시작된 만큼 신경전은 한층 잦아든 모양새지만, 온도 차는 여전히 남아있다. 축산농가들은 내년에도 축산물 가격 약세가 예상되는 만큼 사료구매자금을 무이자로 지원하는 등의 전폭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속 주장하고 있지만, 정부는 자금 지원 규모를 1조원으로 줄이고 이율도 다시 1.8%로 회귀시키는 것을 전제로 내년 예산안을 짜는 등 입장 차이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낙농가들의 앞날은

농사짓고 가축을 기르는 누구나 내가 들인 ‘노동의 대가’와 ‘생산비’만큼은 보장되는 영농을 원하지만, 당연한 듯한 이 명제가 우리나라의 농축산업 현실 속에서 항상 ‘참’이 되기는 어려웠다. 그런 가운데 얼마 전까지 시행됐던 낙농의 생산비 연동제는 축산은 물론이고 농업 전반으로 시야를 넓혀도 찾아보기 어려운 생산자 중심의 가격결정제도이자 경영 안전장치였다.

매년 동일한 잣대 아래 측정한 생산비를 기준 삼아 원유 가격을 결정하도록 한 생산비 연동제는 생산 악재가 닥치더라도 낙농가들이 우유를 생산하고 소득을 낼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이었다. 사실상 소수 식품기업에만 생산품을 팔수 있는 업계 구조 및 극도로 떨어지는 저장성 등 태생적으로 불리함을 지닌 가운데 개방정책과 전염병 국면에서도 산업을 지키고자 낙농가들이 오랜 투쟁 끝에 얻어낸 성과이기도 했다.

2021년 8월, 생산비 연동제에 따른 가격 인상을 유업체가 거부하며 본격 시작된 낙농가-유업체 간의 갈등은 1년을 넘긴 지난 가을 무렵에야 일단락됐다. 사료값이 2020년 대비 40% 가까이 오른 상황에서 농가들은 당시 원유기본가격을 적용받아 2년째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상황을 결국 견디지 못했다. 낙농정책연구소가 농가 617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1년 경영실태조사에서 약 73%의 농장주가 현재의 유대 수준이 낮다고 응답했던 것을 생각하면 사료값이 절정에 달했던 올해 각 가구의 경영 결산은 더욱 악화할 것으로 보인다.

새 제도가 생산비를 아예 고려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 비중은 대폭 축소될 예정이다. 시장 수요 역시 반영할 뿐만 아니라 가공유 가격을 달리 설정하고, 수입산 가공유와의 가격 차를 최소화하는 장치도 마련한 만큼 농가의 실질 유대 수입은 줄어들 여지가 크다. 또 낙농진흥회 이사회의 의결구조가 정부가 생각했던 원안 그대로 변경되는 만큼 앞으로 생산자들은 농가에 불리한 구조로 제도가 추진된다 하더라도 이를 제지할 힘이 대폭 축소된다.

공교롭게도 낙농의 생산비 연동제 약화를 결정한 올해, 한우와 돼지를 키우는 농가들은 각각 최저가격보장제 등의 근본적인 생산비 보전책 도입에 목소리를 높였다. 농가와 행정이 각각 ‘지속가능성’의 핵심을 어디서 찾고 있는지, 그 시각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한우산업기본법으로 산업을 구하자”

한우 농가를 대변해 정책 방향성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전국한우협회는 올해 들어 농가들이 원하는 실질적인 지원책이 항시 작동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입법 운동에 나섰다. 하반기 들어 한우 경락가격이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지면서 산업위기가 현실화되자 그 목소리는 더욱 커졌고, 이를 최대한 전파하기 위한 활동에도 불이 붙었다.

본격적인 출발점은 지난 대선이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의 대선후보 캠프와 정책협약을 맺었던 전국한우협회는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한우만을 다루는 개별법안을 구체화하고,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를 찾아 의원들에게 발의를 요청하는 등 정책활동을 집중·지속했다.

가장 먼저 호응에 나선 것은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으로, 지난 7월 12일 ‘탄소중립에 따른 한우산업의 건전한 발전과 전환을 위한 지원법안’을 발의했다. 여권에서는 홍문표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 11월 지역구 충남 홍성에서 대규모 현장 정책토론회를 열어 의견수렴 과정까지 거친 끝에 지난 21일 ‘한우산업기본법안’을 발의했다.

두 법안 모두 기본적으로 한우협회의 정책활동에서 비롯된 만큼, 이원택 의원의 발의안이 이름에 걸맞게 경축순환 농업 전환·탄소감축 기술개발 지원 등에 대한 국가의 임무를 추가로 명시했다는 것 외엔 주요 내용에서 거의 차이가 없다. 양당의 발의안은 공통적으로 △5년 주기로 산업 발전을 위한 종합계획 수립 △수급 관리를 위한 ‘한우산업발전협의회’ 설치 △사료안정기금 도입 △출하장려금 지급·경영개선지원·소규모농가 지원 근거 마련 등을 주요 핵심 내용으로 두고 있으며, 주기적인 수급상황 파악 및 유통구조 개선, 수출 관련 정보·수집제공 등도 정부의 사업 범주에 포함했다.

법의 취지에 대한 입법부의 공감을 상당 부분 확보하는 성과를 낸 만큼 사실상 남은 과제는 행정부를 설득하는 일이다. 농식품부는 이원택 의원 발의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비롯,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우 산업을 위한 별도의 법을 제정하는 것에 부정적 의견을 표출해왔다. 한우산업 지원에 대한 필요성에는 공감하지만「축산법」에 각종 지원 근거가 이미 마련돼 있고, 마찬가지로 이 법을 근간으로 하는 타 축종과의 형평성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현행 법령 내에선 한우 산업을 지속할 수 있을 만한 정부의 지원 의무를 담는 것이 어렵고, 양봉·말 등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축종의 경우 개별법으로 지원하는 추세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특히 FTA로 인한 막대한 피해가 지금도 누적되고 있는 만큼 전용 지원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날이 높아지는 상황이다.

정승헌 한우정책연구소장은 지난 13일 열린 ‘한우산업발전간담회’에서 송아지생산안정제가 현실에 맞지 않는 법안 탓에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예시를 들며 개별법의 필요성을 다시금 주장하는 한편, 오는 2024년 국회의원 선거를 분수령으로 보고 그때까지 제정을 위해 전념해야 할 것이라고 설파했다. 한우 농가들이 올해 싹을 틔운 ‘제정 운동’을 구심점 삼아 이 난관을 돌파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