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농촌 현실과 미국의 농가부채 탕감 정책

[기고] 이무진 해남군 쌀생산자협회 사무국장

  • 입력 2022.12.18 18:00
  • 수정 2022.12.20 23:28
  • 기자명 이무진 해남군 쌀생산자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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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진 해남군 쌀생산자협회 사무국장
이무진 해남군 쌀생산자협회 사무국장

코로나19, 전쟁, 기후위기는 1990년대부터 세계 질서의 기본 축을 담당하던 세계무역기구(WTO) 신자유주의체제가 급속히 종말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각국은 농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여줄 농정으로 정책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의 섹션 22006에 의거, 미국 농무부(USDA)가 진행한 대출 및 보증 융자 그리고 농업 운영에서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민을 신속하게 구제하기 위해 31억달러(4조486억원)를 제공한 사실은 솔직히 충격적이다. 미국 농무부가 설명하는 지원 이유는 더욱 그러하다.

“더 빈번하고 더 강력하며, 기후에 따른 자연재해로 인해 악화된 전염병에 의한 시장 혼란으로 큰 타격을 입은 농민을 포함한 많은 농민들에게 이러한 지원은 농촌 지역사회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의 복지에 필수적인 식량, 섬유 및 연료의 계속 생산을 위해 매우 중요합니다.”

한국 사회가 그렇게 좋아하는 최고 동맹국 미국이 이럴진데 우리는 어떤가? 코로나19와 기후위기로 생산량이 감소해 가격이 폭등해도 농민들에겐 소득으로 돌아오지 않고 생산비는 3배 이상, 그리고 금융이자는 전년대비 2배 이상으로 폭등해 있다. 쌀값은 통계를 작성한 지 45년 만에 최대 폭으로 하락하고 배추 등 농산물 가격은 큰추위가 와서 다 얼어버리지 않으면 헛농사라는 한숨만 나오고 있다. 물가에서 차지하는 농산물의 가중치는 매우 작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물가상승의 원인으로 자주 언급되는 쌀은 소비자물가지수 1,000 중 4.3에 불과하다. 하지만 통신비는 36.1이다. 소비자가 월평균 1,000원을 지출할 경우 쌀 구입에는 4.3원을 쓰지만 휴대전화 통신비에 36.1원을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농산물 가격이 마치 물가상승의 주범으로 느껴지는 것은 구매빈도가 높기 때문에 나타나는 심리적 요인일 뿐이다. 정부는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치 농산물 가격이 물가상승을 주도하는 것처럼 장·차관이 마트에 가서 농산물 들어 보이며 “너무 높다, 낮춰야 한다”는 모습을 계속 노출시켰다. 물가에 미치는 실제 영향보다는 당장에 보여주기 성과를 낼 수 있는 농산물 가격만 오로지 뒤흔들고 있는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한국 농민들은 올해 결산을 하는 12월 연말 생산비마저 갚지 못하는 떨어진 소득 앞에 울분만 토하고 있다.

전라북도 농민들과 오은미 진보당 전북도의원은 전북도가 현재 농민의 상황을 재난으로 인정하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할 것을 요구하며 단식과 연좌농성을 20여일 진행한 바 있다. 미 농무부의 농가부채 탕감 정책이 충격적이고 부러운 이유이다. 미 농무부가 농민들의 부채를 탕감해준 똑같은 이유로 우리나라 농민들은 추운 겨울 길바닥에서 지자체와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고 있다. 너무 서글픈 모습이다.

중국과 사우디가 만나 유류결제를 ‘위안화’로 하겠다는 기사를 봤다. 달러패권, 즉 미국 패권은 끝에 다다르고 있다. 또한 미국 패권의 축이었던 WTO는 미국 스스로 붕괴시키고 있다. 상품을 팔아 번 돈으로 식량은 싸게 사다 먹으면 된다던 신자유주의 논리는 붕괴돼 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발생하고 있는 식량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는 지속가능한 농업을 유지하기 위한 정책을 서둘러 내오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가? 변하는 세상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무능일 뿐이다. 특히 한국 농정에 꼭 한 훈수씩 두는 학자들과 철학도 없이 책상에 앉아 마치 전부를 아는 체하는 관료와 전문가들에게 묻는다. “미국의 농가부채 탕감정책이 뭐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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