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농민가공, 막혀있는 길을 뚫어라

직접 키운 농산물 가공해 팔려 해도 … 해썹의 벽·법률의 벽

영세농 소득향상 및 농산물 ‘관계형 시장’ 열쇠지만 제약 심해

공동가공센터 활성화·법률 개정·당당한 농민 권리 주장 필요

  • 입력 2022.12.09 15:36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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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위성곤·이원택·강은미·윤미향 의원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전국먹거리연대·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언니네텃밭 주관, 대산농촌재단 후원이다.
지난 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 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위성곤·이원택·강은미·윤미향 의원과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전국먹거리연대·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언니네텃밭 주관, 대산농촌재단 후원이다.

기계와 농약·비료 사용이 적은 건강한 농산물. 그 농산물로 합성첨가물 없이 만들어낸 귀한 가공품.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원하는 바이지만 이 가공식품은 어지간해선 ‘불법’이다. 대기업 식품위생 잣대에 길이 막힌 ‘소규모 농민가공’의 해법을 찾기 위해 지난 6일 국회에 현장 밀착형 전문가들이 모였다. 유엔농민권리선언포럼·전국먹거리연대·전국농민회총연맹과 위성곤·이원택·강은미·윤미향 의원이 공동주최한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 방안’ 토론회다.

우리 농업·농촌의 비정형적 가치에 애정을 지닌 5명의 연구자·활동가(윤병선·송원규·이효희·오순이·구점숙)는 대산농촌재단의 지원으로 소규모 농민가공 활성화 방안을 연구 중이다. 이번 토론회는 내년 3월 마무리되는 이 연구의 중간성과를 공유하고 내용을 보강하기 위한 목적을 띠었다.

발제를 맡은 이효희 경기지속가능농정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농가 단위의 농식품 가공은 통계상 대농보다 중소농의 소득창출에 주효하고 농민들의 욕구도 높게 나타난다. 하지만 법·제도적 제약으로 인해 현장에서 활기를 띠진 못하고 있다.

의무적 또는 현실적으로 농가에 강요되는 해썹인증은 비용증대와 인력고용, 규모화를 유도해 농민가공의 본 취지를 퇴색시킨다. 즉석판매 제조·가공업 등록은 식품제조·가공업보다 부담이 덜하지만 로컬푸드직매장에서조차 제품을 판매할 수 없다. 시설기준 역시 법률이 농민가공에 한해 특례(지자체 별도 기준 허용)를 열어놨지만, 지자체의 전문성 부족과 소극적 태도, 중앙부처의 역할부재로 무용지물인 경우가 많다.

이 소장은 소규모 농민가공을 활성화하기 위해 위 문제들에 대한 법률 정비와 더불어 지자체 공동가공센터 기능 내실화, 마을 공동체가공 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덧붙여 농가부엌법(Cottage Food Law)으로 최대한 농민가공을 장려하려는 미국 각 주의 노력을 소개하기도 했다.

토론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 구점숙 언니네텃밭 운영위원장이 전체 행사 사회를,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토론 좌장을 맡았다.
토론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 구점숙 언니네텃밭 운영위원장이 전체 행사 사회를, 윤병선 건국대 교수가 토론 좌장을 맡았다.

토론에선 법·제도의 벽에 직접 부딪혀본 다양한 경험들이 공유됐다. ‘농민 주도형 로컬푸드’ 대표주자인 진주텃밭협동조합의 소희주 이사장은 “기껏 직매장을 만들어 놨더니 농민가공품을 진열할 수가 없었다. 여론의 바람을 타고 일사천리로 조례를 만들었는데, 막상 상위법과 부딪혀 적용을 못 하더라”라며 “외부 가공품을 받을 수 없어 각 매장에 부엌(즉석판매 제조·가공시설)을 만들어 놨는데, 이것도 매장 직원이 작업해야만 하더라. 현재 이 부엌에서 직원이 만든 건 매장 판매, 농가가 와서 만든 건 온라인 커뮤니티 판매 등으로 이원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15년째 메주·된장을 만들어 팔면서 농협에조차 내지 못하는 마을 △학교급식 납품을 위해 해썹인증을 받았다 각종 관리작업·인건비에 잘 해나가던 두부사업이 골칫거리가 된 마을 △개인 허가받은 조청 생산시설에서 토마토즙을 짜는 게 금지라 옆 시·군에서 짜왔더니 로컬푸드 매장에 낼 수 없었던 농민 등 보다 많은 사례를 소개했다.

정형숙 괴산군농업기술센터 농촌지도사는 지역 공동가공센터를 제법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괴산의 실무담당자다. 그는 “직원 출퇴근 시간과 휴일을 보장하자면 농민들의 가공 수요를 충분히 맞춰드리기 어렵다. 공동가공센터는 자체 기능에서 그칠 게 아니라, 가공창업보육센터 역할을 해 마을단위 공동가공장과 농가부엌으로 확대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 밖에 강석찬 한국친환경농산물가공생산자협회 회장은 “소규모 농민가공을 규제하는 법들은 ‘생산자 육성’이 아니라 ‘소비자 기호’에 초점을 맞춘 법이다. 되도록 생산자에 관점을 두고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며, 국승용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정부의 식품위생 규제를 벗어나는 ‘사회적유통’ 채널에서 안전이 계속 확인돼야 법에서 충돌이 생겼을 때 반론을 제기할 근거가 된다”며 현장의 고민과 노력을 독려했다.

이영근 탄소치유농업연구소 소장(변호사)은 법조인으로서 좀더 본질적인 주장을 내놨다. 소규모 농민가공이 법률적 제약에 막혀있다지만, 실상은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시각이다. 그는 “우리나라는 서양법을 도입했으면서 서양법의 자유 정신을 잃어버렸다. 식품가공업은 생산활동의 연장이고 우리가 자유롭게, 기본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인데 식약처(법)가 막은 거다”라며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할 게 아니라 그냥 하면 되는 거고, 하다가 제지당하면 집단 위헌소송 등으로 기본권 침해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좌장을 맡은 윤병선 건국대 교수는 “농민이 규모가 작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해달라는 건 절대 아니다. ‘얼굴 있는 먹거리’를 얘기하는 것”이라며 “내가 생산한 것이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 팔렸는지 알 수 있는, ‘관계형 시장’을 만든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주제”라고 토론의 의미를 짚었고, 오순이 위원장 역시 “농가 소득보전 차원으로만 바라볼 게 아니라 기후위기의 시대에 앞으로 우리 먹거리 공급체계를 어떡할 건지와 연결해야 한다. 소농이 차려낸 건강한 밥상이 중요하고, 농민이 주도하는 밥상공동체 회복이야말로 지금 시대에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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