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벼농사의 지속가능한 미래 위한 대안은?

[기획] 친환경 쌀의 미래를 위하여②

  • 입력 2022.11.27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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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이 땅의 벼 재배농민들이 지속가능한 벼농사를 짓기 위해선 지난 16일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외친대로 △쌀 수입 중단 △양곡관리법 전면 개정 △정부 차원의 영농비 폭등 대책 마련 등이 절실하다. 이는 친환경 벼 재배농민에게도 해당되는 사항이다. 현장 친환경농민들은 이에 더해 친환경 벼농사의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책을 주문한다. 그들은 어떤 대책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생산자·소비자 연대 통한 소비 진작

지난 22일 대전시 대철회관에서 가톨릭농민회·(사)천주교서울대교구우리농본부 간에 진행된 수도권 생명쌀 협약식. 가톨릭농민회 제공
지난 22일 대전시 대철회관에서 가톨릭농민회·(사)천주교서울대교구우리농본부 간에 진행된 수도권 생명쌀 협약식. 가톨릭농민회 제공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생산자-소비자의 연대다. 이들의 연대 없이는 친환경 쌀 소비 진작도 불가능하다. 최근 쌀, 나아가 벼농가의 위기가 심화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생산자-소비자 연대 사례가 점차 늘고 있다.

우선 가톨릭농민회(회장 신흥선, 가농)와 (사)천주교서울대교구우리농본부(본부장 이승현, 우리농) 간의 유기농 쌀 책임생산·책임소비를 위한 약속이 눈에 띈다.

가농과 우리농은 지난 22일 대전시 대철회관에서 진행된 ‘수도권 생명쌀 협약식’을 통해, 가농 생산규정(유기농업 방식)에 의거해 생산된 메벼 1,171.45톤, 찰벼 137.23톤(이상 2022년산)을 각각 40kg당 9만3,000원(메벼 1등급), 10만원(찰벼 1등급)에 수매하기로 협약했다.

‘생명쌀’이란 별칭을 가진 가농 생산자들의 쌀은 가농 공동수매와 교구수매를 통해 소비된다. 쌀 생산지이자 소비지이기도 한 지역교구에서 생산한 쌀을 수매하는 교구수매와 달리, 공동수매는 쌀 생산지가 없는 수도권 교구(서울·인천·의정부·수원) 소비자들을 위한 수매과정이다. 수도권뿐 아니라 광주·마산·안동·전주·청주교구에서도 공동수매에 참여한다.

가농과 우리농은 쌀값 폭락 현실 속에서 농민이 안심하고 농사지을 수 있도록, 아울러 재생산이 가능한 생산비 보장을 위해 앞으로도 함께하겠다는 입장이다.

생협에서의 소비 진작 노력도 돋보인다. 한살림연합(상임대표 조완석, 한살림)의 경우 전 조합원·실무자·생산자들이 약 250톤의 쌀을 ‘책임소비’하기로 결의하면서, 전국 한살림 매장과 온라인 장보기 누리집을 통해 △쌀과 쌀 가공품 적극 이용하기 △가까운 친구 또는 가족에게 쌀 선물 보내기 △이웃을 위한 쌀 기부하기 △쌀 막걸리 강좌 및 현미 팩 만들기 등의 다양한 활동을 진행했다.

한살림은 지난 11일 농업인의 날엔 전국 240개 한살림 매장에서 쌀 조청을 구입한 조합원에게 쌀 절편을 증정하는 행사도 벌였다. 이와 함께 쌀 가공품 기획전을 통해 떡볶이 떡을 비롯한 20여종의 쌀 가공품을 10% 가격 인하해 판매하기도 했다.

한편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위원장 주형로, 친환경자조금)는 최근 진행한 수급안정사업에서 특히 친환경 쌀 소비촉진에 주안점을 뒀다. 친환경 쌀 가공지원 소비촉진 사업을 통해 친환경 쌀을 활용한 가공식품(떡·조청·전통주 등)의 생산·소비를 지원했고, 친환경 쌀 소비자 인식개선 캠페인에선 친환경 쌀라면 신제품개발 및 마케팅 비용을 지원했다. 친환경 쌀라면의 경우 전남친환경농업협회(회장 유장수)가 원재료를 공급했고 ㈜새롬식품(대표 안희석)이 쌀을 라면으로 가공했으며, 행복중심생협연합회(회장 안인숙)가 판촉에 나섰다.

친환경자조금은 한국친환경농업협회(회장 강용)와 함께 ‘친환경 쌀 소비촉진 지원사업’에도 나섰다. 막대한 친환경 쌀 재고로 어려움을 겪는 지역 친환경농업협회의 친환경 쌀 소비촉진을 위한 사업이다.

일례로 전북친환경농업협회(회장 박서구)의 경우 10월 19일~11월 18일에 걸쳐 친환경 쌀의 △관외 친환경농산물 매장 공급 △관내 식당에 일반 쌀 대신 공급 △공공기관 위탁업체에 일반 쌀 대신 공급 △민주노총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에게 직거래 판매 등의 방식으로 쌀 소비 노력을 기울였다.

공공급식 영역에서부터 친환경 쌀을

생산자·소비자의 주체적 소비 진작 노력뿐 아니라, 궁극적으론 국가 차원에서 먹거리문제를 책임지고자 나서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충남 서산시에서 친환경 벼 등을 재배하는 전량배 한국친환경농업협회 부회장은 공공급식, 특히 어린이집·경로당 등에서 친환경 쌀부터 현물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당장 어린이집에 친환경농산물을 전면 공급하긴 어려우니, 우선 쌀부터 현물지원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11일 국회에서 대통령직속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 등의 주관으로 열린 ‘어린이집 친환경 급식 확대를 위한 정책토론회’에 참가한 경북지역 어린이집 원장들도 “우선 친환경 쌀부터라도 어린이집에 공급했으면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실제로 충청남도 각 시·군에선 지난해부터 쌀을 비롯한 친환경농산물의 어린이집 현물지원이 시작됐다. 어린이집 식자재 지원사업은 양승조 전 충남도지사의 공약이기도 했는데, 전 부회장 등 충남 친환경농민들은 2018년 지방선거 당시 양 전 지사에게 △충남산 친환경농산물의 어린이집 공급 △현금지원 대신 ‘현물지원’ 방식 채택 등을 촉구해 관철시킨 바 있다. 현재 전 부회장이 거주하는 서산에서도 관내 134개 어린이집에 친환경 쌀이 배송된다.

전 부회장은 “처음엔 어린이집 원장들이 강하게 반대하는 등 현물지원방식이 처음부터 순탄하게 정착된 건 아니었다. 그러나 어린이집에 현금지원 관련 정산을 할 행정실무자가 따로 있지도 않고, 적은 인력으로 매일 10~20명의 어린이에게 밥해 주는 것만으로도 바쁘니 정산할 시간이 없다는 애로사항이 있었다”고 한 뒤 “반면 현물지원방식은 어린이집 입장에서도 별도로 정산할 필요가 없고, 전산시스템에 들어가 클릭만 하면 배송이 되니 상대적으로 편하다. 어린이집 원아 부모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밝혔다.

전 부회장은 이어 친환경 쌀 현물지원 확대와 관련해 “영·유아부터 학생, 대학생, 군인에 이르기까지 성장기를 보내는 남녀, 그리고 고령의 어르신은 특히 국가 차원의 돌봄이 중요한 국민”이라며 “그들에게 가는 것만이라도 국가가 지향하는 농사방식인 친환경농사 방식으로 지은 쌀을 우선 공급하고, 쌀을 원료로 삼는 국수·라면·빵·떡 등을 공급하겠다는 정책이 마련돼야 친환경 쌀의 미래도 담보된다”고 한 뒤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산이 생각만큼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어차피 군대·경로당 등에도 정부양곡 또는 시중에서 계약한 양곡이 들어가는데, 이 양곡은 친환경 쌀 대비 70~80% 수준의 가격으로 유통된다. 사후비용이나 농사의 환경생태적 전환 과정에서 들어가는 비용을 감안해도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정부의 의지 문제다. 그러나 이러한 사업을 농식품부나 보건복지부, 국방부 등 개별부서에서 진행하는 건 부처 칸막이 등의 문제로 어렵다. 적어도 국무조정실, 궁극적으론 대통령이 직접 나서 시스템을 점검하고,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해 나갈 필요가 있다.”

지난 2019년 일본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군 유자와마치의 한 가게에서 발견한 일본 전통주. 이 술들은 니가타현의 천혜의 환경 속에서 자라난 쌀로 만들어진 지역 전통주다.
지난 2019년 일본 니가타현 미나미우오누마군 유자와마치의 한 가게에서 발견한 일본 전통주. 이 술들은 니가타현의 천혜의 환경 속에서 자라난 쌀로 만들어진 지역 전통주다.

한편 친환경 쌀 가공과 관련해, 전남 무안군에서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정영호 자주농업연구소 소장은 “판로를 찾기 힘든 쌀로 술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정 소장은 “일본의 경우 지자체 차원에서 각 지역산 쌀 재고량을 사케(일본 전통주)로 만들도록 지원한다. 일본 각 지역에선 100~200종에 달하는 전통 일본주를 접할 수 있는데, 이는 정책적으로 연결지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도 우선 지자체 차원에서나마 재고 쌀을 술로 빚어 관내 식당에서 팔 수 있도록, 또는 전통주를 만드는 지역 내 중소기업에서도 지역 쌀을 활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유기농 벼농사의 전환을 위하여

정영호 소장은 유기농 벼농사의 미래와 관련해 “유박·유기질비료 등 외부투입 농자재 중심의 ‘관행화된 친환경 벼농사’ 대신, 볏짚 등 농사과정의 부산물을 활용하는 원래 방식의 유기농 벼농사에 더 많은 농민이 뛰어들 수 있도록 정부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며 정책적으로 크게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농협의 벼 수매방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게 정 소장의 입장이다.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자.

“그동안 농협은 사실상 △다수확 품종 △알이 잘 여물고 큰 벼 위주의 수매를 고수해 왔다. 질소비료를 많이 투입한 벼일수록 알이 잘 여물고 큰 반면, 유기농 재배 벼는 쌀알이 작다. 질소를 얼마나 투입했는지에 따라 쌀 수매가 결정된 셈이었고, 그 과정에서 유기농 쌀은 더더욱 배제됐다. 이런 구조하에선 친환경 벼 재배농민들도 유기질비료·유박 등을 사용하며 수량에 연연하지 않을 수 없다. 농협이, 궁극적으론 정부가 쌀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셈이다.”

현장 농민들도 질 좋은 쌀을 생산하고 싶으며, 질소비료를 과도하게 많이 쓸수록 쌀의 질도 떨어진다는 걸 안다. 그러나 현재의 쌀 정책구조 하에선 대안적 농사방식을 선택하기 어렵다는 것이 정 소장의 분석이었다.

다수확 벼 품종 위주의 수매를 고집하다가 도열병 창궐로 전북지역 신동진 벼 재배농민들이 고통을 겪었던 지난해의 사례를 반추해 봐도, 아직 구체적 논의는 시작되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벼 품종다양성 강화(특히 토종·친환경 벼) 및 벼 품질 강화를 위한 친환경농업 정책 본격화가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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