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벼 재배 농민들의 험난했던 2022년

[기획] 친환경 쌀의 미래를 위하여①

  • 입력 2022.11.20 18:00
  • 수정 2022.11.22 11:59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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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45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폭락한 쌀값은 친환경 벼 재배농민에게도 악영향을 끼쳤다. 모두가 똑같은 고통을 안은 건 아니지만, 각지의 친환경농민들은 △수확량 감소로 인한 소득감소 위기 △부족한 판로 △기후변화로 인한 재배 과정의 난항 △생산비·인건비 증가 등의 각종 애로사항을 호소하고 있다. 현장 친환경농민들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살펴본다.

수확량도 소득도 감소, 생산비는 늘 부담

경기도 파주시 농민 이원경씨가 친환경 쌀 저장고에서 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이씨는 “올해 생육기간에 비가 많이 와 예년보다 액미가 많이 발생했다”고 근심을 표했다.
경기도 파주시 농민 이원경씨가 친환경 쌀 저장고에서 쌀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이씨는 “올해 생육기간에 비가 많이 와 예년보다 액미가 많이 발생했다”고 근심을 표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유기농 벼농사를 짓는 이원경씨(파주친환경농업인연합회 잡곡분과장)가 생산한 벼의 각 판로별 물량은 경기도농수산진흥원 및 지역농협 등을 거쳐 학교급식에 공급되는 물량이 40%, 생협 공급 물량이 40%, 직거래 물량이 20%다. 아직 농협 및 생협의 벼 수매가격이 확정된 건 아니지만, 사실상 지난해보다 수매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이씨의 예측이다.

“지난해 도내 지역 농협 중 한 곳의 수매가가 40kg당 8만6,000원이었는데, 올해는 어느 정도일진 몰라도 수매가가 낮아지리라는 건 확실하다. 아마 전년 대비 2,000~3,000원, 많게는 4,000~5,000원 정도 낮아질 거다. 지역농협 중 주요한 두 수매처가 아직 가격 결정을 안 한 상황으로, 지난해 고가에 수매했으나 판매를 못 해 적자가 심해서 적자 보전을 위해 올해 수매가격이 내려갈 거라는 언급은 지역 농협들로부터 여러 차례 들었다. 그러나 얼마나 내릴지 지역 농협 간에 눈치를 보느라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생협 수매가도 마찬가지 이유로 지난해 40kg당 9만6,000원에서 올해 9만3,000원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씨는 쌀값도 쌀값이지만 수확량이 적은 게 큰 고민이다. 이씨의 경우 올해 벼(학교급식에 공급하는 품종인 ‘백옥찰’) 수확량이 전년 대비 약 24~25% 줄었다. 원래 친환경 벼는 일반 벼 대비 약 70~90% 수준의 생산량을 보이긴 하나, 올해는 지난해보다도 더 수확량이 줄어든 것이다. 그나마 이씨는 덜 줄어든 편이고, 파주지역의 다른 친환경 벼 재배농민은 수확량이 30% 이상 줄어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안 품종으로 ‘보람찰’도 고려했지만, 이 품종은 도열병에 약하기에 역시 선뜻 선택하기 주저되는 상황이다.

“일반 벼 재배농민들이 다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농약·화학비료·제초제 등을 사용하다 보니 친환경 벼 재배농민보단 수확량이 많은 편이다. 물론 일반 벼값은 친환경 벼값보다 더 낮지만, 대신 일반 벼는 수확량이 더 많고 친환경·일반 벼의 한 포대당 가격 차이는 1만2,000~1만3,000원 정도이다 보니, 대다수 친환경 벼 재배농민들은 유의미한 가격 차이가 난다고 여기지 않는다.”

그런 상황은 아랑곳없이 친환경 벼 재배농민들의 생산비·인건비 부담은 가중됐다. 인건비의 경우, 이씨가 농사짓는 파주시 적성면 일대에선 남성(주로 외국인노동자) 1인당 일당이 지난해 10만원에서 올해 12만원으로, 여성 일당이 지난해 6만5,000원에서 올해 9만원으로, 동네 여성 어르신 일당이 지난해 6만원에서 7만원으로 올랐으며, 칼슘제 및 수용성 규산 등 친환경농자재 전반의 가격도 500ml 한 개당 각각 2,000~3,000원씩 올랐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그래서 생산 과정이 순탄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친환경 벼 재배농민들은 제초제를 치지 않고 우렁이(특히 왕우렁이)가 논의 잡초를 먹게 함으로써 제초작업을 대행한다. 그러나 우렁이를 통한 제초도 만만치 않다.

“우렁이는 어릴 땐 풀을 많이 먹지만 자라면 자랄수록 거의 안 먹는다. 우렁이가 알을 낳고 그 알이 부화해 새끼 우렁이가 자랄 때까진 시간이 걸린다. 주로 6월말에서 7월 중순에 걸쳐 우렁이가 낳은 알들이 부화하는데, 올해 이들이 부화하는 기간 동안 풀이 많이 올라왔다. 설령 자라난 우렁이라 해도 논물 위로 높게 자란 풀은 먹지 않고 논물 속에 낮게 자란 풀만 먹는다. 우렁이에게만 제초를 맡길 순 없는 셈이라, 한여름 땡볕을 무릅쓰고 직접 부족한 수의 인력과 함께 피 뽑기를 해야 한다.”

판로 찾기 힘든 전남산 친환경 쌀

전남 곡성군 농민 유장수씨가 자신이 대표로 운영하는 친환경영농조합의 창고에 쌓인 2021년산 친환경 구곡을 살펴보고 있다.
전남 곡성군 농민 유장수씨가 자신이 대표로 운영하는 친환경영농조합의 창고에 쌓인 2021년산 친환경 구곡을 살펴보고 있다.

그나마 경기도 친환경 벼 재배농민들의 경우 수확량 감소 및 가격하락 등에 대한 우려는 커도, 지역산 친환경 벼의 판로는 충분히 확보된 상태다. 그러나 전국 대다수의 지역은 친환경 벼의 판로 확보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대표적 지역이 ‘친환경 쌀 생산 1번지’ 전라남도다.

곡성군에서 벼농사를 짓는 유장수씨(전남친환경농업협회 회장)는 본인이 대표로 있는 영농조합법인에서 곡성 및 전남 각지의 친환경농가로부터 수매한 벼를 지역 유통업체에 공급한다. 지역 유통업체를 거친 벼는 전남 등 각지의 학교급식에 공급된다.

그러나 올해 최악의 쌀값 폭락 국면 속에서 유씨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유씨의 영농조합에 저장된 2021년산 친환경 구곡이 판로를 못 찾아 적체됐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8월말이면 구곡 물량이 다 팔려가 9월초부턴 2021년산 햇벼를 농가들로부터 제때 수매할 수 있었으나, 올해는 9월 구곡 적체량이 700톤 이상 쌓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그나마 판매 노력을 기울여 상황이 나아졌다지만, 11월 현재까지도 약 60톤의 2021년산 구곡이 영농조합 창고에 남아 있었다.

어떻게 640톤 가량의 구곡을 팔았을까. ‘출혈출하’를 했기 때문이다. 유씨는 “저가로라도 빨리 재고처리를 해야 조금이라도 더 지역 친환경 벼농가들로부터 신곡을 수매할 수 있던 상황이다. 우리 영농조합과 거래하는 친환경 벼농가가 곡성에만도 약 200농가가 있는 만큼 시급했다”고 한 뒤 “그럼에도 올해는 신곡 수매농가를 많이 줄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출혈출하(지난해 9~10월 출하한 친환경 벼 20kg당 7만원이었는데 올해 9월 출하가격은 5만원)로 인해 유씨의 영농조합도 상황이 빠듯해졌기 때문이다. “전년 대비 (전남 친환경 벼농가로부터의) 신곡 수매량을 4분의 1, 어쩌면 5분의 1로 줄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게 유씨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전남산 친환경 벼 판로를 찾기 힘들었다는 점이다. 유씨는 이와 관련해 ‘교조적 로컬푸드(지역먹거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로컬푸드 정책에 따라 각 지자체가 ‘지역먹거리 우선공급’ 정책을 펼치는 것까진 좋으나, 문제는 그 과정에서 각 지자체가 ‘행정구역 중심 사고’에 갇혀 지역산 친환경 쌀이 부족할 시 ‘지역산 일반 쌀’ 또는 ‘지역산 GAP(우수농산물 인증) 쌀’부터 우선 공급한다는 것이다.

유씨는 “전남도는 전국 친환경 쌀의 약 60% 이상을 생산하는 반면, 전남도의 인구는 200만명을 넘지 못한다. 학생 수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현 로컬푸드 정책대로라면 전남도의 친환경 쌀은 전남도 내에서 결코 충분한 판로를 찾을 수 없으며, 실제로 전남도의 친환경 벼 적체량은 심각한 수준”이라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반 벼 특등가격으로 공공비축미 수매를 하지 않는 한 전남산 친환경 쌀은 판로를 찾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친환경농산물자조금관리위원회의 지난 9월 통계에 따르면, 당시 전국 친환경 벼 적체량 2만9,966톤 중 3분의 2 가량인 2만1,881톤이 전남산 친환경 벼였다.

친환경 벼농사 지을 이유 찾게 해달라

이원경씨는 “최근 지역 내에서 친환경농사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내가 속한 파주친농연 잡곡출하회원 중에서도 ‘고생은 고생대로 하건만 소득 측면에서 유의미한 농사 이유를 못 찾겠다’며 친환경 벼농사를 포기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 뒤 “벼값은 덜 나오더라도 수확량은 더 많고, 농사 과정에서 인력 걱정 등 오만 걱정은 덜한 일반 벼농사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유장수씨도 “화학비료·농약은 투입 횟수도, 투입량도 오히려 친환경 벼 재배 시 각종 비료 투입량보다 적다. 차라리 일반 벼농사로 전환해 수확량을 더 늘리고 투입비도 적게 들이려 고민하는 농민이 적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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