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농민, 정의로운 농민운동가였다” 

농민운동가 故 박행덕 의장 영결식 거행

추모객 300여명, 고인 뜻 기리며 노제 참석

  • 입력 2022.11.10 15:26
  • 수정 2022.11.10 18:52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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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7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거행된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서 박 전 의장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추모객 300여명이 '농민해방 만세', '통일세상 만세', '진보집권 실현' 등이 적힌 만장을 들고 노제를 지내고 있다.
7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거행된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서 박 전 의장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추모객 300여명이 '농민해방 만세', '통일세상 만세', '진보집권 실현' 등이 적힌 만장을 들고 노제를 지내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거행된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서 박 전 의장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추모객 300여명이 농민가를 제창하고 있다.
7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거행된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서 박 전 의장을 추모하기 위해 모인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추모객 300여명이 농민가를 제창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거행된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서 박형대 전남도의원이 박 전 의장을 추모하는 추도사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7일 오전 전남 장흥군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거행된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서 박형대 진보당 전라남도의원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한승호 기자

‘새로운 백년을 개척한 농민운동가’ 고(故)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이 지난 7일 전남 장흥군민회관 앞에서 농민, 노동자를 비롯한 추모객 300여명이 모인 가운데 거행됐다.

고 박행덕 의장은 2004년 장흥군농민회 부산면지회를 조직해 지회장을 맡은 이후 장흥군농민회장과 전국농민회총연맹 광주전남연맹 의장직을 수행하면서 농민들의 현실을 알리고 농업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극 나섰다.

또 지난 2018년부터 2019년까지 전국농민회총연맹 17대 의장을 역임하면서 강원 평창 통일한마당, 통일트랙터 조성, 농민수당 전국화, 직불제 개혁 투쟁 등 농민운동사에 남는 굵직굵직한 활동을 선도했다. 같은 시기 농민과함께하는농민의길 상임대표직도 맡아 진보적 농민단체 연대활동의 한길에 앞장섰던 박행덕 의장은, 2년여의 암투병 끝에 지난 5일 영면에 들었다. 향년 66세. 

이날 영결식에서 상임장례위원장인 하원오 전농 의장은 “민중총궐기에서 백남기 농민이 열어낸 물꼬를 전봉준트랙터가 터뜨렸다. 분노한 농민의 투쟁이 엄혹하던 박근혜정권을 끌어내린 것이다. 그러나 그 열매는 엉뚱한 곳으로 떨어져 너도나도 촛불정신을 계승하겠다며 나서서 가짜 진보가 판을 치게 됐다”고 비판하며 “그때 박행덕 의장님이 전농으로 오셨다. 진보를 자처하는 가짜들이 원칙을 저버리고 듣기 좋은 말들로 대중을 현혹하고 있을 때 진짜 진보는 오직 통일이라고 했다”고 박행덕 의장의 굳은 신념을 전했다. 이어 “의장님은 돌아가셨지만, 유지를 받들어 통일트랙터가 분단의 철조망을 갈아엎고 휴전선을 넘어가는 그날까지 남과 북의 농민이 어우러져 함께 농사짓는 그날까지 힘차게 투쟁하겠다”고 추모사를 전했다.

가장 가까이서 오랫동안 박행덕 의장을 봐 온 박형대 진보당 전라남도의원의 추모사는 절절한 그리움과 안타까움으로 채워졌다.

박형대 의원은 “우리 의장님은 아름다운 농민이었다. 가만히 있는 날이 없었다. 쉼 없이 일했고 무슨 농사든 억척스레 해냈다. 농기계도 손수 고치고, 필요한 기계도 직접 고치면서 못하는 농사도 없었다. 그래서 손은 포클레인 삽날보다 투박했고 거침이 없었다. 이 시대 농민처럼 생의 힘이 다할 때까지 땅과 함께 살아왔다”고 기억했고, “정의로운 농민운동가였다. 농민이 무시당하고 핍박당하면 이를 갈며 분노했고, 농민이 사회경제적 권리를 찾을 때면 한없이 좋아했다.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이 멸시당하면 가슴이 터지듯 비분강개했고, 우리 민족의 당당한 일에는 춤을 추듯 기뻐했다. 그리고 농민과 조국을 위한 투쟁에 나서면서 ‘의장님 한판 해야 쓰겄는디요’ 하면 ‘야, 나 징역 갈 정도로 싸움판을 만들어라’ 하고 든든한 기둥이 돼 주셨다”고 우러렀다.

또 “대쪽같은 진보운동가였다”면서 “목표를 세우면 단 한번도 흔들림 없었다. 스스로 지켜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며, 파란만장한 진보정치 맨 앞에서 논밭으로 뛰어다녔다. 오직 한길 걸어온 동지를 최고로 여겼고, 자신의 간까지 빼줄 정도로 사랑했다. 다시 살아 돌아온 동학혁명의 지도자 같은 분, 가실 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열정과 의지를 우리에게 건네주고 갔다”고 전했다.

박형대 의원은 마지막 인사에 “의장님이 가장 좋아한 말로 인사하겠다, 투쟁”이라고 주먹을 불끈 들어 외쳤다. 

이날 고 박행덕 의장 농민장 영결식에는 전남지역과 각지의 농민들을 비롯해 김성 장흥군수, 윤희숙 진보당 상임대표, 민점기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전남본부 공동상임대표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추모객들은 장흥군민회관 앞서 열린 영결식이 끝난 뒤 ‘농민해방 만세’, ‘통일세상 만세’, ‘진보집권 실현’ 등이 적힌 만장을 들고 장흥군청까지 걸으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함께 했다. 

고 박행덕 의장은 전남 보성군 선영에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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