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노인복지 기획] ③ 골병들어도 호미 못 놓는 여성농민들

  • 입력 2022.10.23 18:00
  • 수정 2022.11.29 11:58
  • 기자명 김태형·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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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로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전국 89개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해 올해부터 10년간 매년 1조원씩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동안 청년이 떠난 지방, 그 가운데서도 노인이 집중된 농촌은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일자리·의료·주거 등 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는 농촌노인을 더 고립시켰다. <한국농정>은 지난 8월부터 오는 11월까지 매달 1회씩 총 4회에 걸쳐 농촌노인 빈곤 실태를 살펴본다. 김태형·강선일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18일 경남 합천군 가회면 장대마을의 한 마늘밭에서 안분순(80, 왼쪽)씨와 안정자(63, 가운데)씨, 이효남(58)씨가 씨마늘을 재파종하고 있다. 30년 이상 농사지어 온 이들 모두 허리와 무릎 등에 고질적인 질환을 앓고 있었다.
지난 18일 경남 합천군 가회면 장대마을의 한 마늘밭에서 안분순(80, 왼쪽)씨와 안정자(63, 가운데)씨, 이효남(58)씨가 씨마늘을 재파종하고 있다. 30년 이상 농사지어 온 이들 모두 허리와 무릎 등에 고질적인 질환을 앓고 있었다.

지난 18일 찾은 경남 합천군 가회면 장대마을의 빨간 벽돌집.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 한쪽에서 이효남(58)씨는 무를 다듬고 있었다. 합천이 고향인 이씨는 스물셋에 남편과 결혼한 뒤 36년째 농사를 짓고 있다. 아침 6시부터 해 떨어질 때까지 4,958㎡(1,500여평)의 밭에 양파와 마늘, 콩, 들깨 등 밭작물을 심고 수확하기를 반복했다. 아들과 딸은 “농사는 절대 짓지 않겠다”며 부산으로 출가했다.

“온몸 성한 곳 없어”

“‘농부병’ 국가 책임”

“나도 처녀 때는 농사라는 게 이렇게 일이 많을 줄은 몰랐죠. 아침부터 남편이랑 같이 나가서 같이 들어오니까 다툴 일도 많아요. 일만 합니까. 삼시 세끼도 꼬박꼬박 다 차려야 하고.”

자식 키우랴 집안일하랴 밭일하랴 내 몸 챙길 여유는 없었다. 이효남씨는 경남 진주고려병원에서 13년 동안 신장 혈액투석을 하고 8년 전 부산의 한 병원에서 신장을 이식받았다. 일주일에 세 번 새벽 5시에 일어나 차를 끌고 합천과 진주를 오가며 투석을 하는 동안 교통사고도 두 번이나 났다.

생계를 위해 쉴 수 없었다. 이효남씨는 “요즘 40~50대는 애가 하나 아니면 둘인데, 우리 밥그릇은 우리가 챙겨야 한다. 자식한테 의지할 순 없다”고 말했다. 밭작물 농사 특성상 쪼그려 앉아 오랜 시간 일하다 보니 무릎과 허리가 성할 날이 없다. 3년 전에는 왼쪽 무릎을 수술했다.

이씨는 “밭일을 30년 이상 하다 보니까 무릎이 한 번에 확 망가지는 게 아니라 서서히 안 좋아졌다”며 “무릎 수술을 하면서 농업인안전공제보험 혜택을 받으려 했는데, 이것저것 조사만 하고 혜택은 없었다. 우리끼리는 혜택받으려면 경운기에 확 치이던가 해야 한다고 말한다”고 했다.

오순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정책위원장은 지난 20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근골격계 질환과 같은 ‘농부병’은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오순이 정책위원장은 “농사일을 하면 근골격계 질환을 가장 많이 앓지만, 일반 건강검진을 할 때는 이런 질환들을 검진하지 않아 의료보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여성농민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사업이 올해 처음으로 시범사업에 들어갔다”며 “앞으로는 특수건강검진사업을 모든 여성농민들에게 시행해 이후에는 이런 질환에 대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사업은 여성농업인의 농작업 관련 질환을 예방하기 위한 검진 비용을 지원하는 사업으로, 근골격계를 비롯해 총 5개 영역 10개 항목에 대해 검진을 진행한다. 올해는 11개 시·군에 거주하는 여성농업인 9,000명을 대상으로 처음 시행되고 있다.

조선대학교 산학협력단은 2021년 7월 발표한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 추진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농업은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정하고 있는 3대 위험산업으로 다양한 유해인자에 노출되고 질병과 사고발생률도 높지만 산업안전보건법에 적용을 받지 않고, 적정한 안전보건관리체계도 제도적으로 구축돼 있지 않다”며 “농업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종사자들을 직업적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은 중대한 과제이며, 이를 위해 농업에서도 산업안전보건법에 준하는 건강검진 및 이와 연계된 산업보건체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열악한 의료·교통 환경

병원 다녀오면 한나절

합천군 삼가면에서 밭작물을 재배하는 안정자(63)씨는 3개월에 한 번 진주시 소재 병원에서 산부인과 진료를 받아왔다. 합천군에서는 산부인과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삼성합천병원이 보건복지부의 분만취약지 외래 산부인과 지원사업에 지정되면서 지난해 1월부터 산부인과 진료를 시작하고 있지만, 안정자씨는 여러 이유로 기존에 다니던 진주시 소재 산부인과를 다니고 있다.

문제는 진주까지 가는 교통편이 열악하다는 점이다. 안씨의 집에서 가장 가까운 삼가면 소재 삼가정류소에서 진주터미널까지 운행하는 버스는 오전 8시 50분에 한 대뿐이다. 이 버스를 타지 못하면 삼가정류소에서 버스를 타고 합천터미널로 이동한 뒤 진주행 버스를 타야 한다. 진주터미널에서 병원까지는 주로 택시를 이용한다. 버스 배차 간격이 길어 병원 진료 시간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진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땐 더 고역이다. 진주에서 삼가면으로 운행하는 버스는 오전 7시와 오전 10시 50분, 오후 2시 40분 세 대였는데, 지난 9월 19일부로 오전 7시 버스만 운행하고 있다. 사실상 병원 진료를 마치고 집에 갈 수 있는 직행버스가 없는 셈이다.

이 때문에 안씨는 진주에서 진료를 마치면 택시를 타고 진주터미널로 이동한 뒤 합천터미널로, 다시 삼가면 삼가정류소로 버스를 갈아타야 하는 불편을 겪고 있다. 병원 진료 한 번 보는데 하루가 다 지나가는 것이다.

합천군 관계자는 “버스 운영을 담당하는 업체에서 승무원 부족 등 경영상의 문제로 운행 횟수를 줄였다”며 “많은 군민이 불편을 겪고 있고 민원도 많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어 “합천군도 경남도청과도 얘기를 하고 업체와도 얘기를 하면서 대책을 수립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합천군청 누리집 ‘군민의 소리’에는 버스 운행 축소로 인한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3월 발행한 ‘2021년 농어업인 등에 대한 복지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농촌 주민 3,973명을 대상으로 의료기관 이동 시 주로 이용하는 교통수단을 조사했더니 면지역, 농·어가, 70대 이상 연령층, 여성층, 교통수단 미보유 층에서 ‘대중교통’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열악한 농촌 의료 인프라에 더해 농촌노인의 중요한 이동수단인 대중교통마저 운행 횟수가 줄고 있어 우려되는 상황이다.

올해 일흔일곱의 한 여성농민이 손수레에 메주콩 대를 가득 실은 채 지난 18일 경남 합천군 가회면의 한 지방도로를 건너고 있다. 여성농민은 “자식이 (농사짓는 걸)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올해 일흔일곱의 한 여성농민이 손수레에 메주콩 대를 가득 실은 채 지난 18일 경남 합천군 가회면의 한 지방도로를 건너고 있다. 여성농민은 “자식이 (농사짓는 걸) 알면 당장 그만두라고 할 것”이라며 말을 아꼈다.

생산비 폭등·인력 부족

“병원 갈 시간도 없어”

전남 무안군에서 자식들과 함께 농사짓는 고송자씨는 “올해 양배추를 재배해 광주 농협 공판장에 팔았지만 양배추 세 포기당(한 망당) 가격은 3,000~4,000원 수준이었다. 그래도 한 망당 1만원은 나와야 생활비라도 나오는데, 올해 같은 가격 수준이면 인건비 충당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생산비 측면의 애로사항도 많다. 고구마 재배 시 한 마지기당 최소 3명의 인력이 필요한데, 1인당 일당이 15만원이므로 한 마지기당 45만원, 여기에 식비까지 더하면 50만~60만원의 비용이 인건비로 들어간다는 게 고송자씨의 설명이다. 인건비·생산비 등을 제외하고 고구마밭 한 마지기에서 거두는 소득은 120만원. 300만원은 나와야 생산비 보전이 가능하건만, 이 소득으론 생활비 충당도 버겁다.

그나마 계속 일할 사람을 구하면 다행이다. 그러나 외국인노동자는 구하기도 어렵고, 구한 사람 중 일부는 조금만 어려운 작업을 맡겨도 힘들다고 그만두거나 더 높은 인건비를 요구했다. 상황이 이러니 70대 중반의 고씨는 고된 농사로 온몸이 불편해도 병원 갈 시간도 없이 직접 농사를 챙긴다. 고씨는 “나보다 연세 많은 70대 후반~80대 어르신들도 다 이렇게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프면 ‘진통제’ … 끼니는 ‘대충’

“아프면 별수 있나. 그냥 진통제 사가꼬 먹어 재낀다. 안 먹으면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파서 움직이지도 몬한다.”

올해 팔순을 맞은 안분순씨는 남편을 먼저 보내고 25년째 혼자 살고 있다. 열입곱 나이에 고향 합천에서 남편과 결혼했다. 아들 둘은 도시에서 일을 하고 딸은 인근 마을에서 소를 키우고 있다. 어려운 형편 속에도 농사지어 큰아들을 대학까지 보냈다. 둘째 아들은 고등학교, 막내딸은 중학교까지 졸업시켰다. 안씨는 “살림도 없으니까 그때는 공부를 많이 시킬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양쪽 무릎을 모두 수술한 안분순씨는 아플 때 어떻게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진통제를 먹고 버티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매주 화요일 도우미가 방문하지만, 혈압을 체크하는 정도다. 부실한 식사도 문제다. 이날도 인터뷰를 마친 오후 3시가 되도록 감 홍시 하나가 끼니의 전부였다. 안씨는 “반찬 하나 꺼내면 많은 거지. 평소엔 그냥 물에 밥 말아 먹어. 몸이 아파서 반찬도 못 해”라고 말했다.

이순미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지난 20일 본지와 전화 통화에서 “농촌에는 농촌노인들에게 필요한 필수 시설과 서비스가 절대적으로 결핍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책과 제도는 마련돼 있지만, 도시를 기준으로 설계돼 있다 보니 농촌에 인구가 부족하고 운영할 주체가 없는 문제를 정책에 고려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제도나 정책이 농촌 인지적으로 실행되고 운영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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