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노인복지 기획] ① 유모차 끌고 일자리 찾으러 … ‘복지 사각지대’ 놓인 농촌노인

  • 입력 2022.08.07 18:00
  • 기자명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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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는 인구감소로 지역소멸이 우려되는 전국 89개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을 마련해 올해부터 10년간 매년 1조원씩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지방소멸’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그동안 청년이 떠난 지방, 그 가운데서도 노인이 집중된 농촌은 인구가 적다는 이유로 일자리·의료·주거 등 복지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3년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는 농촌노인을 더 고립시켰다. <한국농정>은 이달부터 11월까지 매달 1회씩 총 4회에 걸쳐 농촌노인 빈곤 실태를 살펴본다. 김태형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코로나19가 확산일로에 있던 2020년 4월 전남 진도군 군내면 나리에서 마스크를 쓴 주민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관한 경로당 앞에 모여 있다.
코로나19가 확산일로에 있던 2020년 4월 전남 진도군 군내면 나리에서 마스크를 쓴 주민들이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임시휴관한 경로당 앞에 모여 있다.

 

전체 국토의 12%를 차지하는 수도권에 인구·경제·사회 관련 분야 절반 이상이 몰려있다. 지난 2일 산업연구원(원장 주현)이 발표한 ‘수도권·비수도권 간 발전 격차와 정책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체 인구의 50.3%, 청년층의 55%, 취업자의 50.5%가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다. 또 사업체 수의 47%(2019년 기준)가 수도권에 분포하고 있으며, 매출액 기준 1,000대 기업의 경우 86.7%가 수도권에 위치해 있어 대기업과 중견기업 대부분이 수도권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역대 정부의 정책적 노력에도 지역 간 발전 격차가 줄어들지 않은 배경을 두고 “그간의 우리나라 균형발전정책이 지역의 핵심도시 또는 거점도시 중심의 산업발전을 통해 낙후지역, 농촌지역의 개선으로 이어지는 낙수효과에 집중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청년이 떠난 농촌은 사실상 노인이 지탱하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년 인구주택총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기준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면지역이 33.0%로 가장 높고, 읍지역 18.1%, 동지역 15.4%로 나타났다. 국제연합(UN) 기준으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다. 농촌은 초고령사회 기준을 훌쩍 뛰어넘은 지 오래다.

농가의 경우 더욱 심각하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2021년 농림어업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해 12월 1일 기준 농가의 65세 이상 고령 인구 비율은 46.8%에 달했다. 이는 1986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로, 우리나라 총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차지하는 비율 16.8%(2021년 기준)에 비해 3배 높은 수준이다.

“가난·질병·고독 시달려”

우리나라 노인 빈곤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간한 ‘한국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이행보고서 2022’를 보면 우리나라 상대적 빈곤율은 2020년 기준 18~65세 10.6%, 66세 이상 40.4%이다. 18~65세 빈곤율 대비 66세 이상 빈곤율로 계산한 상대적 빈곤위험도(2018년 기준)의 경우 우리나라가 367.8%로 OECD 주요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OECD 국가의 상대적 빈곤위험도는 네덜란드(32.5%), 덴마크(40%), 노르웨이(44.8%)가 낮은 편에 속하며, 스위스(250%), 호주(246.9%), 일본(153.8%)이 높았다. 보고서는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은 특정 인구집단이 노후 준비를 위한 사회시스템에서 배제되었음을 보여 준다”고 했다.

노인이 집중된 농촌은 오히려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로 전락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원장 김홍상, 농경연)은 전국의 65세 이상 농촌노인 53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농촌노인의 사회보장 실태와 정책 개선방안’ 보고서에서 “농촌은 도시보다 20년 정도 앞서 노령화가 진행됐다. 이미 초고령화한 농촌에서 살고 있는 노인들은 가난과 질병과 고독에 시달리거나 사회보장제도의 혜택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 등 사회보장 부문별 문제점을 지적했다.

일당과 맞바꾼 건강

농촌에서 고령 여성은 일자리 선택의 폭이 넓지 않다. 대다수 남의 밭일을 돕고 품삯을 받는다. 기계화율이 낮은 밭농사의 경우 오랜 시간 불편한 자세로 같은 동작을 반복하다 보니 이른바 ‘골병’이 든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6월 발표한 ‘2020년 농업인 업무상 질병 조사 결과’를 보면 성별 업무상 질병 유병률은 여성 5.8%, 남성 4.3%로 여성의 유병률이 높았으며, 연령별로는 50세 미만 1.4%, 50대 2.7%, 60대 4.9%, 70세 이상 7.1%로 연령이 높아질수록 질병 유병률도 높아졌다.

질병 종류별 유병률은 근골격계 질환이 4.4%로 가장 높았으며, 여성 5.2%, 남성 3.7%로 남성보다 여성 농민의 근골격계 질환 유병률이 더 높게 나타났다. 업무상 질병 분포는 근골격계 질환이 84.6%로 가장 많았고, 순환기계 질환 3.0%, 피부 질환 2.9%, 신경계 질환 2.1% 순이었다. 근골격계 질환은 허리 47.3%, 무릎 27.3%, 어깨 6.9% 순으로 나타났다. 일당 받아 병원 가는 생활이 반복되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최근 농촌에는 농사일 대신 ‘노인 일자리 사업’을 찾는 노인이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04년 도입 당시 3만5,000개로 시작한 일자리 개수는 2021년 기준 83만6,000개로 늘었다. 2018년 2월 문재인정부는 2022년까지 노인일자리 80만개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경쟁이 치열하다. 노인 일자리 사업 담당자 A씨는 “누가 봐도 이제는 수혜를 받아야 하는 사람인데, 그렇게 되면 돈을 못 버니까 유모차를 끌고 다니면서도 참여자가 되겠다고 신청하는 사람도 많다”며 “건강도 안 좋고 수요처에서 원하지도 않지만, 돈이 필요하니까 자꾸 몰리는 구조다”라고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문 닫은 마을회관, 고립된 농촌노인

코로나19 확산은 마을회관 등 공동시설 폐쇄로 이어졌다. 거리두기 조치가 완화되면서 다시 문을 연 곳도 있지만 최근 코로나19 재확산으로 전망이 밝지는 않다. 농번기에 마을회관 등에 모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지자체가 지원하던 공동급식 지원사업도 코로나19 확산으로 함께 모여 식사하는 것이 어려워지자 도시락 배달로 대체되기도 했다. 한채형 충청남도 농림축산국 농업정책과 주무관은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대면 공동급식이 이뤄지지 않아 공동급식 도우미 지원사업을 할 수 없었다”며 “지난해 9월부터는 업체를 선정해 단체도시락을 지원하는 방식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2017년 6월 전남 곡성군 겸면 괴정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마을공동급식은 마을 내 친목도모와 독거노인 등을 보살피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오랜 기간 중단됐다.
2017년 6월 전남 곡성군 겸면 괴정마을회관에서 주민들이 함께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마을공동급식은 마을 내 친목도모와 독거노인 등을 보살피는 데 주요한 역할을 해왔으나 코로나19가 확산되며 오랜 기간 중단됐다.

 

그동안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한 공동급식 지원사업은 마을 내 친목과 공동체성을 향상시키는 등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박경철 충남연구원 책임연구원이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2018년 충남지역 농촌마을 주민 320명을 대상으로 마을 공동급식 지원사업에 관한 의견을 조사한 결과, ‘마을 주민 간 공동체성 회복(31.9%)’, ‘혼자 먹는 외로움 해소(26.3%)’, ‘가사부담 경감(21.9%)’ 순으로 답했다.

서봉석 가톨릭농민회 사무총장은 “농촌에서는 마을회관에 모여 함께 밥을 먹는 것이 생존여부를 확인하는 역할을 한다”며 “코로나19로 이웃 간 왕래가 끊기다 보니 고독사하고도 며칠 만에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농촌노인 빈곤은 구조적 문제

전문가들은 농촌노인 빈곤은 단순한 개인 현상을 넘어 구조적 문제라고 말한다. 시민건강연구소는 지난해 10월 ‘농촌의 가난한 노인, 더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라는 제목의 논평에서 “노인 빈곤을 소득 결핍, 가난, 박탈, 사회적 배제, 다차원적 빈곤 등 무엇이라고 부르든, 핵심은 가난한 노인의 삶을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소득을 넘어 안전한 주거와 음식, 충분한 의료 이용, 건강, 그리고 사회적 관계 등 일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 조건을 망라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농촌노인의 빈곤은 지금까지 ‘발굴’이나 ‘관리’의 대상이 아니었던 탓에 흔한 실태조사조차 충분하지 않다”며 “무슨 해결책을 내기에 앞서 관심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이 기사는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취재·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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