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힘들어지는 친환경농사 … ‘기후정의’가 절실하다

  • 입력 2022.10.09 18:00
  • 기자명 강선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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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지난달 24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9.24 기후정의행진 중 한살림 생산자들이 갖고 온 ‘기후폭탄 맞은 농산물’들. 기후위기 속에서 생육부진, 낙과 등의 피해를 입은 이 작물들은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도시민들에게 ‘기후위기는 농업위기’임을 각인시켰다.
지난달 24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9.24 기후정의행진 중 한살림 생산자들이 갖고 온 ‘기후폭탄 맞은 농산물’들. 기후위기 속에서 생육부진, 낙과 등의 피해를 입은 이 작물들은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한 도시민들에게 ‘기후위기는 농업위기’임을 각인시켰다.

지난달 24일, 서울 도심에서 진행된 9.24 기후정의행진 중 한살림생산자연합회(회장 박용준) 농민들은 또 다른 ‘기후재난 피해자’들을 데려왔다. 농민들이 끌고 온 수레 위 상자에 담긴 오이·고구마·사과·대추는 가뭄과 태풍 등의 기후재난으로 생육부진 또는 낙과 등의 고통을 겪은 작물들이었다.

상자에 담긴 작물들은 상처투성이거나, 쭈글쭈글하거나, 생육부진으로 인해 충분히 잘 자라지 못한 상태였다. 작물을 담은 상자 중 하나엔 큼지막하게 ‘기후폭탄 맞은 농산물’이라고 쓰여 있었다.

‘기후폭탄’은 전국 각지 친환경농민들을 습격했다. 농민들은 가뭄·태풍·홍수, 그리고 온갖 병해충에 시달리며, 그리고 온갖 내외 정세로 인해 폭등하는 농자재 비용에 신음하며 2022년 여름농사를 지었다. 올해 여름 현장 친환경농민들은 어떻게 농사를 지었을까.

해마다 늘어나는 병해충 피해

경북 의성군 다인면에서 유기농 사과농사를 짓는 정동준 씨(경북친환경농업협회 회장)는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해충 발생빈도도, 나타나는 해충의 종류도 늘어났다고 증언했다.

정씨는 “원래 유기농 사과 재배 시 순나방·심식나방 등으로 인한 피해가 컸는데, 최근엔 이에 더해 노린재·면충·미국선녀벌레까지 가세했다”고 한 뒤 “특히 노린재로 인한 피해가 예년보다 늘어났다”고 밝혔다.

정씨는 약 2만평 농지에서 매년 80~100톤의 사과를 생산해 왔다. 지난해 노린재 피해를 입은 사과는 전체 생산량의 약 10분의 1, 즉 8~10톤 정도였는데 올해는 피해량이 늘어나 전체 생산량의 5분의 1, 그러니까 16~20톤까지 늘어났다는 게 정씨의 설명이다. 1년 만에 노린재로 인한 피해량이 2배 늘어난 셈이다.

노린재는 사과 안쪽을 파고들어 과육의 즙을 빨아먹는데, 노린재가 ‘침입’한 부위엔 갈변, 즉 커다란 멍이 발생한다. 정씨가 농장에서 갖고 온 사과 곳곳에 갈변이 잔뜩 발생한 상태였으며, 칼로 사과를 베어내니 과육 안쪽에도 갈색 멍이 가득했다. 노린재가 흡입한 부위는 소위 ‘스펀지화’가 진행됨에 따라 사과 자체의 식감도 떨어지게 된다.

정씨는 “노린재가 즙을 빨아먹어 상처가 난 사과, 또는 순나방·심식나방이 사과 속에 알을 낳아 애벌레가 과육 내에서 돌아다니는 사과에 대해 소비자들은 ‘잘못된 사과’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생산비 상승은 친환경농민도 마찬가지

정씨는 “지난해 1만5,000원이었던 500ml 님오일(친환경 과수 병해충 방제 시 사용하는 기름) 한 병이 올해는 2만원으로 오르는 등, 사과 재배 시 사용하는 농자재 가격이 전년 대비 20% 정도 상승했다”고 한 뒤 “인건비도 전년 대비 약 40% 올랐다. 특히 사과 전지작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전문성 있는 사람은 일당 20만원 정도까지 지급해야 한다. 그러나 전문성 있는 인력은 구하기 힘들고, 대부분 지역 내 고령의 어르신들을 일당 13만원에 고용하게 된다. 고령의 어르신들은 아무래도 많은 일을 하기 힘드니 작업상의 능률도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지난 6월말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에서 만난 농민 신동식 씨도 생산비 전반의 상승에 따른 고민을 토로한 바 있다. 친환경 마늘·대파 등을 재배하는 신씨는 “친환경약재 가격은 일반농사에 사용하는 농약과 비교해 대체로 3~10배 정도 비싸다. 반면 병해충 방제 측면에선 효과가 미미할 수밖에 없다”며 “대파·마늘 방제 시 사용하는 친환경약제는 500ml 한 병당 약 3만~5만원 정도로, 코로나19 전과 비교해 50% 정도 가격이 올랐다. 대파 재배 시 예년엔 약 30만~40만원 어치의 친환경약제를 방제 목적으로 사용했는데, 올해는 그 2배인 70만~80만원으로 가격이 올랐다. 약제를 좀 더 촘촘히 치려면 대파 방제에만 1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간다”고 밝혔다.

올해 대파 재배농민들은 총채벌레 등의 병해충 및 녹병·검은무늬병·노균병·잎마름병 등 온갖 새로운 병해충으로 인해 농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건비의 경우, 이천 지역에선 코로나19 이전 일당 7만원이었던 게 올해 6월 13만~14만원으로 올랐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었다.

농사 ‘패턴’이 무너져가는 시대

지난달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했던 한살림 생산자 나기창 씨(충북 청주)는 기후위기 시대 친환경농민의 가장 큰 고민으로서 “그동안 농사과정에서 유지해 온 ‘패턴’이 무너지는 게 가장 큰 고민”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예컨대 봄에 노지 상추를 심을 때, 예전엔 서리가 내려도 어느 정도 견디는 편이었는데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이젠 서리 한 번 와도 상추가 다 죽는 상황이다. 노지에서 토종고추를 재배하면서도 예년보다 비가 많이 오니까 탄저병 예방이 어려워졌다. 감자 또한 원래 수확기엔 비가 안 왔는데 이젠 수확기에도 집중호우가 쏟아져 감자를 캘 수도, 안 캘 수도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는 등, 그동안 농민들이 ‘아, 이 시기엔 날씨가 이러하니 이렇게 대응하면 되겠다’며 적응해 왔던 ‘패턴’이 기후위기 속에서 무너져가고 있다. 이에 농민들은 ‘앞으론 어떻게 농사지어야 하나’라며 정신적으로 큰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이 땅의 농민들이 겪는 불안감을 해소하고 계속 농사지을 수 있게 하려면, 농업분야에서의 ‘기후정의 실현’이 급선무라는 게 농민들의 입장이다. 그래서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진보당·국민입법센터 등이 준비 중인「농민·농업·농촌정책기본법(농민기본법)」에서도 ‘기후정의 실현’이란 표현을 담으며 기후위기 시대를 살아가는 농민을 위한 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살림연합(상임대표 조완석)은 지난달 24일 기후정의행진에 참가하며 내놓은 입장문에서 ‘밥상·농업 분야에서의 기후정의 실현’을 촉구하며 친환경농업 육성과 관련해 “농식품부는 2001년부터 5년마다 ‘친환경농업 육성계획’을 통해 친환경농업 확대 목표를 설정해 왔으나 달성한 적이 한 번도 없다. 오히려 2010년 대비 2020년 친환경농산물 재배면적은 줄어든 상황”이라고 지적한 뒤 “농가소득 안정화를 위해 친환경직불제를 확대 시행하고, 안정적 소비 확대를 위한 계약재배와 공공급식 지원 확대는 물론, 공공·민간 차원의 식생활교육을 지원하는 등 정부의 법정 계획과 목표를 성실히 이행하는 것이 기후위기에 대한 정의로운 정책 활동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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