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가공의 권리’ 없인 6차산업도 없다

  • 입력 2022.10.09 18:00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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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전북 익산시 함열읍 익산시농업기술센터 부지 내에 위치한 농산물종합가공센터에서 여성농민 이정수(70)씨가 이날 오전에 추출한 100% 국내산 참기름을 유리병에 담고 있다.한승호 기자
지난 5일 전북 익산시 함열읍 익산시농업기술센터 부지 내에 위치한 농산물종합가공센터에서 여성농민 이정수(70)씨가 이날 오전에 추출한 100% 국내산 참기름을 유리병에 담고 있다.한승호 기자

 

‘잘 키운 농산물로’

‘제품을 잘 만들고’

‘체험문화까지 잘 즐기는’

‘참 잘 하는 6차산업’

정부의 6차산업 소개 누리집(www.6차산업.com)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홍보문구이자 관련 지원사업의 핵심기조다. 농민이 농사를 지어(1차) 스스로 가공을 하고(2차) 또 직접 판매와 영업까지(3차) 병행해 가치의 곱으로써 더 많은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일련의 과정을 ‘6차산업’, 공식적으로는 ‘농촌융복합산업’으로 명명해 활성화 지원·육성을 시작한 지 벌써 8년이 흘렀다.

우리 농산물을 주원료로 활용해 만든 질 좋은 가공식품을 발굴하고, 양지에서 판매할 기회를 확장한다는 점에 있어 방향성은 매우 좋았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대대적 지원사업’들처럼 ‘선별’과 ‘규모화’를 근간으로 하는 농정이라는 점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다수 농민이 바라는 상, 즉 한정적인 자원과 자본, 그리고 자가노동의 틀 안에서 스스로 가공품을 생산해 부가가치를 더하고 자력갱생을 추구하는 형태의 ‘전통적 농가공’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활동을 지원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업이 지향하는 주된 지원대상은 생산뿐만 아니라 가공과 체험·관광 등에서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있는 경영체나 농업법인, 마을 등이다. 최소한 관련 활동으로 연평균 농가소득(약 4,300만원)은 이미 내고 있어야 서류라도 준비해 볼 수 있다. 6차산업 인증을 받은 우리 농촌의 6차산업 사업자들은 전국에 걸쳐 2,000개소에 불과하다.

열심히 영농에 종사하고, 스스로 노력해 가공 경험을 쌓아 자격을 갖춘 뒤 제도권 6차산업에 뛰어들면 되는 거 아니냐고, 또 그게 올바른 방향이 맞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문제는 그 징검다리의 첫째 돌이 우리나라에선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냉장·냉동 보관이 필요 없는 경우, 원물의 형태가 일부 보존되는 경우, 오랜 경험이나 공정 특성에 따라 위해성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인정받는 경우 등 전 세계적으로, 심지어는 식품안전관리인증기준(HACCP)의 본고장인 미국에서조차 별다른 인증을 요구하지 않는 농가공 식품도 우리나라에선 같은 형태의 판매를 시도하는 순간 대부분 ‘불량식품’이 된다. 농가공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농산물가공센터를 운영해 농민들을 지원하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고는 있으나 소규모 농가공을 완전히 보장한다고 보기엔 접근성도 규모도 여전히 부족하다.

이 때문에 충분히 자가가공이 가능한 곡식이나 비상품 원예작물을 싼값에 넘기거나, 어쩔 수 없이 생산해 음지에서만 판매하는 행태가 수십 년 동안 반복돼왔다. 코로나19 특수로 인한 ‘집밥’ 수요 증가로 인해 지난해 국내 식품산업 생산액은 전년 대비 10%나 성장했지만, 식품자본에 의한 생산과 수입산 원물이 식품가공을 사실상 점령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중·소농과는 상관없는 이야기였다.

‘잘 키운 농산물’이라면 농민 누구나 가공할 수 있어야 새 시대에 맞는 진정한 6차산업도 펼쳐지지 않을까. ‘펜데믹’을 포함해 세계적 규모의 위기가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난 지난 2020년 이래, 지속가능한 농업을 담보해야 한다며 ‘푸드플랜’, ‘로컬푸드’ 등의 개념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동시에 스스로 부엌에서 요리하길 꺼리고 가공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경향을 고려하면, ‘농가부엌’의 제도권 편입이 막혀 있는 이상 선순환 체계의 동력은 점점 떨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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