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농민으로 산다는 건] 거창푸드 털썩, 휘청이는 소농

  • 입력 2022.09.25 18:00
  • 기자명 박효정(경남 거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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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정(경남 거창)
박효정(경남 거창)

소농이 수확한 농작물을 내고 싶을 때 그 양이 어떻든 원하는 가격으로 쉽게 판매대에 올려 소비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거창푸드종합센터(거창푸드)이다. 나 역시 소량의 다양한 약초를 말려서 차로 끓여 마실 수 있도록 포장을 해서 내고 있다. 또한, 거창푸드는 농민이 단순히 생산자에서 나아가 식생활 수업, 토종씨앗 워크숍 등을 통해 지역 먹거리의 가치를 학생과 소비자에게 전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은 얼굴 아는 농부의 먹거리를 구해 밥상을 차리니 지역 공동체 의식이 절로 샘솟는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고 싶은 점은 푸드센터에 여성농민의 입장을 누구보다 잘 아는, 거창여성농민회 회원이기도 한 최외순씨가 상임이사로 지역 먹거리 활성화에 앞장서 왔다는 것이다. 그녀는 직원들과 함께 다품종 소량 생산하는 고령 농민들의 물건을 수매하러 곳곳을 다녔고, 토종 벼농사를 지어 그 가치를 알려왔다. 토종 농산물을 확대하기 위해 토종씨앗 생산자를 조직했고, 솜씨 좋은 여성농민들이 즉석 가공한 제품을 판매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 거창푸드가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넷째를 임신하고도 막달까지 일하였으며, 출산하고 얼마 안 되어 다시 복직할 정도의 열정은 슈퍼우먼 저리 가라였다. 아마도 여성농민의 짐을 떠안고 있어서 더욱 혼신의 힘을 쏟는 느낌이었다.

이런 이들의 덕으로 사실 거창푸드는 9년 전 1억원 매출에서 시작해, 올해 추석을 기점으로 20억원의 매출을 일으켜 착실하게 지역 경제 성공 사례를 만들었다. 더불어 단지 경제적 효율성으로만 따질 수 없는 가치를 중시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과 중·소·고령농의 희망이라 할 만큼 안정적인 판로 확보, 탄소중립을 실현하는 싱싱하고 건강한 먹거리 매개 등 지역 선순환 과정으로서 ‘농’의 핵심 가치를 지켜왔다. 그 공로로 전국 ‘2021 로컬푸드 지수 평가’에서 경상도에서 유일하게 농식품부 장관상을 받을 정도로 충분한 성과를 자랑할 만한데도 불구하고, 이제는 지역 군의회의 5,000만원 추경 예산안이 통과하지 못하여 주저앉게 생겼다.

추석 연휴가 지나자마자 거창푸드 임시 대의원 총회가 긴급하게 열렸다. 안건은 거창푸드 위·수탁사업을 9월 혹은 12월 중 언제 중단하냐는 것이었다. 군의회에서 올 초에 삭감된 예산을 추경해주기로 했으나 일부만 허용되었고, 그 금액으로는 거창푸드가 적자를 모면할 수 없다고 하였다. 총회에 참여한 한 대의원은 “우리 손으로 공든 탑을 무너뜨리는 건 아니지 않냐?”는 말을 하였다. 기권을 행사하고 싶었으나 당장 9월에 없어지는 것보다 어떻게든 유지하는 방향을 찾고자 다수의 대의원은 12월까지 가자고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실로 이와 비슷하게 연초 설 명절이 지나자마자 근거 없이 군의회에서 예산이 삭감된 바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조합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거창군과 군의회에 예산 삭감 조치 철회 및 로컬푸드 운영구조 안정화를 위한 지원책 마련 등을 촉구하는 탄원서를 제출한 바 있으나, 제대로 된 답변과 후속 조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거창푸드에 하반기 예산으로 추경해줄 테니 일을 크게 만들지 말라고 하며, 두서없이 사안이 무마된 것이었다.

행정에서는 군의원들도 로컬푸드의 성과는 인정한다고 하였다. 그럼에도 납득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결정에 혀를 내둘렀다. 겨우 12월까지 버티더라도 내년에 또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었고, 역시 부정적인 분위기였다. 상임이사는 적자에 대비하여 예산을 적립할 수도 없는 위·수탁사업 자체가 ‘고삐 잡힌 소’ 꼴이라고 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고도 추석 명절을 앞두고 잠자는 시간을 3시간 전후로 일해왔다는 실무자의 눈물, 당장 그들의 목숨줄과도 같은 일자리가 걸려 있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참석하지 못한 수많은 생산자의 판로는 어떻게 될 것인지. 순회수집을 다니며 고령농의 판로가 되어준 로컬푸드, 토종씨앗을 나누며 토종작물 생산자를 발굴했던 실무진들 대신 누가 그 역할을 해줄 수 있겠는가. 마치 잘 차린 밥상이 엎어지는 집안 꼴처럼 볼썽사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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