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부실검증, 졸속추진 … ‘산단절차간소화특례법’ 폐지해야”

공익법률센터 농본,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 집중조명

  • 입력 2022.09.21 17:54
  • 기자명 한우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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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21일 충북 NGO센터에서 열린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 토론회에서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정책팀장이 농본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유튜브 갈무리
21일 충북 NGO센터에서 열린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 토론회에서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정책팀장이 농본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공익법률센터 농본 유튜브 갈무리

 

농촌 마을공동체 보존을 위한 법률자문 활동을 통해 이름을 알리고 있는 공익법률센터 농본(대표 하승수, 농본)이 지난 21일 충북NGO센터에서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농본은 충북 진천군이 이월면 사당리 일원에 추진하고 있는 ‘진천 테크노폴리스’ 산업단지 사례를 통해 산업단지로 인한 농촌지역 피해실태를 들여다보고, 그 방대한 조사결과를 이 자리에서 보고했다.

농본은 최근 문제가 되는 민간개발 일반산업단지들이 지난 2008년 「산업단지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특례법(산단절차간소화법)」이 통과된 후 급증한 만큼 이 문제에서 특례법을 중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봤다. 산단절차간소화법은 종래 2년에서 길게는 4년 정도 걸리던 산업단지 인·허가기간을 짧게는 6개월까지 단축했다. 이에 따라 전략환경영향평가(사전환경성 검토)·환경영향평가를 모두 치러야 했던 면적 15만㎡ 이상의 대규모 산업단지도 사전환경성 검토 없이 환경영향평가만을 거쳐 승인받을 수 있게 됐다.

 

“투자의향서·심의위 등 절차요소들의 부실 심각”

 

농본은 간소화된 절차 탓에 생긴 폐해들 가운데 첫 번째로 투자의향서의 부실함을 가리켰다. 투자의향서는 산업단지 조성의 가장 첫 단계에서 사업시행자가 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 하나로, 대부분이 투자의향서 방식을 채택한다. 투자의향서에 대한 사전타당성 조사만 거치면 산업단지 계획안이 수립되는데, 문제는 사업 초기에 완성도 높은 투자의향서가 제출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농본은 관련 기관 실무자와 심의위원들이 이미 투자의향서들의 부실함을 지적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단지별로 많게는 10차례 이상, 적어도 3차례 기존 계획이 변경되는 사례 등도 이를 방증하고 있다며 의구심에 힘을 실었다.

둘째로, 기존의 여러 가지 요소를 각각 맡아 판별하던 심의위를 하나로 통합한 ‘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 또한 허술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충청남도의 경우 2008년~2015년 상정된 92건의 계획 가운데 부결은 단 1건이었으며, 원안대로 의결된 계획 역시 2건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조건부 의결 혹은 재심의를 거쳐 승인되는데, 이는 완전하지 않은 계획이 통과되고 있음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현재의 절차대로는 주민 의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크다고 봤다. 산업단지는 추진 주체가 민간기업일지라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에 의해 토지강제수용을 허용하고 있는 만큼 주민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공람 및 설명회는 반드시 성실하게 진행되어야 할 과정인데, 특례법은 지구지정, 개발계획 및 영향평가에 대한 주민공람을 동시에 수행토록 하면서 그 횟수를 3회에서 1회로 축소한 점을 큰 오점으로 지목했다.

또 승인신청서 접수 후 13일 이내에 주민설명회를 개최해야 한다는 조항 역시 실질적으로 주민 의견을 수렴할 생각이 없는 것과 같다고 지적했다. 단 1회의 통합설명회가 주민・토지소유자가 사업시행자를 만나는 유일한 공식적인 자리인데, 주민들의 반발로 무산되거나 할 경우에도 사업자 측은 공람공고 등으로 이를 쉽게 피할 수 있는 등 지나치게 사업자에 유리한 면책기준 탓에 주민은 사업주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기회도 충분히 얻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산단의 효과?

 

농본은 특례법 시행 이후 들어선 산업단지들의 특성에서 문제점을 찾기도 했다. 농본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지정된 산업단지의 38.3%가 충북과 충남 소재인데, 그 중 82.9%가 읍·면 지역에 들어섰다. 2개 이상의 산업단지가 들어선 지역만 따지면 그 비중은 91.1%로 늘어난다. 농본은 이 같은 현상이 단지 개발 및 단지 내 산업 활동으로 인한 수익은 기업과 자본이 가져가면서 발생하는 피해는 농촌과 농민이 지는 구조로 산업단지가 입지하고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특례법 시행 이후 늘어난 미분양률을 들어 산업단지가 과다공급되고 있음도 지적했다. 지어놓고도 활용하지 못하는 면적이 이미 상당한 규모에 달하는 데도 신규 산업단지를 계속 짓고 있다는 말이다. 미분양면적은 지속적으로 누적돼 2018년에는 조성 완료 일반산업단지의 미분양률이 62.6%에 이르기도 했다. 농본은 신규 개발이 아니라 이미 조성한 단지의 활용도를 높여야 하며, 입지 조건이 좋아 분양실적이 좋은 곳이라 하더라도 누적된 미분양 면적이 이미 여의도 2배 크기에 달하므로 추가 개발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산업단지의 인구 증가 효과 또한 미미하다고 언급했다. 농본이 2000년부터 2021년까지 경기, 충북, 충남에서 3개 이상의 산단이 입지한 읍면동별 인구 추이를 확인한 결과, 지난 2012년 대비 32개 지역에서 인구가 감소했다. 특히 해당 지역의 지자체 인구증가율과의 차이가 눈에 띄는데, 지난 10년 동안 충북은 산업단지가 입지한 지역 16개 중 단 3곳의 인구증가율이 해당 지역 지자체 인구증가율보다 높았을 뿐, 81% 지역에서 더 낮은 인구증가율을 보였다.

핵심 사례로 든 진천군 역시 마찬가지로, 산업단지로 인해 진천군의 인구는 증가했지만 14개나 산업단지를 품은 읍면 소재지의 인구는 덕산읍을 제외하고 대부분 감소했다. 농본은 인구정체기에 도달한 우리나라에서 어딘가의 인구가 증가한다는 것은 결국 순증이 아닌 또 다른 지역의 인구감소를 뜻하므로, 어느 한 지역을 살리고 어느 한 지역을 죽이는 것을 지역발전이라고 이야기할 수 없다고 봤다.

농본은 다수의 이익을 이유로 이러한 의문에 ‘그렇다’라고 긍정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진천군 내지는 이월면 주민들 ‘평균’의 입장일 뿐, 농지가 사라지고, 마을이 사라지는 관지미 마을 사람들에게는 다수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산단절차간소화법, 이제는 폐지해야”


농본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크게 세 가지 주장을 전개했다. 첫째는 시행사·시공사 등 민간 자본의 이익을 위해 특례법을 등에 업고 산업단지가 무분별하게 추진되는 상황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주민들의 이익을 위해 쓰여야 할 지방자치단체의 행정력이 민간기업의 해결사 역할을 위해 쓰이는 행태 역시 중단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은 산업단지 추진으로 인해 마을공동체 파괴, 강제수용, 환경·정신적 피해 등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아픔을 겪는 농촌을 위해 사회적 각성이 필요하다는 내용이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제도개선의 방향 또한 세웠다. 농본은 우선 지난 2008년 제정된 산단절차간소화법은 이제 폐지돼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일원화된 심의기구(산업단지계획심의위원회)는 통과의례 수준의 형식적 절차로 전락했으며 환경영향평가의 실효성 역시 약해지는 등, 검증 절차가 부실해진 특례법 이후 대량으로 추진된 산업단지들이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는 이유에서다.

또 개발사업 과정에서 정보의 접근성과 투명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농본은 일방적인 설명회가 아닌 제대로 된 공청회가 이뤄져야 하며 주민들과 협의 절차를 밟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개발계획 수립 이전에 사업이 추진되는 마을에 이를 공식적으로 밝히고, 마을 단위에서 제출한 주민의 의견이 존중돼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방법으로는 특례법 폐지 후 「산업입지 및 개발에 관한 법률」의 개정에 이 같은 내용을 담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농지, 특히 농업진흥지역에 속하는 농지가 대량으로 전용되는 개발사업은 원칙적으로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의 농지는 지난 1975년 223만ha에서 2020년 156만ha까지 줄어 이미 최소한의 곡물자급률, 식량자급률을 보장하기에도 모자란 상태라는 현실을 근거로 제시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곡물자급률 목표 32%를 달성하기에도 농지가 19만ha 이상 부족한 상황에서, 농본은 농업진흥지역에 속하는 농지를 대량으로 훼손하는 대규모 개발사업은 전면 중단돼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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