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정춘추]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 아스팔트 농사

  • 입력 2022.08.14 18:00
  • 기자명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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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이수미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제21대 국회는 후반기를 맞아 새롭게 상임위원회 구성을 마무리했다. 후반기 원 구성을 마무리한 국회는 위원회별로 첫 업무현황 보고를 받았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당면한 현안사항으로 농식품 물가관리와 쌀 시장 격리 등이 중점 보고됐다. 하락하는 쌀값에 대한 질의와 대책마련을 촉구하는 위원들의 발언이 보도됐지만 폭락하는 쌀값문제를 바라보는 정부와 농민들의 시각 차이를 느끼게 해주기도 했다.

국회에는 17개의 상임위원회가 있는데 그중에서도 농해수위는 여야가 따로 없는 위원회라고 한다. 그만큼 농업에 대한 마음이 여야가 다르지 않다는 말로, 집권여당이든 야당이든 한결 같이 농업·농촌을 아끼는 같은 마음으로 일한다는 말이다. 300명의 국회의원 중에 최소한 19명은 농민을 위해 일한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이들이 발 벗고 나서 쌀값 하락의 문제도, 농자재 값 상승의 문제와 일손 부족의 문제도 해결해주고 농민은 농사에만 전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그래서 농민은 아스팔트 위에서 또 다른 농사를 짓는다.

농민이 직접 아스팔트 위에 서지 않으면 그 누구도 농민들의 고통을 알아주지 않고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농업이 처해 있는 현실이다. 지난 7월 12일은 아스팔트 위에 계란을 깨뜨려 보면 계란이 익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무더운 날이었다. 숨이 턱턱 막히는 이날 농민들은 새벽밥을 먹고 논, 밭이 아닌 아스팔트 농사를 위해 서울로 향했다. 서울의 고층빌딩 숲 사이 거리에 깃발을 들고 밀짚모자를 눌러 쓴 농민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외치는 구호가 도로에 울려 퍼졌다. 농민들이 부르는 흥겨운 노래가 가슴에 저며 들지만 전 국민에게 그들의 호소가 제대로 전달되지는 못하고 있다. 바로 농업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바쁜 농번기에 열일 제쳐두고 왕복 6~8시간을 고속도로에서 보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농민들은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선다. 생존권 투쟁이지만 결코 그들만을 위한 투쟁은 아니다. 농민의 생존이 도시민들의 삶과 분리된 것이 아닌데 철저히 다른 세상의 문제로 바라보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도시민들은 그저 농산물은 싸고, 안전하고, 보기에 좋고, 맛있어야 한다고만 생각한다. 이를 위해 농민들은 기술을 익히고 빚을 내어 애써 농사지어보지만 들인 비용과 노동의 가치에 대해서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 대체할 수 있는 수입농산물이 홍수를 이루는 사회에서 우리 농산물에 대한 소중함이 무감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마늘, 양파 TRQ 수입을 반대하고, CPTPP에 가입해서는 안 되는지, 왜 쌀값이 보장돼야 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려야 한다. 농민들의 절망감이 쌓이고 쌓여 애써 붙잡고 있는 작은 희망의 끈마저도 놓아버리기 전에 모두가 알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더 많은 수입농산물을 무관세로 들여오기 위해 애쓰기에 앞서 농민들이 처한 고통을 우선 해결해야 한다.

농자재와 기름값의 폭등으로 농민들은 고통받고 있다. 숙련된 기술자임에도 자신의 노동비를 계산해서 생산비에 반영하는 농민은 별로 없다. 자가 노동비는 고사하고 종자, 비료, 자재값이라도 최소한 보장받아야 하지만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가 많다. 생산비 보장은 내년에도 농사를 이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기본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생산비를 넘어서는 수익이 보장돼야 한다. 어찌보면 이 당연한 말이 욕심인 것처럼 비춰지는 현상이 참으로 이상할 뿐이다. 물가가 올라서 힘든 것은 도시민뿐만 아니라 농민들도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대규모 자본과 끊임없이 경쟁을 강요받는 농민들의 지난한 투쟁은 전 세계 농민들의 투쟁의 역사 속에서 변화해왔다. 지게, 쟁기, 소와 함께했던 투쟁현장에는 이제 트랙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2018년 독일농민들이 모는 5,000여대의 트랙터가 독일 도심을 가득 메웠고 2021년에는 1만대의 트랙터를 모는 인도농민들의 농업개혁법 반대 투쟁이 눈길을 끌었다. 농가 부채의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인 트랙터는 이제 농민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9월이 되면 전국의 농민들이 다시 서울에 모인다. 농민들의 발걸음이 헛되지 않게 아스팔트 위에서 그들을 만났을 때 따뜻하게 맞이해주는 서울시민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행진하는 농민들에게 버스 안에서 손 흔들어주고 응원의 마음을 보내주는 서울시민들이 많아진다면 농민들의 외침은 더 강하게 메아리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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