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농협, 도시농협의 기준을 세우다

산지농협 생산 농산물 판매 부심

산지 조합원 비료·농기계 지원도

도시농협들에 ‘농협 정체성’ 귀감

  • 입력 2022.07.17 18:00
  • 기자명 권순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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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부산 금정농협 본점 은행 한켠엔 전통 농기구들을 전시해 놓은 농업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은행 업무를 보러 온 도시민들에게 잊혀가는 농업·농촌의 문화와 가치를 상기시키기 위해 마련해 둔 작은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도시의 여느 은행과는 다른 ‘농협의 냄새’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도시농협들이 농업·농촌과 단절돼버린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도농상생기금 출연, 산지농협 무이자 융자지원 등 농촌을 위해 의무 할당받고 있는 역할들이 있지만 대개 형식적·수동적인 양상을 띤다. 농협으로서의 신실한 고민을 뒤로한 채 자체 수익과 배당, 농협중앙회에의 영향력 행사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금정농협은 매우 보기 드문 산지 친화형 도시농협이다. 은행 로비부터도 남다르지만 하나로마트 매장을 둘러보면 이를 더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인근 진주·김해지역 채소류는 물론 포천 기산농협 시금치, 남해 동남해농협 마늘, 영월 한반도농협 사과즙 등 전국 산지농협에서 생산한 상품들이 진열돼 있다. 쌀은 어림잡아도 20여종에 이르며 잡곡 매대는 중앙회 직영 매장에 버금가는 규모다.

중요한 건 관계성이다. 농협중앙회 물류체계에 의존하지 않고 진열품의 절반가량을 산지농협과의 직접거래로 조달하고 있다. 산지농협과의 유기적 관계를 통해 도시농협 판매사업의 효율과 효과를 한층 높이고 있는 것이다. 건고추 성출하기 단일 농협으로서 10만근을 판매한 이력도 있으며 한 해에 판매하는 농축수산물 매출은 금정농협 조합원 수탁물량을 제외하고도 220억원에 달한다.
 

금정농협 하나로마트 신선농산물 코너. 다양한 산지에서 수집한 다량의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금정농협 하나로마트 신선농산물 코너. 다양한 산지에서 수집한 다량의 농산물이 진열돼 있다.

관계성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빛을 발한다. 금정농협은 인연이 있는 산지농협들을 통해 비료 무상지원, 소규모 농기계 지원, 자연재해 복구지원 등 농민 직접지원에도 나서고 있다. 비료 지원의 경우 2019년부터 2만포, 3만포로 규모를 늘리기 시작해 올해로 누적 11만포를 넘어섰을 만큼 본격적이다.

송영조 조합장은 “도시농협이 산지농협에 무이자자금을 지원하고 있는데, 조합 경영엔 도움이 될지 몰라도 농민들에겐 무슨 도움이 되겠나. 농민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농가당 한두 포대씩이라도 비료를 지원키로 했다”고 말했다.

농촌을 향한 금정농협의 성의는 공식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농협중앙회가 도시농협의 농촌지원·경제사업 실적을 지표로 2018년 ‘도시농·축협 역할지수’를 도입한 이래, 금정농협은 한 해도 빠짐없이 4년 연속 수상의 금자탑을 쌓고 있다. 2018년은 7대도시 조합 중 1위, 나머지는 전체 도시농·축협 중 1위며 금정농협 외엔 2년 연속 수상 사례마저 전무할 정도로 그 위용이 독보적이다.

산지를 위한 판매와 지원사업에 남다른 노력을 쏟고 있지만, 그렇다고 금정농협의 활동이 아주 창의적이거나 지출 부담이 큰 건 아니다. “길 가다 지갑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줬다고 칭찬받는 것 같다”는 송 조합장의 말처럼 농협으로서 최소한의 양심과 본분을 실천하는 사례라 볼 수 있다. 정체성을 상실한 채 표류하는 도시농협들의 틈바구니에서, 금정농협은 적어도 어느 쪽이 옳은 방향인지를 실천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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